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할머니
시골 할머니
  • 경남일보
  • 승인 2013.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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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곤 (의령군 낙서면장, 행정학 박사)
요즘 시골 할머니들은 바쁘고 안쓰럽고 피곤하다. 산업화 이후 젊은이들이 하나 둘 농촌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할머니가 농촌 지킴이기 때문이다. 이는 평균수명의 영향과 무관치 않겠지만 마을 경로당에도 할머니가 대세다. 가끔 가뭄에 콩 나듯 할아버지 몇 분이 계시지만 대부분 할머니가 경로당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가 마을 인구의 주축이고 중심이다. 가끔 시골 초등학교 행사에서 보면 학부모 좌석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를 심심찮게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도회지에 나가 사는 한부모 세대가 자신의 시골 어머니에게 자식을 맡긴 결과다.

그리고 고령화 사회를 반영하듯 시골의 사회단체장에 65세가 넘은 할머니들이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과거 60~70년대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할머니들이 바쁘게 되었다. 그야말로 북 치고 장구 치고 1인 2역은 기본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지역 문화체육대회에 선수로 참가하신 할머니가 경로잔치에 초대되어 한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거동조차 못해 100% 보호가 필요한 안쓰러운 할머니도 많다. 대개 이런 할머니의 경우 자식이 없고 소득도 없다. 우스개지만 요즘 시골의 마을이장은 맥가이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주지하듯 맥가이버는 미국 ABC 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손재주와 응용력이 뛰어난 주인공을 일컫는다. 마을 이장이 옆집 할머니의 TV를 고쳐야 하고 수돗물이 안 나오면 식수까지 조달해야 하는 역할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움직임이 많은 할머니는 바쁜 할머니지만 반대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안쓰러운 할머니에 해당된다.

그런데 유독 관심을 끄는 할머니가 있다. 그것은 거동이 가능하고 그리 바쁘지 않으면서 피곤한 할머니이다. 이런 할머니는 대부분 자식이 있으나 할머니에게 별 도움을 주지 않는 경우이다. 그리고 일정한 소득은 없어도 약간의 현금을 지니고 있어 정부지원에도 벗어난다. 그러므로 생계에 보탬만 되면 무조건 일을 해야 한다. 참으로 피곤한 할머니이다. 이런 할머니의 경우 자식에게 큰 변고가 생기든가 스스로 몸이 아프든가 하면 참으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시골에 살다 보면 이와 같은 피곤한 할머니를 종종 만나게 된다. 어찌 보면 어정쩡한 삶을 사는 분이 어디 피곤한 할머니뿐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주민을 소중하게 보살펴야 하는 입장에 있는 필자로서는 가장 안타까운 보호대상이다.

세상은 시시각각 변한다. 언젠간 갑이 을이 되고 을이 갑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의 젊은이는 미래의 노인이다. 돌이켜 그 옛날 잘살아 보겠다는 일념으로 고향을 떠날 때 나의 등 뒤에서 말 없이 눈물을 훔치던 그 어머니가 현재 시골의 바쁘고 안쓰럽고 피곤하신 우리의 할머니이다. 이런 할머니에게 지금 당장 밥이나 제대로 챙겨 드셨는지 전화 한 통 해보면 어떨까
김영곤 (의령군 낙서면장, 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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