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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숲 저 멀리에 아련한 지리산 능선경남일보 선정 100대명산 <56>함양 백운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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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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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 없는 요사채는 이미 빛이 바래 버렸고 절집 기둥에서 흘러나온 검붉은 송진은 아스팔트 공사장에 흘러내린 타르마냥 지저분했다. 처마 밑에 놓인 소화기는 작동여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낡았고 인적이 끊어진 마당에는 잡초가 우거져 ‘경남도 기념물 229호’라는 말을 무색케했다. 인근에는 오래된 감나무 밤나무만이 덩그러니 서 있을 뿐, 과거 채소와 농산물을 재배하며 분주하게 오갔던 스님들의 모습은 그저 상상일 뿐이었다.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서 3.1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선농불교를 일으킨 백용성선사. 백운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그의 유허지 화과원의 현재 모습이다. 그야말로 구전으로 남은 유허지. 선사와 스님들의 갖은 고생, 갖은 열정이 피와 땀으로 응결되고 또 흩뿌려 졌을 한어린 땅. 이 응집된 흔적이 또 다시 긴 세월, 깊은 침묵 속에 들 것인가. 초라한 행색, 허망함이 비할 데가 없다.

화과원.

백운산은 백용성(1864-1940)선사의 흔적을 품은 산이다. 그는 1927년 산기슭 황무지 30헥타를 개간해 감자, 채소류와 밤나무 감나무를 심었다. 채소류와 과일 등 농산물을 팔아 사원의 경제적 자립 토대를 갖추게 된다.

스님들도 스스로 농사를 지으면서 수행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 이것이 백선사가 제창한 선농일치에 의한 선농불교 ‘선농단’의 시작이다. 2년 후인 1929년 화과원을 창건했다. 인근 농가에도 이를 전파해 자급자족정신을 기르게 했으며 아이들의 교육에도 열정을 쏟았다. 여기서 수확한 농산물을 팔아 중국 용정 등지에서 3.1독립운동을 하던 투사들에게 자금을 지원했다.
 
자신도 만해 한용운과 교류하며 ‘33인의 민족대표’로 서명한 뒤 대한제국의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불교 투신과 독립운동, 투옥, 국민 계몽활동이 그의 일생이었다. 화과원 선농당은 1936년 말까지 계속됐으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폐허가 돼 버렸다. 근년 들어 함양군과 복원회가 중심이 돼 복원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요사채를 복원하고 2000년 8월 31일 경남도 기념물 229호로 지정했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다시 폐허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백운산(1278m)은 요동치듯 이어지는 지리산연봉의 파노라마를 멀리서 조망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산이다. 더 색다른 점이 있다면 진주를 비롯한 하동 산청 등 지리산 남쪽에 있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전경이 아니라 북쪽에서 지리산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날 산행에선 연무와 안개 등 궂은 날씨 때문에 선명한 지리연봉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컸다.

백두대간이 지나간다. 남쪽 지리산에서 출발한 대간이 낮은 산군으로 이어지다가 백운산에서 1300여m까지 치켜섰다가 덕유산으로 이어진다. 서로는 장안산 팔공산, 동으로 대봉산 황석산이 조망된다.

▲산행코스는 백운교→미끼골→묵계암→상연대→끝봉→중봉(전망대 푯말)→정상→1214봉→큰골갈림길→큰골갈림길2→서래봉→화과원→백운암→백운교 회귀. 총 11km에 5시간이 소요됐다.

▲들머리는 백운교 삼거리. 주말이면 산행 온 사람들의 차량이 길가에 많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형적인 원점회귀 산행이 가능한 산으로 취재팀은 왼쪽 길을 택했다. 정면 피라미드형으로 보이는 산은 끝봉이며 백운산 정상은 그 뒤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전원주택으로 보이는 집 앞을 지나면 오른쪽에 물 맑은 계곡. 수량이 많지 않아도 물소리는 청량하기 그지없다. 미끼골이다. 묵계암 표지석을 지나 오른쪽 계곡을 건너면 곧장 된비알. 주변에는 밤나무 감나무곁가지가 머리 위로 늘어져 있다. 산뽕나무와 산벚나무가지도 늘어져 산우들은 ‘오디와 버찌’를 따 먹느라 한바통 소동이 인다. 30여분만에 비구승이 거처하는 묵계암에 닿는다. 시멘트 포장도로는 묵계암을 지나 상연대까지 이어진다.
▲상연암

묵계암

 
 
명당 중의 명당 상연대는 마치 작은 동산 위에 올라 앉아 있는 느낌을 줘 아늑하고 편안하다. 오르려면 70도에 달하는 철 사다리를 타고 돌계단을 타야한다. 암자의 역사를 말해주듯 주변에는 울창한 고목이 울을 이루고 있다. 924년 신라 경애왕 때 고운 선생이 어머니의 기도처로 마련한 것이라는데 확인할 길이 없다.

원통보전 옆문에 ‘문을 닫아 달라’는 안내글은 다람쥐 때문. 다람쥐가 들어와 귀찮게 한다는 얘기인데, 도시에는 쥐 때문에 귀찮고 산에서는 다람쥐가 극성을 부려 성가신 모양이다.

상연암에서 정상까지는 1.6km, 지금까지 올라온 것보다 더 심한 오름길이다. 등산로 중간 중간에 4기의 산소가 있어 등산객은 산소의 갯수로 자신의 위치를 대략 파악할 수 있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끝봉에 닿기 전 돌출 된 전망대에 서면 올라온 코스와 함께 가슴 벅차게 다가오는 황석산과 기백산, 지리산과 덕유산을 조망할 수 있다.

1시간 40여분 만에 정상처럼 보이는 끝봉에 닿는다. 코앞에 보이는 또 하나의 봉우리가 중봉. 600m를 더 진행해 2시간 30여분 만에 백운산 정상에 닿는다.

끝봉에서 백운산 정상까지는 오르내림 길이 있으나 비교적 완만한 등산로에 숲을 이룬 평평한 길이 펼쳐져 걷기에 더 없이 좋다. 헬기장에는 2m짜리 정상석이 있고 조금 더 올라서면 작아서 앙증맞은 50cm짜리 정상석이 서 있다. 대간꾼들이 달아놓은 안내리본이 눈길을 끈다.

백운산은 전국에 30여개가 된다. 가장 높은 것은 강원도 정선의 백운산(1426m), 그 다음으로 함양 백운산이다. 지리산 섬진강 건너에 있는 광양 백운산이 1217m, 제천 무주 울주, 포천, 남원에도 있고 산청 백운산은 515m이다.

전국 백운산 중에서 두번째로 높은 데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암릉 없는 비교적 평범한 육산으로 인식해서 인 것같다.

조망은 멀리 지리산의 뒷모습. 구름인지 산인지 분간이 안되는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구름에 가렸어도 웅장한 자태는 변함이 없다.

서래봉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두차례의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하산하면 모두 백운암으로 연결된다.

취재팀과 산우들은 서래봉까지 올랐다가 산행 3시간만에 점심을 해결하고 화과원 백운암으로 내려섰다. 하산 도중 40여분만(백운산기점 1.8km)에 만나는 갈림길에선 주의가 필요하다. 곧장 가면 원통재(빼빼재)로 연결돼 원점회귀가 불가하다. 도로를 걷거나 히치하이킹으로 출발지 백운교까지 와야 한다. 화과원으로 연결되는 하산 길은 이상하리만큼 등산객의 왕래가 적다. 나뭇가지가 눈을 가리고, 등산로도 선명치 않아 ‘길을 잃었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능선을 타고 내려오면 왼쪽 발 아래 보이는 인위적인 건축물이 경남도기념물로 복원한 화과원이다.

석장승과 폭포.

 

오디를 따먹는 등산객

 

백용성 선사는 14세 때 출가 후 부모의 간곡한 만류로 귀속한 뒤 2년 뒤 해인사에 재출가했다. 훗날 해인사에 수행할 때는 고려대장경판의 훼손을 안타깝게 여겨 황실에 자금지원을 받아 보수했다. 이후 불교경전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등 불교의 대중화에 적극 나섰다. 1940년 열반을 예언하고 앉아서 입적했다. 해인사 용탑선원 옆에 사리탑이 있다.

하산길 민가 옆에서 만난 석장승이 백운산 등산의 끝을 알린다. 신라시대 영은조사가 개창했다는 영은사는 폐사되고 옛 절터에 석장승 2기가 서 있다. 우호대장군과 좌호대장군.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문장 역할을 한 호법신장상에 해당한다. 머리에 관모를 쓴 모습은 마치 큰 상투를 얹은 것과 같으며 큰 눈과 코, 꼭 다문 입, 입가의 수염이 잘 어우러져 있다.

풍만한 체구임에도 소박하고 익살스러운 모습 때문에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좌호대장군의 오른쪽 아래에 ‘건륭 30년 을유 윤 2월’ 이라는 기록이 있어 제작연대가 1765년 영조 41년임을 알 수 있다. 경남민속자료 19호로 지정됐다. 장승의 기원에 대해서는 고대 성기 숭배에서 나왔다거나 사찰 토지의 표지로 이용됐다는 설이 있다. 또 목장승은 솟대에서 석장승은 선돌에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장승이 지방에 따라 벅수 벅시 법수 수살목 당산할배 등으로 불렸다. 고유의 민간 신앙과 불교신앙이 어우러진 조형물이다.

▲100명산 취재팀은 이번 백운산산행에서 등산로를 안내하는 리본을 나뭇가지에 달았다. 진분홍빛 바탕에 검정글씨로 ‘경남일보선정 100명산기행’이라는 글을 새겼다. 재질을 천으로 사용해 시간이 지나면 자연부식이 가능토록 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달 예정이다. 등산인들의 산행안내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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