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 경남일보
  • 승인 2013.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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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 (객원논설위원, 수필가)
지난 세기 인류 최대의 치욕은 나치스에 의해 자행된 홀로코스트, 유대인 대학살이다. 1945년 아우슈비츠가 해방되기까지 약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희생됐다. 본래 나치스는 사회주의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었다. 그러나 아돌프 히틀러가 장악하면서 독일 민족 지상주의와 ‘인종론’이 가세, 무자비한 대학살이 자행된 것이다. 독일 민족은 우수하다. 그러나 유대인과 같이 게으르고 열성적인 인종에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그들을 격리시키거나 없앨 의무가 있다는 것이 나치스의 ‘인종 청소론’이다. 그들은 집단수용소에서, 가스실에서, 군중이 보는 앞에서나 어린이들 앞에서도 학살을 자행했다. 마치 그것이 신이 내린 지상명령인 것처럼 죄책감 없이 무자비하고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스필버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쉰들러리스트’는 강제수용된 유대인들이 집단학살되기 전 구조하는 과정과 인간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작품성보다는 숨겨진 사실을 세상에 드러낸 고발성과 진실에 대한 인류적 정의가 돋보인 때문이다. 소설 ‘안네의 일기’는 나치스에 의해 점령된 암스텔담에서 강제수용을 피해 숨어사는 안네와 또 다른 가족의 일상과 공포, 인간애, 전쟁의 실상을 일기형식으로 적고 있다. 어린 소녀의 눈에 비친 세상을 적은 일기는 후에 그녀가 수용소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죽은 후 그녀의 아버지에 전달돼 빛을 보게 됐다.

‘인생은 아름다워라’ 영화는 전쟁 중에서도 자식을 사랑하는 인간의 순수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나치독일을 다룬 걸작이다. 그런가 하면 홀로코스트의 주역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16년 간이나 추적, 법정에 세운 다큐멘터리 영화는 인류 최대의 수치에 대한 최소한의 속죄로 손꼽힌다. 그 시절의 끔찍함이 예술로 승화한 작품들이다.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 당시의 편린을 보는 것이다.

히틀러의 나치즘과 무솔리니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는 마침내 세계 2차 대전을 일으킨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나치스에 못지 않는 비인류적 죄악을 범했다.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비견될 정도로 많은 사람이 731부대의 마루타로 죽어 갔다. 그들은 무자비하게 생체실험을 감행했고, 젊은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가 위안부로 삼아 인간의 존엄성을 마구 짓밟았다. 자국민들도 가미가제로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렸고 지금도 남양군도 깊은 숲속에는 투항하지 않은 일본 군인이 원시인처럼 살고 있다.

최근 독일은 대독 유대인 청구권회의에 10억 달러를 배상키로 했다. 독일은 1952년 이래 지금까지 700억 달러 이상을 이 같은 전후 배상에 지급했다. 이번에 합의한 10억 달러도 그 일환으로 앞으로 4년간 46개국 5600명의 피해자들에게 지급될 것이라고 한다. 독일은 이에 그치지 않고 홀로코스트를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당시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정신적 고통과 현재의 생활을 배상하는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으로서 전쟁 발발 70년이 지난 지금도 과거의 잘못에 대한 죗값을 치르며 통렬한 반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그들은 독일 민족 지상주의가 아니라 인류가 공존하며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통감하며 기꺼이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통독 이후 막대한 통일 비용과 높은 실업률, 동서간의 갈등을 극복한 독일의 저력인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 군사력이 아닌 국격으로, 아무도 무시 못하는 강국으로 성장한 밑거름이 아니었을까. 독일은 세계 2차 대전 전범국으로 은인자중하고 있지만 유럽경제의 중심에 우뚝 서 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행여 나치즘이 다시 고개를 들까 스스로 경계하며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이웃 일본은 독일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지금도 극우에 의해 군국주의와 국수주의를 도모하고 있다. 전쟁에 대한 반성도 없다. 오히려 왜곡과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일본은 ‘이코노믹 애니멀’은 될 수 있어도 격을 갖춘 선진국은 결코 될 수 없다.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는 한 일본은 인류평화를 논할 자격조차 없다. 독일은 아직도 2차 세계대전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전쟁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지만 일본은 하루빨리 아픈 기억을 잊고 싶어 한다. 그것이 독일과 일본의 다른 점이다.

변옥윤 (객원논설위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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