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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가 더 사랑 받았으면 좋겠어"<경남축구열전> 단일시즌 최다승 전설, 이차만 감독
박성민  |  smworld17@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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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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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대표팀 1진인 청룡, 백호팀에 처음 뽑힌 이차만
지난해 K리그는 FC서울 천하였다. 마흔을 갓 넘긴 서울의 최용수 감독은 사상 최다 승점인 96점으로 K리그 감독상에 오르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그동안 고재욱, 신태용 등 젊은 감독들이 풍미했지만 프로 최초 30대 감독으로 등장한 이는 이차만이었다. 36세 5개월에 감독직에 오르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 그는 축구계 안 밖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우로얄즈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모교로 돌아가 축구에 대한 정열을 쏟아 붓고 재충전의 시간의 가지고 있는 그를 만나 이차만만의 축구이야기를 들어봤다.



◇ 공부하던 아이, 축구에 눈을 뜨다

그는 공부가 좋았다. 대신중학교 반 대항 축구대회에서 우승 후 체육선생님의 축구권유에도 자신이 축구선수의 길을 걸어갈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 때 당시만 해도 중학교 축구에 1,2부 리그가 있었지.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축구 우승 이후 선배들이 축구를 하자고 자꾸만 못살게 구는 거야. 할 수없이 하게 됐는데 방학기간에도 연습을 했고 축구에 빠져 들었어”

이차만은 축구를 해도 그냥 하고 싶지 않았다. 이차만은 인근에서 가장 유명한 동래중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축구인생을 걷게 된다. “부모님이 펄쩍 뛰셨지. 말도 안된다고. 그런데 가장 믿고 따랐던 형님이 부모님을 설득해 주셔서 축구를 할 수 있었어. 내가 막내여서 형님을 각별히 생각했어”

동래중을 거쳐 축구명문 경남상고에 진학한 이차만은 고등학교 2년 때 사상 첫 청소년 대표에 발탁되는 행운을 잡게된다. “장운수 감독님이 나를 뽑아주셨는데 그때만 해도 고등학교 2학년이 들어간 사례가 없었어. 감사하지”

청소년 국가대표에 발탁된 이차만은 자연스럽게 실력을 인정 받으면서 축구명문 고려대에 스카우트 되며 커리어를 쌓아갔고 대학선발과 백호팀을 두루 섭렵했다. 특히 대학 1학년 때 국가대표에 차출되며 까마득한 선배들과 전 세계를 누볐다. “70년 대에 한·일 정기전 1,2,3회 모두 골을 넣었지. 현역 때 일본에게 강한 모습 이었어. 자카르타배나 박스컵, 킹스컵 우승도 했지.” 현역 프로생활을 포철(현 포항스틸러스)에서 마감한 이차만은 말년에는 홍콩 세미프로팀에서 2년간 선수생활을 이어가기도 했다.



◇ 단일시즌 3관왕의 원천 ‘프로다움’

현역 생활을 마친 이차만은 모교인 고려대에서 지도자 수업을 시작한다. 고려대에서 전승을 기록하고 좋은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며 승승장구하자 대우로얄즈 축구단에서 연락이 왔다.

“대우 김우중 회장이 축구를 좋아했지 여러 이야기도 같이 나눴고 인연이 되서 감독직을 수락하게 됐어. 내가 감독을 시작하면서 조건을 내 걸었던 게 ‘홈’으로 가자 였어” 당시만 해도 프로축구팀은 홈 구장이 있는 지방에 숙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분을 서울에 기반을 두고 경기만 홈 구장에서 하는 시스템이었다. “선구자가 되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홈으로 가자고 했지. 경기만 부산에서 하고 숙소는 서울 한강변에 있고 이건 아니잖아. 축구 선진국을 가봐도 홈에 정착하며 뿌리를 내리는데 이렇게 해서는 야구에도 밀리고 아무 것도 안될 것 같았어. 선수들은 내가 설득했지”

결국 대우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홈인 부산에 기반을 다지게 된다. 파격적으로 시작한 30대 감독의 개혁은 대우로얄즈의 전성시대를 열며 단일시즌 최다 승(22승)의 기염을 토한다. 1997년 이차만 감독의 대우는 정규 리그, 아디다스컵, 프로스펙스컵 동시 우승으로 전관왕 달성과 함께 K-리그 4번째 우승을 일궈냈다. 선수들도 신범철, 김주성, 정재권, 마니치 등이 시즌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됐고 이차만 역시 지도자상을 수상했다. 이 같은 놀라운 성적에는 이 감독이 시작한 구단 완전 연고제도의 도입이 결정인 역할을 했다.

◇ 모교와 제자들을 향한 끝없는 열정

프로에서 지도자 생활을 그만둔 이차만은 모교인 경남상고(현 부경고) 축구부의 폐지 소식을 듣게 된다.

“축구 명문 학교로 그동안 지역을 대표하고 있었는데 축구부가 폐지 된다니 이것은 안된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모교로 가게 됐어. 그리고 딱 4년 만에 본 궤도로 올려놨지” 부경고는 이차만이 맡은 첫해 주말리그 왕중왕전 우승하며 화려하게 부활했고 3년차에도 우승을 차지했다. “올해 3월에 후원회장도 그만두고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나왔지 지금도 모교출신 지도자들이 똘똘 뭉쳐 아이들을 잘 지도하고 있어. 아이들도 축구 명문대로 진학하고 있지.” 이차만은 비운의 스타로 기억되는 김종부와 부경고 시절 함께 했던 윤빛가람에 대한 애정도 털어놨다. “종부 같은 경우는 너무나 안타까웠지 나를 따라 대우로 오고 싶었는데… 그래도 박종환 감독이 대승적으로 세계청소년 축구대회에 데리고 나가 활약한 게 큰 도움이 됐지. 윤빛가람이도 어제 통화를 했지만 지금 있는 곳에서 더 잘하라고 했어. 프로는 프로답게 행동해야 한다고”

마지막으로 이차만 축구계에 당부말도 잊지 않았다. “내가 대우에 있을 때 아침 운동 하지 말고 지역에 조기축구에 참석해서 공도 차고 함께하라고 그랬지. 홍보팀과 함께 ‘이달의 선수’라는 것도 만들고, 이처럼 축구계가 노력이 더 필요한 것 같아. 물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금 야구가 인기가 있지만 내년엔 월드컵도 돌아오고 하니까 나는 축구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더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어” 이차만의 소망을 간단했다. 오직 축구가 국민들 속으로 가깝게 스며들고 사랑받는 스포츠로 성장하는 그것 뿐 이었다.

이차만은
출생= 1950년 9월 30일 경남 김해 대저면
학교= 동래중-경남상고(1967-1970)-고려대학교(1970-1973)
선수경력= 청소년 국가대표(1969), 국가대표(1972-1979), 백호팀(1976-1978), 포항제철(1974-1980)
지도자경력= 대우로얄즈 감독(1987~1999), 국가대표 감독(1988-1990),부경고등학교 감독 (2004-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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