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53)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53)
  • 경남일보
  • 승인 2013.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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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지리산 인산문학상 수상자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53)
(14)지리산 인산문학상 수상자 
 
지리산 인산문학상 수상자 김석규는 젊은 시절 주로 진주에서 교직생활을 했다. 진주여자고등학교 교사시절은 상봉서동에서 살았고 삼현여자중고등학교가 사립명문으로 창립되면서 상평동 삼현여중 인근으로 옮겨 살았다. 초임이면서 교무주임으로 부임하여 학교의 거의 모든 장부를 그의 손으로 정리를 해나가면서 시를 열심히 썼다. 그 무렵 삼현여자중학교 고등학교는 시인들을 많이 초빙하여 문학학교를 지향한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덕(시인), 박재두(시조시인, 후에 중학교 교장)), 김창근(시인, 후에 동의대 교수)), 손정수(연극인, 시인 작고) 등 문학교사들이 초기에 들어감으로써 신설교의 분위기를 다잡는 데 힘을 보탰다.

거기다 삼현에는 교빈으로 초정 김상옥 시인이 자주 방문하여 교양강의를 했고, 이경순 시인이 한문과목을 맡아 강의했다. 당시에 이미 동기 이경순 시인은 환갑을 지낸 후였고, 학생들이 할아버지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랐다. 김석규 시인이 삼현 창설시 교사 발탁이 되었던 것은 진주문인협회 최재호 회장 아래서 사무국장으로 일한 인연으로 인한 것이었다. 당시 부회장은 곽수돈 내과의원과 소설 쓰는 김수정이 맡고 있었다. 최교장이 진주문협 회장을 지낸 시절은 협회 생긴 이래 가장 잘 돌아가는 때였다. 경제적으로 사무국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개천예술제 백일장에는 우리나라 유수한 시인들이 앞다투어 심사위원 오기를 희망했는데 박노석, 정진업의 단골 자천 시인의 길은 열렸고 유엽(금성 동인), 모윤숙, 김광섭, 이헌구, 서정주, 조지훈, 구상, 김수돈, 정상구, 김춘수, 유치환, 김상옥, 이원섭, 이동주, 이석, 김윤성 등 기라성 같은 멤버가 그들이었다. 이때의 풍경으로 잊히지 않는 것은 이름만 듣던 기생집에서의 향연이었다. 백일장을 마치고 저녁이 되면 회장의 사발통문을 받은 사람들만 진주시 수정동에 있는 ‘서울집’으로 모여 연회가 시작이 되는데 그 사발통문은 김석규 시인이 돌리는 것이었다. 그 사발통문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 연회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이 연회의 하이라이트는 시인 박노석의 휘두리춤(필자가 이름을 붙임)과 귀먹은 팔순 시인 유엽의 북치기의 절묘한 터치였다. 시인들이 시는 쓰지 않고 기생집에만 골몰했단 말인가? 필자는 무아지경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권번들의 소리와 춤이 본격적으로 진행이 되었다. 필자는 시종 숨을 죽이며 이 지상에서의 화류계 진면목을 눈에 찍어넣고 있었다. 만일 이때 ‘서울집’ 체험이 필자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들 후에 나오는 박경리의 ‘토지’에서의 봉순이의 운명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며, 전시중 국군 11사단 9연대 통역장교였던 이영희(전 한양대 교수, 작고)의 진주 기생 술집사건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이야기가 한참은 다르게 갈 모양인데 김석규 시인 대목은 잠시 잊어버리고 문인들의 후렴잔치의 장소만 그대로 두고 이영희 교수의 이야기를 귀담아 주었으면 한다. 이영희 교수는 6.25전시에서 해양대학을 나와 통역장교로 육군에 입대했는데 그 부대가 국군 11사단 9연대였다. 필자가 주목한 것은 그 9연대가 저 끔찍한 거창, 산청, 함양 양민학살사건을 일으킨 부대라는 점이었는데 거기서 이영희 장교는 무슨 역할을 한 것일까? 이것이 관심사였기에 그의 대담 자서전 ‘대화’를 읽었고 거기 진주 기생술집의 9연대 장교 회식사건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여기서 이영희는 자기의 인생을 바꾼 3가지 사건을 임헌영과 대담을 통해 밝히고 있다. 그중 하나가 가장 인상에 남는 ‘진주 기생 사건’이다. 그 대목의 서두를 아래 인용해볼까 한다. “지리산 전투의 와중에서 나는 하나의 운명 같은 체험을 하게 됩니다. 여러 전투가 끝난 후에 연대장(오익경, 필자주)이 장교들을 위로하겠다고 장교들을 진주시내 허름한 술집(서울집으로 보임, 필자주)에 모아놓고 회식을 베풀었어. 이름난 옛날의 기생들은 전쟁통에 있을 턱이 없지만 어쨌든 ‘진주기생’이라는 여자들을 모아 놓고 회식을 한 거지. 그날 저녁 회식에서 나는 흔히 이런 경우에 그랬듯이 연대장 옆에 앉게 되었어. 연대장과 나와의 관계는 다른 보병장교들과는 다르거든. 나는 엄연한 군인이면서도 직업군인이 아닌 까닭에 반군인, 반민간인 같은 위상이다 보니까 연대장도 별 스스럼없이 나를 대했지. 그래서 언제나 회식에서는 자기 옆에 앉으라고 해요. 연대 참모나 대대 지휘관은 연대장 옆에 앉는 것이 거북스러우니까 나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곤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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