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촉석루 국보환원 운동 재점화
진주 촉석루 국보환원 운동 재점화
  • 강민중
  • 승인 2013.06.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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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화씨 “중건 후 53년 흘러 자격요건 갖췄다”
1959년 촉석루복원 모습
지난 1959년 진주 촉석루복원 모습


진주 촉석루의 국보환원 움직임이 재점화되고 있다.

촉석루 국보환원 운동은 지난 2004년 진주문화원에서 추진한 바 있지만 중건 후 기간이 50년 이하여서 기준에 못미친다는 문화재청의 주장에 따라 포기한 바 있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현재 촉석루 중건 53년이 지났기 때문에 충분한 자격조건을 갖췄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진주문화원과 지역 향토사학자 추경화(63)씨 등은 경남도 문화재자료인 진주 촉석루의 국보환원을 주장하며 서명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서명참가인만 800여명으로 점차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촉석루는 밀양 영남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알려졌다.

촉석루는고려 고종 28년 (1241년)에 건립됐으며 1948년 국보 276호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현재는 그 명성이나 역사성에도 경남문화재자료 8호에 머물고 있다. 6·25 전쟁 때 비행기 폭격으로 파괴돼 원형이 소실됐다는 이유로 1956년 국보에서 해제됐다.

1957년 이승만 대통령이 진주를 방문했을 때 지역시민이 촉석루 재건을 요청한 것을 계기로 국비를 지원받아 1959년 공사를 시작, 1960년에 복원했다.

복원 과정에는 당시 ‘목수계의 정승’으로 불린 도편수 임배근씨, 전북 최고 대목장인 인간문화재 고택영씨, 진주 출신 토목기술자인 강수영씨 등 전국 최고 기술자들이 참여했다. 하지만 촉석루는 재건 이후에도 20년 이상 일반 건축물로 분류돼 문화재 지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원형이 파괴됐다 다시 세워졌다는 이유로 1983년 문화재 중 등급이 가장 낮은 지방문화재 자료로 지정됐다.

반면 밀양 영남루는 1844년 화재로 소실돼 중건했고 1957년에 다년간 폭우로 쓰러져 촉석루와 동시에 중건했음에도 보물을 유지하고 있다.

또 숭례문의 경우에도 1961년부터 2년간 중수공사, 1963년 4월 해체공사, 복원공사, 기와올리기, 단청공사 등으로 2만3000명이 동원돼 대규모 공사를 했고 최근 복원 후에도 국보를 유지했다.

추경화씨는 “영남루와 비교해 촉석루의 가치가 터무니없게 낮게 평가되고 있다. 역사적 가치로 봤을 때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돼야 마땅하다”며 “2008년 방화로 상당 부분 소실된 숭례문도 복원 이후에도 국보 1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촉석루는 폭격으로 파괴되자 곧 국보가 해제돼 가장 낮은 문화재 자료로 하락한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편 추씨는 진주문화원과 지역사회단체 등과 연대해 촉석루 국보환원 운동을 벌이는 한편 진주시와 함께 문화재청에 촉석루 국보 재지정을 공식 요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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