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공약 또다시 ‘헛물만 켜’는가
지역공약 또다시 ‘헛물만 켜’는가
  • 경남일보
  • 승인 2013.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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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근 (객원논설위원, 가야대학교 행정대학원장)
‘헛물켜다’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는 ‘이루어지지 않을 일을 두고 꼭 될 것으로 생각하여 헛되이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은 ‘꼭 될 것으로 생각하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과 희망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헛물켜’게 되면 희망이 절망으로, 믿음이 불신으로 바뀌기 때문에 당하는 사람에게는 큰 상처로 남는다.

국민들이 가장 흔하게 당하는 ‘헛물켜기’는 정치인과의 약속이다. 선거 때만 되면 절박한 마음으로 국민들과 수많은 약속을 하지만 결국 빌 공자 공약(空約)이 되는 경우가 많다. 국민들로 봐서는 ‘헛물만 켜’게 되는 셈이다. 대선주자와의 약속은 더 기대감이 크다. 신뢰도 높다. 지역사업이 특정후보의 대선공약으로 반영되는 것 자체가 큰 희망이다. 해당 후보자가 당선되기라도 하면 당연히 약속을 지킬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지난 정권을 되돌아보면 이 또한 ‘헛물만 켜’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2008년 9월이다. 이명박 정부는 전국을 7개 광역경제권으로 묶고 선도산업과 인력양성, 인프라 확충전략을 담은 종합적인 지역 균형발전 전략을 발표했다. 동남권의 선도사업은 수송기계와 융합부품소재가 선정됐다. 특히 광역경제권을 활성화하기 위해 30개의 광역기반시설 프로젝트를 국책사업으로 선정하고,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나서서 ‘5년간 50조원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동남권 사업으로는 경전선 복선전철(부산-마산, 진주-광양), 함양-울산고속도로, 동북아 제2허브공항, 마산-거제 연륙교 건설사업이 포함되었다. 되돌아보면 제2허브공항과 연륙교 건설은 없던 일이 되었고, 철도와 고속도로 건설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당시 기대에 잔뜩 부풀었던 도민들은 ‘헛물만 켠’ 꼴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도 지난 대선에서 105개의 지역사업을 공약했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추진계획은 밝히지 않고 있다. 지난 5월말 향후 5년 동안 135조원을 마련해 104개 국정과제를 이행하겠다는 공약가계부를 발표했지만 지역사업은 빠졌다. 대신 복지사업이 가장 큰 부분으로 반영되었다. 이명박 정부 때는 4대강 사업 때문에 밀린 지역사업이 이제는 복지정책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달 중에 지역개발공약 이행 로드맵을 내놓는다고는 하지만 아직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정부의 속내가 조금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군살을 빼겠다는 기류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말을 종합해 보면 비용대비 효과, 시급한 수요, SOC투자와 일자리 창출 연계, 지역경제발전 기여 등 네 가지를 고려하겠다고 한다.

중앙 언론도 거들고 나섰다. ‘지역공약 가계부를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거침없이 내놓고 있다. 지역공약 가운데 상당수가 선거과정에서 지역민심을 잡기 위해 약속한 선심성 사업이라고 폄하까지 한다. 심지어 ‘나라살림 짜기도 버거운 마당에 구태여 지역공약 가계부 숫자를 맞추느라 머리를 쥐어 짤 이유가 없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대선공약이었던 동남권 신공항과 남부내륙철도는 말도 꺼내기 어렵게 되었다. 또다시 지역민들을 헛물만 켜고 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2010년 1월 당시 박근혜 의원은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중국 고사를 놓고 논쟁을 한 적이 있다. 정몽준 대표는 ‘미생이라는 젊은 사람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가 많이 오는 데도 다리 밑에서 애인을 기다리다 결국 익사했다’며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던 박근혜 의원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박근혜 의원은 ‘약속을 지킨 미생은 죽었지만 귀감이 되었고, 애인은 손가락질 받으며 살았을 것’이라며 되받아쳤다.

지역공약 사업은 선거용 선심성 사업이 아니다. 지역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동력이며,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경쟁력을 키우는 사업이다. 박 대통령은 ‘미생지신’의 마음으로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한다. 또다시 지역민들이 헛물만 켜게 해서는 안된다.

안상근 (객원논설위원, 가야대학교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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