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正名)의 전쟁’이 계속되는 ‘한국전쟁’
‘정명(正名)의 전쟁’이 계속되는 ‘한국전쟁’
  • 경남일보
  • 승인 2013.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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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객원논설위원, 진주교대 교수)
1871년 신미년 5월 30일 미국은 강화도 앞바다에 전함을 정박시킨다. 전함 4척과 군인 1393명의 미군부대는 6월 11일 일요일 오전 7시, 덕진진에서 약 2㎞ 떨어진 광성진 요새를 공격, 오전부터 백병전으로 시작해 12시 45분 끝난다. 이 ‘신미양요’를 1871년 8월 22일자 뉴욕타임스는 ‘한국전쟁’(The Corean War)으로 보도하고 있다. 시간은 흘러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반도 남·북간 전쟁, 이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은 전쟁답게 반세기 동안 아직 합당한 이름을 갖지 못하고 있다. 6·25사변, 6·25동란, 6·25전쟁, 한국전쟁과 같은 여러 명칭이 혼용되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정명(正名)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전쟁’, 아직 합당한 이름 못 찾아

우선 용어 선택에 있어 학계 일부에서 전쟁이라고 쓰면 북한을 남한과 대등한 국가로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에 6·25동란이나 사변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전쟁은 꼭 주권국가 사이가 아니라 상이한 정치집단 간의 군사적 갈등까지 지칭하는 넓은 개념이다. 오히려 북한의 국제법적 전쟁 책임을 명확히 해두는 차원에서라도 전쟁이라는 표현이 타당하다.

1950년 6월 25일이라는 특정 공간과 시간에서 일어난 역사적 행위에 대한 명칭은 대체로 두 가지 흐름으로 정리되고 있다. 첫째는 6.25라는 시간성과 행위발발 주체에 주의를 주는 것과 둘째는 남한과 북한이 벌인 전쟁인 만큼 그 공통분모인 ‘한국’이란 글자를 넣어 ‘한국전쟁’이라고 하자는 것이다. 6·25동란이나 전쟁이란 말은 냉전과 적개심 그리고 분단의 용어인데다, 특히 전쟁 발발 시점을 부각시켜 북 책임만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그 배경에는 전쟁의 원인과 배경에 주목해 한반도에서 일어난 계급갈등이 전쟁으로 확대됐다는 수정주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돼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전쟁’(Korean War)이라는 명칭은 주로 서구 유학 정치학자와 진보 성향의 학자들이 선호한다. 여기에는 6·25전쟁이 6·25사변, 6·25동란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전쟁 책임을 강조하는 냉전적 용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한국전쟁’이라는 무가치한 이름이야말로 이 전쟁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6·25라는 남한의 전쟁 인식은 전쟁 발발을 지적하는 것으로 전쟁을 개시한 쪽에 대한 증오감을 부추기는 것이기에 의도적 자제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 학자의 말에 경도될 이유도 없고, 전쟁의 모든 국면을 두고 오직 그 원인과 배경에 중점을 두고 그에 따라 ‘한국전쟁’이란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전 국토가 폐허가 되고 수백만 명이 죽어간 그 전쟁을 외국의 학문적 희화와 이념적 접근의 해석으로 넘어갈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한국전쟁’이란 명칭은 6·25라는 시점적 상징과 대비해 ‘한반도’라는 전투지역의 상징 이상이 될 수 없고, 전쟁 발발 책임이 모호해지거나 전도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7월혁명과 러시아 2월혁명 등과 같이 주요 사건들은 발발시점에 따라 이름 붙이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한국전쟁이란 명칭이 전쟁의 시기나 주체를 모호하게 하기 때문에 ‘6·25전쟁’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쟁 발발 시점을 가리키는 객관적 명칭인 6·25전쟁이 오히려 가치중립적이다. 역사적 사건은 원인과 내용을 함축하는 분명한 명칭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지 않고 교훈으로 남는다.

원인과 내용 함축하는 명칭을 가져야

미국 북동부 코네티컷 셸튼시에 조성된 전몰용사 위령비석. 6·25전쟁 비에는 ‘잊혀진 전쟁’이라는 뜻의 영문과 함께 ‘Korean War’라고 적혀 있다. ‘Korea War’ 대신 ‘Korean War’라는 표현에는 전쟁의 원인과 책임을 ‘코리언’들에게 귀속시키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아무튼 대사건의 경우 합당한 이름을 찾아가는 경로 자체가 또 하나의 역사이지만, 1950~53년 한반도 전쟁의 개념과 명칭은 과도기적 상황에 있으나 계속 진지하게 검토해 나가야 할 문제다.
이재현 (객원논설위원, 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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