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 무한정 사랑을 잉태하는 늪의 노래를 듣다
우포, 무한정 사랑을 잉태하는 늪의 노래를 듣다
  • 경남일보
  • 승인 2013.06.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성구 (시인)
유월도 한창 익어가는 한나절 우포에 와서 뻐꾸기 노래를 듣는다. 여러 식물의 꿈틀거림과 물고기, 논고동, 소금쟁이의 껌뻑거림을 듣는다. 가래 노랑어리연, 개구리밥, 가시연, 고마리, 꽃다지, 닭의장풀, 가새뽕나무, 갯버들 등 늪 안쪽과 늪 바깥쪽에 있는 모든 것들의 대화는 단절 없이 1억 4천여 만년을 이어져왔다. 인간이 훼손하지 않는 이상,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앞으로도 성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포에는 무수한 시기와 질투의 매로 후려치는 거센 바람과 폭우도 있었고, 천둥번개의 성난 눈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늪을 어루만져주는 딱새, 황새, 두루미, 가창오리떼, 따까마귀 등 여러 새들의 노래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상처 난 자연을 치유하는 의사인 셈이다. 늪이 다시 평온을 찾을 무렵이면 숫 물뱀 한 마리 수면에 가르마를 타며 구애의 길을 나선다. 숫 물뱀의 구애보다 먼저 사랑을 낳은 새의 둥지에선 알에서 깨어나는 생명이 있었다. 부리로 시간을 쪼고 있었다. 늪이 일제히 꿈틀거리며 숨구멍을 만들고 있었다. 각종 꽃들이 피고 있었다. 거대한 악보를 만들고 있었다.

늪은 끊임없이 무한정 사랑을 낳고, 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악보를 접지 않는다.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의 지휘에 맞춰 느리게 조금 느리게 빠르게 조금 빠르게… 그렇게 동식물의 합창은 1억 4천여 만년을 이어오면서 단 한 번도 쉼표를 찍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을 위대한 모태라고 한다. 인간의 모든 철학은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연은 순리를 어기는 법이 없다. 가끔 인간이 자연의 질서를 깨트리며 갓길을 만들고 있다. 갓길을 만든 만큼 자연은 성난 눈으로 인간에게 채찍을 가한다. 그러면서도 자연은 어머니 마음처럼 수없이 용서하고 포옹한다. 우리도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서로 나누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연의 무한정 사랑을 배워야 한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 용서와 포옹이 있을 때, 믿음과 질서는 무너지지 않는다.

푸르게 질서를 유지하는 우포에서 깨달음을 얻고 집으로 간다. 우리의 사회도 항상 푸른 질서를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저급한 언어도 없고 폭력도 없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자연의 느낌표를 가슴에 새긴다. 미각과 청각과 후각으로 느낌표에 대한 감탄사를 내 안의 저장고에 가득 채운다. 자연과 무한 동행을 꿈꾸며 한 편의 졸시 ‘동화’를 놓고 학처럼 나는 꿈을 꾼다. 늪의 숨구멍에서/ 우렁각시 밥 짓는 소리/ 달그락 화답하면/ 뻐꾸기 울음 넘쳐/ 어리연/ 애기똥 지리는/ 알싸한 봄이 왔다// 자운영 붉은 함성이 몰려든 그곳/ 그 날의 맹세를 기억하고 돌아오는 길/ 두루미/ 한 쌍이 짚어가는/ 생명의 음계를 듣다// 수 억 년 숨결 풀어/ 사람들 잠든 이 곳/ 보랏빛 가시연꽃/ 열녀문 세웠구나/ 개구리/ 합창같은 답신이/ 흐드러진 나의 우포.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