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는 자연과학에서
창조는 자연과학에서
  • 경남일보
  • 승인 2013.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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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현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학장)
자연에는 질서가 있고 질서를 지배하는 원인이 있다. 이 질서와 원인에 의해 인간의 삶이 만들어지고 유지, 소멸된다. 그러하니 인간은 제 스스로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이전에 물질계가 가진 근원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들을 대상으로 연구해 자연과 자연현상을 원리적으로 이해하거나 그를 바탕으로 우리가 편안하게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이 바로 자연과학이다.

자연과학은 그 물리적인 산물만으로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유기적인 관계를 가진 생명체의 문제나 그들의 생명을 유지하는 원동력인 물질대사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도록 인간의 문화를 조성해 왔다는 데에 더 큰 가치가 있다. 자연과학의 물리적인 산물은 실용적인 쓰임새에 상관하지만 자연과학적 습관은 인간의 생각을 포맷하기 때문에 인간문화와 상관한다. 이리하여 자연과학은 물질을 넘어 문화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우리 생활주변 의류에서 많이 쓰이는 벨크로(일명 찍찍이)는 산이나 들판을 걸을 때 바지에 달라붙은 도둑가시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조그마한 식물이 가지고 있는 자연의 특성을 의류산업에 접목시켜 우리가 얼마나 편리하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지구촌의 많은 단추들이 사라졌고, 꿰매는 수고도 덜게 되었다.

생체 모방 로봇도 그렇다. 2007년 스탠퍼드대학교 기계공학과 박사과정생 김상배씨는 미세섬유조직 털이 달린 발을 이용해 유리창, 타일벽 등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로봇을 개발했다. 그는 “발에 난 털을 이용해 어디든 잘 달라붙는 게코 도마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들러붙는 로봇이라는 의미에서 스틱키봇(stickybot)이라고 불리는 이 로봇은 벽에 달라붙어 초속 4㎝ 정도로 이동할 수 있다. 높은 벽과 유리창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는 스파이더맨처럼, 인명구조나 군사용으로 이용될 전망이다. 더 나아가 “왜 점점 더 찍찍 달라붙느냐”라는 생활의 표현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 도둑가시가 가진 붙고 떨어지는 자연의 성질, 게코 도마뱀의 점진적인 움직임을 모방해서 말이다.

자연과학적 사고의 습관은 자연의 크기만큼 확대 가능하다. 맹인들이 지팡이와 점자 보도블록에 의존해 승하차 하는 것을 보고 위태함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여기서 새로운 자연과학의 예제를 하나 만들어보자. 박쥐는 맹인과 같은 조건을 가졌다. 그럼에도 캄캄한 동굴 속에서 잘 날아다니며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난다. 부딪치는 일도 없다. 그 이유는 박쥐의 특별한 신체구조 때문이다. 박쥐의 경우, 몸에서 소리를 내는데 그 진동수가 매우 높은 초음파를 동시에 만들어낸다. 박쥐가 날 때 이 초음파가 장애물에 먼저 부딪치고 그것이 박쥐의 귀에 울려온다. 주변에 어떤 것들이 있으면 곧장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자연의 가치를 지팡이에 옮겼을 때 맹인들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지팡이 어느 부분에 장애물 감지장치를 달아 맹인에게 청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한 가지를 더 들어보자. 벌집이다. 말 그대로 동물적 본능을 통해서만 아는 원형적 원리에 따라 벌들은 노동을 최소화하고, 내부의 공간과 강도를 최대화하기 위해 세모서리가 만나는 육각형의 벌집을 만들었다. 모서리가 120° 각도로 만나는 접합점의 구조 때문에 최소한의 밀랍을 사용해 벌집 무게의 30배에 해당하는 꿀을 담을 수 있는 구조다. 육각형의 구조로 인하여 꿀이 바깥으로 흐르지도 않는다. 이미 이런 자연의 원리는 건축, 비행기 같은 인공물에 서서히 적용되어 가고 있다. 실생활물에도 적용되지 말란 법이 없다.

과학기술이 그 물질성을 벗어나 창조를 요구하는 시대다. 즉 정해진 자원에 창조를 가해 이전에 누렸던 과학적 산물의 편리함을 유지·확대하려는 산업의 현 상황이다. 자연과학의 원리를 우리의 삶에 더욱 습관화하면 오히려 창의적 상상력이 더욱 커질 뿐만 아니라 자연과 더욱 가까워지는 인류가 될 것이다.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로버트 보일(robert boyle)은 “나는 박식한 학자처럼 보이고 싶은 야심이 없다. 내가 자연의 책 외에는 다른 어떤 책도 보지 않은 것으로 세상이 생각해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다”라고 했다. 약 300년 전 이야기지만, 디지털시대에 더욱 간절해지는 대목이다. 자연과 과학을 서로 분리시켜 왔던 근대과학을 개선할 수 있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권일현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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