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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얼룩진 유월을 달래러 길을 나선다(42)거창 삼봉산 금봉암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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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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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봉암 가는 길
 
 
유월이 오면 가슴 깊은 곳에서 스며나는 잊지 못할 내음이 있다. 동족상잔의 포화가 산하를 뒤덮었던 화약 냄새와 독재와 군부정권에 맞섰던 민주항쟁의 최루탄 냄새가 있고, 배고픔에 지친 설움의 고개였던 보릿고개를 넘어서는 도리깨타작 뒤끝의 겉겨 타는 냄새가 있다. 원한서린 화약 냄새야 네 살막이가 무슨 기억이야 있으련만 반공영화로 수없이 보았기에 착각만으로도 생생한 내음이 역력하고, 알싸하고 매캐한 최루탄 냄새야 60년대엔 67학번으로 서울에서, 그리고 80년대엔 야당인사로 지방에서 언제나 선봉에서 하얀 가루를 뒤집어썼으니 오죽이야 했겠냐만 이제는 세월에 바래진 옛 이야기지만 우리 모두의 아버지들이 땀으로 범벅되어 도리깨로 두들긴 보리타작 뒤끝의 겉겨 타는 냄새는 유월이면 언제나 향수의 냄새가 되어 보리가 익어가는 시골길로 불러내고 있어 길을 나섰다.

경남의 최북단인 거창군의 고제면을 찾아 충청도와 전라도가 경상도와 맞닿은 그 옛날 삼남대로였던 옛길의 흔적이라도 있어줬으면 하는 바람과 콤바인으로 했어도 혹시 겉겨를 태우는 하얀 연기라도 피어오를 것만 같아서 마리면 삼거리에서 37번 국도를 따라 차를 몰았다. 이내 당산리 표지판 앞에 문화유적을 알리는 황토색 표지판이 ‘당산리 당송’ 을 안내하고 섰다. 마을초입의 비탈에서 용틀임한 장송이 먼저 알고 내려다보고 있어 골목길을 돌아서 다가갔더니 밑동의 굵기와 높이도 상당하지만 거북등 같은 껍질과 용틀임한 가지가 예사롭지 않다. 안내판의 설명은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바람 한 점 없어도 “웅-웅-” 하고 울음소리를 내며 미리 알려주는 신령스런 소나무라 하여 영송이라 부르며 수령 600여년으로 추정되는 천연기념물 410호란다. 이제는 “웅-웅-” 하고 울어야 할 일이 다시는 없기만을 기원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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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제면 선인상
 
 
10분 남짓하게 가다보니 고제면소재지 들머리에 삼거리가 나왔다. 11시방향으로 가면 빼재를 지나 신풍령을 넘어서면 전라북도의 무주로 이어지는 37번 국도가 계속되는 길이고 직진을 하면 고제면의 끄트머리인 봉계리를 지나 역시 전라북도의 무주땅 무풍면으로 이어지는 1089번의 지방도로서 삼봉산 금봉암으로 가는 길이라 해서 직진을 했다. 세발도 안 가서 또 하나의 표지판이 길을 막아섰다 ‘농산리 입석 선인상’이 있다는 마을로 들어서니 입석마을회관 앞마당에 야트막하게 철책을 두르고 넓적하면서 두께는 얄팍한데 높이가 2m가 훨씬 넘는 거석이 우뚝하게 섰다. 음각된 노인상이 한 눈에 봐도 인자함이 넘쳐나고 근엄하여 오지랖을 여미게 한다.
 
 세월의 풍상에 마모되어 얼핏 보아서는 결가부좌를 한 불상 같으나 언제나 무릎을 내어 주셨던 우리들의 할아버지셨다. 길흉화복을 관장하시며 수명장수와 풍요를 점지해 주시는 선인상으로 경남도무형문화재 324호인 마을의 수호신이라며 돌이 섰다하여 마을 이름도 입석이라 했단다. 선인상 바로 앞의 다리는 그리 높지도 않거니와 돌다리도 아니건만 그 옛날 도승의 법력으로 높이 6m에 길이 11m인 돌다리를 놓았다하여 “높은 다리”라고 불리어졌고 높을 고(高)자에 다리 제(梯)자를 써서 고제면이라 했다는데 지금은 돌다리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다리의 이름만 ‘높은 다리’라고 새겨져 있다. 당시로는 삼남대로를 잇는 다리였다니 얼마나 많은 세월을 두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며 온갖 소원일랑 선인상에 빌고 빌며 ‘높은 다리’를 건너고 또 건넜을까? 시집장가 간다고 가마타고 건넜던 다리였고, 괴나리 봇짐지고 과것길에 건너갔던 다리였으며, 꽃상여는 또 몇 번이고 뒷걸음을 치다가 건너갔던 다리였으며 설움인들 오죽하고 애환인들 오죽하랴만 보내고 떠나는 이의 눈물 젖은 다리였으니 언제나 건너고 나서 뒤돌아보던 다리가 아니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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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산 금봉암.
 
높은 다리를 또 한 번 돌아보고 입석마을을 나와 가던 길을 재촉했다. 어느새 좁다란 들녘은 모내기가 끝나서 무논마다 모 포기들이 반듯하게 줄지어서 쫑긋쫑긋하게 몸을 담그고 섰다.

세월의 변화는 유월의 이맘때에 들녘에 나서보면 격세지감을 실감케 한다. 들녘 군데군데 장정들이 마주서서 휘두르는 도리깨가 공중에서 번뜻거리면, 또 다른 한편에선 줄지어서 허리를 굽혀 모를 심는 아낙들의 노랫소리며, 못밥 담은 함지박을 이고 가는 바쁜 걸음새며, 씩씩거리며 쟁기를 끄는 누렁이 소도 바쁘긴 매 한가지다. 부지깽이도 일어서야 한다는 농번기의 풍경은 까마득한 세월의 저편으로 밀려나서 옛 그림 속에서 빛이 바랜지가 이미 오랜 줄은 진작부터 알지만, 어디를 둘러 봐도 보리를 베어낸 흔적이라곤 없는데 마음속에 그려본 괜스런 옛 풍경이 좀체 지워지질 않는다.

일 년 내내 사람 그림자 하나 얼씬거리지도 않는 강 둔치에 체육공원 만들지 말고, 골짜기 하나 자리 잡아 밀 심고 보리심어 보리타작에 모심기만 재현하며 60년 전 쯤으로 시계 한 번 거꾸로 돌려 복원해 놓으면, 한번보고 버려져서 귀신 나오는 세트장보다야 골백번 나을게고, 유전자 조작한 수입 밀 안 먹여서 내 자식들 좋을 거고, 지구촌의 맹랑한 기자들이 다 찾아올 것이며, 보리개떡을 팔아도 남녀노소 발 디딜 틈이 없을 텐데, 수입 밀가루 먹고 머리에 뿔이 나던 알바가 아니고, 보리개떡 팔아 봤자 개떡가루 떨어질게 빤하고, 돈 타작을 해야 돈 가루가 떨어질 공사를 해야지 뉘라서 돌아나 보겠냐만 향수에만 젖어서 뜬금없이 해 본 소리는 분명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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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봉암삼존대불
 

신라와 백제가 뺏고 뺏기기를 거듭하면서 진을 쳤다던 둔기마을 들머리에 닿자 작은 도랑 옆으로 느티나무 그늘을 깔고 평평한 바윗돌을 줄지어 놓아 오가는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빈터가 나왔다. 주막은 간곳없고 샘터만 남았는데 ‘옛 주막 터’라는 표지석이 오가는 길손들을 수없이 겪어본 능구렁이가 되어 얼른 눈치를 채고는 공손하게 읍하는 자세로 길손을 맞이한다. ‘냉수나 한 바가지 드시고 마음푸시우’ 하는 녀석의 속내를 내가 왜 모르랴마는 “냉수 샘”이니 천천히 드시라고 턱받이에 글도 씌어 있어 마련된 쪽박으로 샘물 한 바가지를 단숨에 들이켰더니 아닌 게 아니라 이가 시렸다.

주막집 다시서서 전 지지고 술 익으면 다시 오마 기약하고 가던 길을 재촉하는데 유명세만큼이나 이름값을 하는 거창사과의 산지답게 사과나무가 비탈진 밭에도 반듯한 논배미에도 푸르렀고 도로의 가로수도 사과나무로 줄지어 섰다. 이내 봉산리 용초마을 들머리에 닿았다. 가겟집 삼거리를 비켜서 삼봉산 금봉암을 알리는 표지판을 돌아드니 나무새밭 끝자락에 목장승이 줄을 섰다. 딴에는 길손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입을 헤벌쭉하게 벌리고 우쭐거렸다.

골목길을 벗어나자 멀리 삼봉산이 굽어보고 팔부능선 아래로는 작은 바위산이 모닥모닥 줄지어서 머리를 내미는데 차로 오르면 위험하다는 안내판이 선 작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멘트로 포장된 굽이굽이 꼬부라진 산길을 오르니 가파름이 만만찮아 숨이 찼다. 그도 그럴 것이 자그마치 열여섯 굽이를 돌고 나서야 근작의 거대한 삼존석불을 지나 삼봉산 1080고지에 자리한 전통사찰 금봉암에 닿았다. 깎아지른 벼랑위에 종각이 앞서있고 삼봉산 금봉암이라는 현판이 붙은 사천왕문을 들어서니 심산절집이라 여느 절집과도 엇비슷하지만 대웅전 용마루에 석불이 우뚝 섰고 오백나한전이 대웅전보다 크며 삼성각은 앞 기둥을 높이 세워 절벽위에 자리를 잡았다. 용왕전 불단 아래에 용굴의 용샘에서 흐르는 물을 모아 만든 샘이 있어 영험스런 약수로 이미 알려졌고, 삼봉산 산세도 나한의 기가 서려 오백나한전을 정상과 마주보게 지었단다. 용왕전 약수로 입가심을 하고 나한전에 들어서니 전면에는 본존불이 자리 잡고 좌우 양면으로는 자그마한 오백의 나한상이 층을 지어 줄지어 앉았다. 미륵불이 오기까지는 열반도 말라하신 세존의 명을 받고 오로지 중생제도만을 위해 2500여년의 연을 이어 오늘에 닿았으니 예를 갖추고 향을 피웠다. “존자시여! 호국보훈의 달 유월을 맞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앞에 향 내음이 길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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