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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리 들판 내려다보는 우애좋은 두 봉우리경남일보 선정 100대명산 <57>하동 형제봉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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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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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골찬 암벽이 불거져 있는 형제봉 9부능선 왼쪽이 형제봉정상이다.
 
 
 
1926년 통영에서 태어난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2008년 5월 통영에 묻혔다. 그는 토지의 배경 하동 악양을 비롯해 평사리 무딤이들, 최참판댁을 한 두차례 다녀갔다고 했다. 스치듯 지나간 악양 평사리를 배경으로 오롯이 평생 글쓰기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 연결고리는 무엇이었을까.

어릴 적 찰나에 가까운 경험까지도 평생토록 아심한 기억으로 남는 예는 있다. 모름지기 그는 경상도의 삶에서 체득한 경험 위에 지식인의 관념을 이입시키고, 젊은 시절의 짧은 시간 악양 평사리 무딤이들에 대한 기억의 편린을 끌어왔을 것이다. 거기에다 풍부한 감성과 상상력, 드라마틱한 짜임새로 탄탄하면서도 물 흐르는 듯 글쓰기 작업을 완성해 냈다. 그를 아는 이들은 가히 ‘기적의 문학적 감성’으로 이해한다.

부연하면 평생을 걸고 작업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찰나의 기억도 놓치지 않는 원시적 본능, 여성적인 세심함과 끈질김. 풍부한 문학적 감성임에는 틀림이 없고, 배경 악양과 평사리 무딤이들과 섬진강을 비롯, 어깨 울러 멘 지리산 성제봉과 산기슭 마을은 꿈결의 풍경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세상이 바뀌어 탈고시점에도 악양을 다시 찾지 않았던 것은 보석처럼 간직한 거기에 대한 혹사된 이미지가 두렵거나 불편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하동 악양들 평사리 무딤이들의 정서와 함께 경상도의 말투 혹은 억양에도 매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매력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소설 ‘토지’에 매우 부합했다는 의미로 들린다.

이런 아름다운 사연과 풍경을 담아 보여줄 수 있는 곳이 하동의 산, 악양 형제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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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속 성제봉에 선 등산객


▲형제봉은 백두대간 지리산 줄기. 촛대봉에서 시작해 남으로 뻗어 세석평전을 거쳐 청학동 삼신봉으로 이어진다. 삼신봉에서 갈래를 친 한줄기는 동남쪽으로 낙남정맥을 형성해 부산 낙동강까지 연결되고, 다른 한줄기는 서남쪽으로 흘러 형제봉에 솟구친 뒤 평사리와 섬진강에 꼬리를 내린다.

최고봉은 형제봉(2봉)1117m, 옆에 있는 안내도엔 1115m로 돼 있는데 군 관계자는 1117m로 확인했다. 바로 옆 약간 낮은 봉우리 정상석에는 성제봉으로 돼 있다. 두 봉우리의 모습이 형제처럼 생겼다고 해서 통상 형제봉이라고 한다.

성제봉이라고 부르는 것은 박경리가 매혹한 사투리. 하동에서 형님을 ‘성님’으로 부르는 이치와 같은 것이리라. 그런데 성제봉 새김글은 ‘함부로 가까이 할 수 없는 고결하고 거룩함’을 뜻하는 한자 ‘성’과 임금을 뜻하는 ‘제’를 써서 ‘성제(聖 帝)봉’으로 돼 있다. 그래서 이 산을 ‘고결하고 거룩한 산’이라고 해두자.

원점회귀 산행이 쉽지않아 인근 악양택시(055-883-3009)를 이용하면 된다. 산행객을 위해 주말이면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다. 택시비는 1만원 정도. 취재팀은 차량 2대를 이용해 출발지 청학사와 도착지 강선암 아래 농원에 각각 주차해 양쪽을 오가면서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산행코스는 청학사→형제봉(2봉)→성제봉→철쭉제단(군락지)→구름다리→반환→안부→ 강선암→농원→정서리로 하산했다. 주행거리 총 10km에 휴식시간 포함 6시간이 소요됐다.

▲들머리 청학사는 특이한 탑이 세워져 있는 아늑한 절. 청학사 앞 주차장에서 10시에 출발 한 뒤 절집 마당을 가로질러 수림 속 오름길을 후이 후이 헤쳐가면 1시간 만에 바위 전망대에 닿는다. 발 아래 악양과 평사리 드넓은 무딤이들을 굽어 볼수 있다. 악양들을 뒤로하고 다시 오름길을 재촉하면 2시간 만에 두번째 암릉 전망대. ‘형제봉 1.7km 청학사 1.3km’안내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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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군락지를 걷는 산우들. 신선대와 구름다리가 보이고 산아래 무딤이들 옆으로 섬진강이 흘러간다.
 

이번에는 눈 위 정면에 가야 할 형제봉2, 왼쪽으로 성제봉, 오른쪽으로 패러글라이더 활공장에서 시루봉으로 연결되는 산 실루엣이 구름 속으로 보인다. 감당하기 어려운 벽처럼 버티고 선 산머리에 어디에서 흘러온 구름인가. 산을 타고 넘어 와 9부 능선에서 머물면서 정상의 속살을 가렸다가 보여주기를 반복한다.

그 아래 8부 능선에 형성된 옹골찬 암벽이 아래로 쏟아질 듯 위태롭게 불거져 있다. 직감으로 사진이 되는 풍경. 카메라 셔터의 기계음이 경쾌하다.

이 전망대에서 마루금은 잠시 숨을 고른다. 10여분정도 고도를 낮췄다가 다시 정상으로 이어지는 된비알. 해발 980m 지점 암벽 부근에 바위가 서로 엉켜 붙어 한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의 홀을 만들었는데 통천문이다. 통천문을 지나 2시간 30분 만에 삼각점이 있는 갈림길을 만난다. 오른쪽 1.2km를 더 가면 활공장이 있고 왼쪽 등산로를 따르면 형제봉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이에 앞서 평평한 안부에 40여명의 등산객이 재잘 재잘 휴식을 취하고 있다.

충남 천안의 베스트 산악회 회원이라고 밝힌 이들은 새벽 5시에 출발해 하동까지 왔다고 했다. 이 회원 중 한 사람이 정상 못 미쳐 바윗길에서 미끄러져 부상해 치료를 하느라 술렁이는 모습이 보였다. 산에서의 안전사고는 시간과 장소가 따로 없다.

정상 못 미쳐 무덤을 지나고 천길 낭떠러지의 암벽을 왼쪽에 두고 오르면 고스락이다. 2시간 35분이 지난 시간.

잠깐 숨 가쁨을 물리고 정상에 선다. 눈과 폐부가 시원하고 머리까지 맑아지는 느낌이다. 오른쪽 섬진강에서부터 왼쪽 악양들과 산군, 회남재 지리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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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다리

발 아래 펼쳐지는 악양의 넓은 들 푸른 강, 강물은 금빛 모래밭 사이를 뱀처럼 돌아 적당히 낮고 느리게 흘러 바다로 향한다.

들판 가운데 서 있는 소나무 두그루는 일명 부부송, 들판에 파인 호수 동정호, 사계의 알곡을 온갖 풍수로부터 고스란히 지켜줬을 산봉우리의 울, 산기슭에 붙어 있는 민가와 민가. 흡사 민가는 바닷가 바위틈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석화같다. 악양에는 중국에서 따온 지명이 많다. 악양도 그렇고 동정호 고소성 한산사가 중국의 지명들이다.

왼쪽 산 마루금이 움푹 파인 곳은 회남재. 과거에는 회냄이재, 해내미재라 불렀다. 악양면과 청암면 묵계리를 연결하는 고갯길이다. 고개라고는 하지만 높이가 740m이니 웬만한 산높이를 능가한다. 남명은 재가 하늘에 걸렸다고 판단하고 몇 걸음 못 올라가서 세번이나 숨을 쉬어야한다는 뜻으로 삼가식현(三呵息峴)이라 했다.

유두류록의 기록으로 유추하면 1560년께 남명이 산청 덕산에서 명승지로 이름 난 하동 악양으로 향했고 회남재에서 악양들을 본 뒤 되돌아갔다고 한다. 천하의 길지라는데 왜 돌아갔을까. 남명은 지형의 기운이 섬진강을 통해 빠져나가 길지가 아니다고 판단했다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구전되고 있는 이야기는 악양은 허투루 지날 곳이 아님을 증명한다. 예부터 ‘거지가 이 고을에 들면 1년 동안 동냥을 하고도 남았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을 먹고 살수 있도록 해주는 기름진 땅이 있고 덤으로 여럿이 나눌 수 있는 여유와 풍요로움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악양 평사리 무딤이들은 여전히 길지요. 아름다운 한 떨기 꽃이다.

성제봉 바로 아래 양지 바른 곳에 무덤 하나가 눈길을 끈다. 언제 누가 어떻게 예까지 왔을까. 이 높은 곳까지 올라오려면 산사람의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텐데…. 어느 작가의 말대로 이런 수고와 고단함이 사자의 영혼을 위한 것인지 산자의 안위와 평안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묘지석은 무덤 뒤 암벽에다 단단히 고정시켜 놓았다. 이씨와 박씨의 쌍분이다.

휴식 후 4시간 20분 만에 철쭉제를 지내는 제단 앞을 지난다. 이곳에서부터 산 사면을 따라 광활한 지역에 철쭉군락이 발달해 있다. 봄이면 온통 철쭉 천지로 매년 5월 중순에 철쭉제를 지낸다. 지금은 키 높이의 철쭉군락이 초록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

샘터 이정표를 지나 4시간 40여분 만에 형제봉의 명물 철다리를 만난다. 70도에 가까운 철계단을 오르고 나면 신선대에 걸려 있는 구름다리를 만난다. 이어지는 등산로는 신선대 봉수대 통천문 고소산성을 지나 외둔 섬진강변으로 연결된다. 외둔까지는 철다리 앞 갈림길 기점 6.1km로 짧은 거리가 아니다. 고소산성은 사적 151호로 천년 전 백제와 신라의 접전지였다.

취재팀과 산우들은 이 철다리까지 갔다고 반환해 강선암 방향으로 하산 길을 택했다. 습도가 높고 더운 날씨 탓에 등산복은 흠뻑 젖은 채 농원에 도착했다. 하동매실이 토실토실 살이 붙었고 산딸기는 검붉게 익어가고 있었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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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대와 구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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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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