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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와 소나무의 산, 생명력은 피어나고경남일보 선정 100대명산 <58>단양 도락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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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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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락산 정상 못미쳐 있는 최고의 경치 암릉이 위치하고 있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은 28세 때 봉림대군(효종)의 스승을 시작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현종을 거쳐 말년에 숙종시대를 아우르며 시대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역사적 인물. 칼 같은 성리학의 도덕적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국기를 잡아간 선비로 일컬어진다. 조선의 인물 중 유일하게 중국에서 ‘송자’로 불릴 만큼 주자학의 대가로 이름을 높였다.

승자의 편에서 기록하는 사서의 특성상 논란의 여지가 있어도 왕조실록에 수백, 수천회에 걸쳐 이름이 나올 정도로 우리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정치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말년에 희빈 장씨 아들(훗날 경종)에 대한 세자 책봉 건으로 숙종과 대립하면서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사약을 받은 뒤 고뇌와 영욕으로 점철된 고단한 삶을 접는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믿음에 굴복하지 않는다. “아침에 도를 듣고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는데 그런 도를 한 번도 듣지못했다. 그래서 평생 한으로 남을 것같다.” 절대군주 숙종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끝장 반전이다.

그가 어느 한 시기에 사직을 버리고 고향 언저리, 이 산을 찾아 명언을 남긴다. “깨달음을 얻는 데는 나름대로 길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는 반드시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도락(道樂)산이다. 이 산에 우암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신선봉에서 바라본 검봉 채운봉모습



▲도락산(964m)은 충북 단양의 명산으로 인근 월악산 소백산의 중간에 위치하며 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한다. 화강암으로 구성된 바위와 바위, 소나무와 소나무의 산이라 할만하다. 특히 바위틈 사이에 꽂힌 듯 자라고 있는 우리나라 토종 소나무는 아름다운 풍경의 차원을 넘어 고귀하고 끈질긴 생명력의 상징이다.

최고의 경치는 도락산 정상 못미친 곳에 위치한 신선봉이 포인트. 오른쪽 아스라이 먼 하늘에 솟구친 월악영봉과 그 줄기로 이어진 포함산 대미산 황장산이 조망된다. 돌아서서 반대방향에 소뿔처럼 생긴 산은 도솔봉과 흰봉산이다.

산 아래 북쪽계곡에는 버킷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사인암을, 서에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등 4∼5개의 단양팔경을 보듬고 있다.

▲산행코스는 공사 중인 공원주차장을 출발해 제봉→형봉→갈림길→신선봉→도락산정상→신선봉→갈림길→채운봉→검봉→큰선바위·선바위→상선암 주차장으로 원점 회귀했다. 총 7km밖에 안되지만 워낙 암릉이 많은데다 굴곡이 지고 오르내림길이 많아 산행시간이 6시간(휴식시간 포함)이나 소요됐다.

▲들머리는 도락산 국립공원 주차장. 오전 10시 22분에 출발해 중앙선이 없는 아스팔트 길을 따라 200여m 올라가면 너른 공터를 만난다.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수림으로 들어가면 등산로가 열려 있다.

20여분 정도 오르면 능선에 올라서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오름길 계단에 발길을 올려 놓는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산행의 시작은 힘이 든다. 발이 무겁고 숨이 차며 무더운 날씨에 땀이 비오듯 한다.

고도를 갑자기 높인다. 산행 코스 내내 이어질 등산로의 험난함을 예고하는 시작점이다.

6km에 5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여타 산행기로 미뤄, 예상이 가능한 된비알이다. 비알만 있는 것이 아니고 90도로 떨어지는 10여m의 낭떠러지가 번갈아가며 앞을 가로막는다. 초심자에겐 만만한 산이 아님을 직감한다.

마사토에 자란 소나무가 뿌리를 송두리째 드러난 것은 많은 사람들의 발길 때문이다. 이때부터 소나무와 바위의 잔치가 시작된다. 수 십년은 됨직한 소나무가 바위틈을 비집고 자라고 있다. 어찌 하여 이 소나무들은 운 사납게 바위틈에 뿌리를 내렸을까. 어떤 것은 꼬부라지고 어떤 것은 비틀어지고 또 오그라 든 것도 있다.

산행 1시간 30여분만에 제봉을 만난다. 제봉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도락산으로 방향을 잡는다. 여기서부터 오름길이 완만해지고 비교적 평탄해 주변의 풍광을 즐기면서 편안한 산행을 즐길 수가 있다. 이런 거친 암릉에서도 편안한 길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이 산의 매력이다. 경사가 큰 암릉 지대에 우뚝한 산은 형봉이다. 좌우로 도락산의 산세를 굽어볼 수 있다. 형봉에서 고도를 한껏 낮춰 산행 2시간 만에 닿은 갈림길. 직진하면 도락산. 오른쪽으로 꺾으면 채운봉으로 가는 길이다.

고도를 다시 높여 10여분을 더 가면 이 산 최고의 포인트 신선봉. 드넓은 바위 암릉이 광장처럼 펼쳐진다. 이곳에 특별한 재미가 있다. 가로 세로 2m 정도 되는 움푹 파인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고 그 속에 생명이 깃들어 있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는 게 신기한데 이를 증명하듯 산개구리 5∼6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이웅덩이는 처녀가 물을 퍼내면 소나기가 내려 다시 물을 채운다는 구전도 있다. 아마도 밤낮의 기온 차로 바위에 달라붙은 이슬이나 습기가 웅덩이에 모여 고이는 것이 아닌가 예상해 볼 수 있다. ‘경남일보 100명산’과 관련해 질문해오는 파주시청 ‘코은비 산악회’회원들과 잠시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2시간 30여분 만에 도락산 정상에 닿는다. 의외로 나무들이 에둘러 있어 전망은 없다. 되돌아서 다시 신선봉을 거쳐 조금 전 지났던 갈림길에서 발길을 왼쪽으로 돌려 채운봉→검봉으로 향한다. 등산로가 험해 특별히 조심해서 하산해야한다.

바위틈에 소나무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철 이른 ‘나리꽃’이 바위틈 곳곳에 수줍은 듯 피어 있다. 진분홍의 꽃잎에다 선명한 암·수술을 갖고 있다. 이 산의 ‘깃대종’은 나리꽃과 자매지간인 솔나리다. 꽃 모양은 나리꽃과 같지만 색깔이 희귀한 보라색에 홍자색 반점이 있다. 남부지방에서는 볼수 없는 희귀꽃이다. 꽃잎이 하얀 흰솔나리, 검정색 계열의 검은 솔나리는 사촌격이다.

깃대종은 동·식물 중 생태·지리·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종을 말하며 국립공원에서는 각 지역마다 이를 지정해 놓고 있다.

천연기념물 217호인 산양도 이 산의 깃대종인데 산양복원팀에서 복원 중이며 현재 20마리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4시간 만에 채운봉을 지나 급경사의 철사다리를 내려선다. 오른쪽으로 열려 있는 산세의 풍광이 그야말로 동양화다. 소나무와 바위가 조화를 이룬 풍경은 설악산 공룡능선에 비할 바가 아니다. 굳이 과장하거나 포샵이 필요 없는 명화, 진경산수. 경치에 취하고 험한길 걷자니 조심조심 발길을 옮기는데도 실수 연발. 미끄러지기가 일쑤다.

5시간 만에 암릉의 기세가 차츰 꺾여 육산의 영역에 들어선다. 가끔씩 도드라져 있는 바위는 큰선바위 선바위다. 계곡 위 철다리를 건너고 초물 청량고추가 자라고 있는 밭아래 민가가 보이면 도락산 6시간의 회귀산행이 끝난다.

▲70년대 마을 어귀에 자리한 이발소 벽에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흔히 ‘이발소그림’이라고 하는데 주로 원색을 사용하고 풍광도 이 세상에 없는 정체불명이다. 킬리만자로 나이아가라 폭포 배경에 오두막집과 물레방아. 베스트 풍광을 여기 저기서 끌어온 다소 어눌한 것들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상향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사진들도 이 자리를 꿰찼는데 그 중 하나가 단양의 사인암 풍경이다. 사인암은 그런 액자에 참 잘 어울리는 사진이었다. 도락산 아래 계곡에 사인암이 있다.

굽이쳐 흐르는 푸른 강. 바닥에 반짝이는 강돌. 경사가 진 곳을 흐르는 강물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돌∼돌’ 흘러간다. 경사가 끝나면서 유속은 갑자기 느려져 정적인 ‘소’를 만든다. 그 옆 강 한쪽 면에 70m높이의 각 진 기암절벽이 우뚝 서 있다. 절정은 바위 꼭대기에 자라고 있는 노송들. 마치 도락산의 축소판이라 할까. 명승 47호면서 버킷리스트에도 올라 있다.

암벽은 검정과 황톳빛이 어울려 있는데 해질녘이면 석양을 받아 진한 황금색으로 변한다. 여름의 초록과 황금빛의 조화는 왜 사인암에 열광하는지를 말해준다. 추사는 ‘하늘에서 내려온 그림 같다’고 했다 한다.

고려 후기의 선비 우탁(1263~1343년)이 ‘사인재관’에 오른 뒤 사인암을 자주 찾았는데 그는 ‘특출한 것은 무리에 비유할 것이 없으며…, 홀로 있어도, 초야에 살아도 두려운 것이 없으며 근심도 없다’는 뜻의 글을 직접 새겼다한다. 훗날 단양군수를 지냈던 임재광이 우탁을 기려 그의 벼슬 ‘사인’을 따 아예 사인암이라고 지어버렸다.
 

사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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