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깡통차기 술래잡기
향수-깡통차기 술래잡기
  • 경남일보
  • 승인 2013.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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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구 (시인)
장마가 시작되었다는 TV아나운서의 낭랑한 목소리를 하늘이 도청했는지 창밖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장대비가 뿌리고 있다. 아파트 옥상 홈통은 콸콸콸 큰 소리로 울음을 쏟아낸다. 늦은 밤, 하나님의 눈물 흘러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오래된 놀이 하나에 생각이 먼저 젖는다.

나는 지금 세 개의 시가 합쳐진 거대한 도시 창원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유년시절은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그 시절 여러 아이들과 골목을 누비며 즐겁게 놀던 놀이 중 가장 인상 깊게 남는 것은 ‘깡통차기 술래잡기’ 놀이다. ‘깡통차기 술래잡기’ 놀이는 한 명의 술래가 있고, 술래가 아닌 아이들 중 한 명이 깡통을 멀리 차고 숨으면 술래는 깡통을 제자리로 갖다 놓고 숨은 친구를 찾는 놀이다. 술래가 숨은 아이를 찾는 동안 술래 몰래 깡통을 멀리 차고 다시 숨기를 반복하는 놀이, 술래에게 발각된 아이는 술래보다 먼저 깡통에 찜(터치)을 해야만 술래를 면할 수 있다. 한바탕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깔깔거리며 함께 놀던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시절이 정말 사무치게 그립다.

좁다란 흙담 골목만큼이나 순박했던 그 시절, 웃음과 눈물이 함께 어우러진 향수라는 지문이 새겨진 배꾸마당놀가 있던 그 곳은 정겨움이 있었다. 여러 아이들과 함께 숯검정 묻은 얼굴로 웃음을 자아냈다. 그리고 외진 골목 같은 외로움과 쓸쓸함에 함께 눈물을 훔친 친구가 있었다. 물컹한 그리움이 만져진다. 호롱불에서 백열등으로 건너가던 그 시절의 이야기와 놀이의 추억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별 총총한 추억으로 비를 타고 흘러내린다. 내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찌릿찌릿 번갯불에 감전되는 느낌이다.

추억은 이렇게 짜릿짜릿함으로 먼 세월을 건너왔다. 오늘 이 시간이 또 먼 훗날 더 사무친 그리움이 될지 누가 알까? 나무는 봄이면 기쁨으로 꽃과 잎들과의 만남을 약속하고, 가을이면 단풍물 든 제 몸에서 가장 화려한 이별을 맞고, 겨울엔 생살 아리는 고통도 맞보아야만 한다. 나무는 그렇게 커 가면서 수없이 기쁨과 슬픔 그리고 아픔을 반복하면서 아름드리 나무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커 가는 아이들에게도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어떠한 꺼리를 만들어 주자. 향수에 젖게 할 먹거리와 놀 거리를 많이 만들어 주자. 치열한 경쟁보다 친구 간 우정을 제일로 생각할 만큼 진정한 소중함을 일깨워 주자. 한 사람이 아프면 다른 한 사람이 어루만져 주고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는 감동적인 아이를 만들자. 오랜 세월이 흘러도 기억이 오래 남아 그리워지는 친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향수에 젖는 것이다. ‘향수’는 따뜻한 그리움이다.

오늘 내가 유년시절 친구들과 즐기던 ‘깡통차기 술래잡기’가 그리워지듯, 옛 놀이를 통해서 옛 친구와의 우정이 그리워지듯, 어느 때고 사무친 그리움이 가슴에 닿는 그런 날이기를 요즘 아이들에게 바란다.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게 길을 터 줄 수 있는 어른들에게 바란다.

임성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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