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선 바위 기둥을 따라 신비로운 산행
늘어선 바위 기둥을 따라 신비로운 산행
  • 최창민
  • 승인 2013.06.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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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일보 선정 100대명산 <55>광주 무등산
 
▲주상절리대를 형성하고 있는 서석대 일부와 수림
 
 
반듯하게 잘린 다각형의 돌기둥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쳐 있다. 마치 고대 그리스 신전의 기둥 같기도 하고, 인류 외 것의 거석문화(?)일부를 옮겨다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왜 이 거대한 바위가 인위적으로 칼이나 도구를 이용해 두부자른 것처럼 반듯하게 잘려 서 있는 것일까. 도대체 이 돌기둥을 누가 만들어 세울 수 있을까. 천상의 석공이 아니면 이런 광경을 만들 이가 없지 않겠나. 필시 그럴 것이다.

돌기둥의 벽 앞에 서면 경이로운 자연의 이치에 놀라고 다가갈수록 감탄사가 나온다. 그러다가도 불가사의라고 여기고 상상의 날개를 펼쳐도 그 생각의 끝에는 아무 것도 잡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그냥 아름답다.’ 라는 말로 귀결된다.

100대명산 55회 차 산행은 무등산과 주상절리의 잘 설명되지 않는 신비로움을 하나둘씩 찾아가본다.

무등산은 새로 생긴 산이 아니다. 산이야 늘 거기 있었는데 요즘 자연적 가치와 중요성, 신비로움이 조금씩 베일을 벗으면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무등산이 뜨고 있다’

첫번째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해발 750m이상 지역에 거대한 규모의 절리대가 형성된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현상. 광주시는 주상절리대를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하기위해 지질학 권위자인 허민 교수(자연과학·56)를 앞세워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두 번째 지난해 12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1972년 도립공원 지정 이후 41년 만에 국내 21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것이다.

세 번째 이 산의 주상절리대는 2005년 1월 16일 ‘천연기념물 465호’로 지정됐다. 무등산이 환생하고 있는 증거들이다.

▲장불재까지 날아온 절리 파편위에서 등산객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무등산(無等·1187m)은 광주의 진산이자 모산이다. 100만 인구, 1000m이상 산을 가진 도시는 세계적으로 유일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견줄만한 상대가 없어 등급을 정할 수 없다’는 뜻의 무등이며 이는 ‘등급과 차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이라는 의미로 발전한다.

주상절리는 크게 입석대 서석대 규봉암, 세 구역에다 플러스 원은 새인봉이다. 세 곳 모두 같은 화산활동의 자연현상에 의해 형성됐지만 모양은 각기 다른 형태를 하고 있어 산행객들은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수박과 차가 유명하다.



#산행은 증심사주차장→증심사→중머리재→장불재→입석대→서석대→광주 무등산 옛길을 타고 하산 후 임도→장불재→중머리재 →토끼등→증심사회귀. 11km, 6시간(휴식시간 포함)이 소요됐다.


#국립공원 승격 이후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주말이면 증심사 주차장 일대가 등산객과 버스 승용차 등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아웃도어 매장과 식당이 줄지어 서 있어 도시에 온 기분이 든다. 그래도 입구 2차선 도로 양옆으로 울울창창 고목의 가로수가 신록을 뿜어내니 산냄새가 물씬 난다. 장불재 3.1km, 입석대 4.4km, 서석대 5km, 이정표를 지나 증심사 입구 갈림길에서 새인봉 방향을 버리고 왼쪽 중머리재 쪽으로 향한다. 증심사는 신라 헌안왕 4년(860년) 철감선사가 세운 절. 일주문을 통과하면 곧장 산길로 접어든다. 과거 담양식당 등 원주민이 살고 있던 곳은 지금은 이주를 완료하고 식생을 복원했다. 30여분 만에 수령 450년짜리 성성한 당산나무에 닿는다. 쉼터에 소나무 바람, 송풍정이 있다.

소나무 오리나무 숲길을 걸어 1시간 만에 해발 508m, 중머리재에 닿는다. 중머리를 닮았다고 그렇게 부르는데 많은 사람들로 인해 주변에는 나무가 없고 쉼터만 있다.

임금의 옥새를 닮았다는 새인봉(璽印)은 오른쪽에 있고, 왼쪽 눈 위의 가야할 방향에 장불재 입석대 서석대, 무등산의 너른 품이 오롯이 들어온다.

▲입석대 오름길
여기서 왼쪽 산 능선을 따라 1km정도 오르면 중봉으로 곧장 가지만 오른쪽 길을 택해 1.5km, 1시간을 더 오르면 장불재 광활한 능선에 선다. 장불재 갈림길에선 백마능선을 타고 규봉암으로 거거나 입석대 서석대로 갈 수 있다. 광주시 화순과 동북 사람들이 광주로 가기 위해 오가던 고개다. 이 광장에서 7000만년전 용암이 끓어올랐던 화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상부에서 흘러내린 동강난 5, 6각 기둥들이 널 부러져, 드러누운 것도 있고 괸 것도 있다. 가야 할 최종목적지 입석대와 서석대가 산머리에 올라 앉아 있다. 장불재 시설물에서는 대피소 기능 뿐, 음식을 먹을 수는 있지만 불을 피우거나 조리 할 수 없다. 입석대까지 500m는 완만한 경사.


# 명물 중의 명물 입석대가 달처럼 둥실 뜬다. 데크를 설치해 진입이 쉬우나 가까이 접근할 수 는 없다. 한 면이 최고 2m에 달하는 5,6각형의 바위가 30m가량 좌우로 울을 이뤄 하늘로 솟구쳐 있다. 곧추 선 것도 있고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위태롭게 걸린 것도 있는 바위의 장막이다.

생성 후 수천만전 전부터 지금까지 중력을 거스르고 서 있었을 위대함에 놀라고, 자연 상태에서 어떤 신비한 힘이 작용해서 인위적인 형상을 갖출 수 있었는지 다시한번 놀란다. 적어도 형성 당시에는 절리의 높이가 30여m는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볼수 있다. 바위 일부는 떨어져서 산 사면에 불규칙하게 흩어져 있고 어떤 것은 장불재까지 날아갔다. 가늠할 수 없는 긴 세월 말없이 서 있는 바위기둥, 자연의 조화 앞에 왜소해 질 뿐이다. 서석대 500m길에는 이무기가 승천했다는 승천암을 비롯해 바위투성 된비알이다.

#서석대 정상석에 서면 개방이 안된 군부대와 천왕봉이 보인다. 군부대시설은 출입이 통제돼 있다. 때마침 오는 8일(일)오전 8시부터 6시까지 한시적으로 개방돼 이번 주 무등산 산행이 예정된 사람들은 천왕봉을 둘러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돌아서 광주시가지에서 올라오는 무등산 옛길로 내려서면 갑자기 서석대의 아슬아슬한 난간에 서게 된다. “어∼엇!” 반사적으로 비명이 나오고 오금까지 저린다.

위에서보면 너무 아찔하고 위험해 우회해서 내려갈 수밖에 없다. 아래에서 위로 쳐다보면 서석대의 진맛을 느낄 수 있다. 한 면이 1m미만인 높이 30m짜리 돌기둥이 약 50m에 걸쳐 동서로 수림처럼 들어차 있다.

입석대가 풍화작용으로 돌기둥이 흙에서 분리돼 곧추 서 있는 것이라면 서석대는 풍화가 덜 진행돼 한 면이 흙에 매몰돼 생성 시 모습을 비교적 많이 간직하고 있는 형국이다. 만약 풍화가 급속히 진행돼 흙에서 분리됐다면 이미 바위가 모두 쏟아져 내렸을 것이다.

주상절리는 대개 바다 연안에 있지만 무등산처럼 고도가 높은 곳에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또 돌기둥 하나의 크기가 남한에 있는 것중 최대라고 한다.
▲서석대

실상 주상절리가 불가사의는 아니다. 과거에는 형성과정을 알리 없었지만 근세에 지질관련 학문이 발전하면서 형성과정이 밝혀졌다. 우리나라에 대표적인 화산폭발이 백두산과 한라산 울릉도 뿐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 외에도 창녕의 화왕산 광주의 무등산도 화산폭발에 의해 형성됐다. 약 7500만년과 6400만년 사이 중생대에 화산이 폭발하면서 용암이 외부에 노출됐고 당시 빙하기의 차가운 물이나 낮은 기온 등으로 갑자기 식고 굳으며 수축되는 과정에서 석영안산암질 고유한 성질에 의해 다각형의 돌기둥이 생성된 것이다.

지난 2월에는 무등산에서 ‘온혈현상지대’ 20곳이 발견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온 산이 눈으로 덮였으나 너덜지대 일부에서 눈이 녹은 것이 발견됐다.

# 무등산 수박은 높은 산기슭 운림골에서 재배되는 순재래종. ‘푸랭이’라고도 하는데 색깔이 암록색이다.

무게가 10kg∼20kg에 달하고 당도가 좋은 농산품이어서 진상됐다. 농업인들은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던지 출하 시 수박밭에 제단을 만들어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고 ‘부정탄다’며 상가에도 가지 않았다한다.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적었으나 요즘은 무등산 중턱에서도 생산되고 있다.

취재팀과 산우들은 장불재를 통해 중머리재, 토끼등을 타고 하산 길을 재촉했다. 중간에 너덜지대가 곳곳에 숨어 있어 태고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이 산 아래에는 1891년 진도에서 출생한 당대 최고의 화가 허백련의 흔적이 있다. 그는 ‘춘설헌’이라는 화실을 짓고 30년동안 작품 활동을 했다. 작품은 의재미술관에 남아 있다. 차를 보급하는데도 힘써 삼애다원 이라는 찻집을 남겼다.
 
▲서석대에서 바라본 천왕봉
 
 
▲증심사 가로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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