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허물기
담장 허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3.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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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곤 (의령군 낙서면장, 행정학 박사)
이태 전 30년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던 집앞 도시계획도로가 개설되면서 필자의 집 담장이 허물어졌다. 차량과 사람이 동시에 왕래하는 도로라서 어찌 보면 집 담장은 집과 도로의 경계를 구분 짓는 필수품처럼 여겨졌다. 그러기에 담장이 철거되자 마치 집안 전체가 노출된 듯 거실 창문만 열면 바로 도로이다. 이러다 집안 사생활까지 드러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에 담장을 다시 설치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휩싸였다. 마당이 그리 넓지 않아 담장을 쌓으면 답답하고 그냥 두면 집이 곧 도로 같아서 결정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담장을 없애고 대신 조경석으로 마당을 아담하게 꾸며보기로 했다. 담장이 있던 자리엔 예쁜 돌을 배치하고 작은 마당엔 잔디를 깔고 나무와 꽃을 심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두 부류로 나뉘어져 한 마디씩 거든다. 연세가 높으신 분들은 왜 담장을 쌓지 않느냐는 것이고, 젊은층은 앞이 훤해져서 좋다는 반응이었다. 역시 필자가 고민했던 것처럼 일반 사람들의 생각도 그다지 다르진 않았다.

그러나 담장이 없어지면서 생활에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장 집 마당의 개념이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공동 소유라는 우리 식구들의 인식전환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사람이 보는 마당을 더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에 곧장 나가 꽃나무에 물을 주고 계절마다 피는 갖가지 화초를 골라 심었다. 그러다 보니 일년 내내 꽃이 가득 피는 집으로 변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나와 이웃이 먼저 달라지기 시작했다. 평소 담장이 있을 때 이웃간 잘 나누지 않던 인사도 현관문만 나오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소소한 얘기들을 나눌 수 있게 되었고 각자 텃밭에 가꾼 싱싱한 채소들을 스스럼없이 나누는 인정도 늘어났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길을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도 스스럼없이 집 마당에 활짝 핀 꽃을 보고 너무 아름답다며 무슨 꽃이냐 묻는가 하면 꽃나무 아래서 사진까지 찍는 포토존이 되기도 하였다. 내 가족과 이웃이 더불어 마음의 잠금장치까지 열게 된 작은 깨달음마저 얻게 된 일거양득이었다.

더구나 근래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끼리 위·아래층 소음문제로 칼부림이 있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과연 우리가 닫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작은 담장 하나를 허물어 본 필자로서 많은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무엇을 지키기 위해 무조건 꼭꼭 걸어 잠근다고 도둑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모든 자물쇠가 열리는 것을 전제로 제작된 이상 아무리 채우고 막아도 마음만 먹으면 도둑이 열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이제라도 나의 집 담장부터 허물어 보자. 그러면 길이 넓어지고 사람들 마음이 넉넉해지고 그리곤 온 집 안팎에 아름다운 꽃이 활짝 피는 따뜻한 나와 내 이웃이 될 것이다.

/의령군 낙서면장·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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