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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과 열정 사이 달려온 애증의 축구<경남축구열전> 김인권 前 한국국제대 감독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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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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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요? 일생 동안 내 곁에 있으면서 나의 삶을 지탱해준 것이죠.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축구와 내가 인연이 썩 잘 맞은 것 같지는 않아요.” 김인권전국제대감독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축구인생을 이야기하며 잠시 먼곳을 응시했다. 최창민기자

 
 
“축구요? 일생 동안 내 곁에 있으면서 나의 삶을 지탱해준 것이죠.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축구와 내가 인연이 썩 잘 맞은 것 같지는 않아요. 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축구는 시기가 잘 맞아야 합니다. 저는 가장 중요한 시점에 항상 부상을 당하면서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게 됐었습니다.”
김인권(64)전 한국국제대감독(이하 김 감독)은 아직 축구인생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립을 해놓지 못했다 면서도 축구와 인연을 설명했다.
젊은 시절 청소년대표에 선발이 돼 ‘전도유망’한 선수로 인정을 받았지만 이후 현역선수생활을 순탄치만은 않았다. 국가대표 선발과정에서 부상해 기회를 놓쳤던 것을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이후에도 김 감독은 결정적인 고비 때마다 큰 부상을 당해 눈물을 삼켜야했다. 축구를 가까이 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렇다고 멀리 할 수 없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축구와의 애증의 관계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청소년대표시절과 부상.
“축구인생에 있어서 가장 잘나가는 시기였습니다. 진주고등학교 2학년인 1966년도에 축구부가 해체됐습니다. 서울의 경신고에 진학을 하게 됐죠”
김 감독은 18세 때이던 1967년 경신고 시절에 청소년국가대표(U-20)에 선발됐다.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축구에 관심을 많이 가졌죠. 그러면서 1967년에 ‘제11회 아시아청소년대회’를 서울에 유치했습니다. 당시 독일의 크라우천코치를 영입할 정도로 대회 우승에 대한 열망이 컸었습니다.”
김 감독은 당시 크라우천 감독으로부터 새로운 축구를 접하는 계기가 됐다고 기억했다. 선수들도 외국인감독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축구가 과학적인 운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됐다.
“특이한 것은 지금까지 해온 방식은 ‘죽어라’고 축구 훈련만 시키는 것이었는데, 의외로 수영이나 사우나, 마사지를 하면서 땀을 빼고 선수들의 몸을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봤습니다. 또한 크라우천 코치는 그때까지도 경험하지 못한 4-3-3 전술을 처음으로 도입했어요. 포워드 아래 미드필더에 2명을 배치하고 디펜스 앞에 2명을 또 배치하는 2중 구조였는데, 그는 아예 1명을 디펜스로 내리고 3명을 배치했지요.” “생소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며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대표팀은 예선에서 일본을 누르고 준결승전에 올랐다. 당시 최고의 전력을 갖춘 버마(미얀마)와 경기였다. 전반전에 김 감독이 선제골을 터트려 1-0으로 앞서 나갔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머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해 경기 도중 병원으로 실려가게된다.
“기절했죠. 병원에서 버마에게 패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부상에다가 패하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분했겠요”
한국은 김 감독의 선제골에도 불구하고 한골을 허용해 동점이 됐고 추첨에서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된 것이다.(당시에는 승부차기나 연장전을 하지 않고 곧바로 추첨에 의해 승자를 가리는 방식이었다고 함)
▲국가대표, 그러나 연이은 부상의 악몽.
인연은 다시 찾아왔다. 청소년 감독이던 크라우천 코치가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된 것이다. 나이가 적어 국가대표에는 선발이 되지 못했지만 1970년 진주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 국가대표에 발탁됐다는 전보를 받았다.
“당시에는 전화가 없었으니 전보를 받았죠. 기뻤습니다.” 유럽 훈련을 다녀온 청룡(1진)팀과의 환영경기에 초대된 것이다.
이 경기에서 김 감독은 결정적인 부상을 당하고 만다. 경기 중 골키퍼와 충돌하면서 왼쪽 정강이 뼈 두개가 모두 골절되는 큰 부상을 당했다.
김 감독은 오래 전의 이야기지만 부상했을 때의 어려움과 회한 때문인지 담배를 꺼내 피웠다. 6개월 동안 병원신세를 졌고 6개월 동안 재활운동을 거쳐 1년 동안 운동을 하지 못한다. 선수로서 생명이 끝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나마 세브란스병원의 김광해 박사의 도움으로 선수생활을 이을 수 있었다.
그러나 부상에서 회복했다고 해도 후유증은 계속돼 전성기 때의 기량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았다. 사실상 선수로서 내리막길을 걷게된다.
이어 1972년 킹스컵 출전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으로 발탁돼 한 게임을 뛰었다. “기억에 남을 만큼 활약을 했던 것 같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산업은행과 육군대표를 거쳐 1973년 뮌헨월드컵 예선을 앞두고 또 한차례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동향인 고봉우 전 진주시체육회국장을 비롯해 고제욱 이차만이 함께 선발됐어요.” 불운을 계속됐다. 진해에서 국가대표 합숙훈련을 하던 중 이번에는 어이없는 부상을 당한다.
고제욱 이차만 등과 함께 배구네트를 치고 축구를 했었는데 다 마치고 네트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엄지손가락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지금도 움직일 수 없다”며 손가락을 내보였다. 또 김 감독은 훈련을 마치고 고향 진주로 올 시점인 1973년 12월 28일 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동향인 고봉우 전 국장과의 합숙훈련을 하면서 인연이 있었죠. 당시 내가 부상으로 힘들어하자 축구화끈을 묶어줬던 기억이 납니다.”
김 감독은 부상상태에서 국가대표 합숙을 받는다는 것이 양심 상 허락지 않아 국가대표를 포기하고 자진해서 걸어 나오게 됐다. 경기 한번 나가보지 못한 채 이름만 얻은 국가대표, 한마디로 철저한 불운의 연속이었다.
▲실업팀 선수시절, 그리고 독일 유학
1975년부터 1978년까지 박태준 회장이 창단에 관여한 포항제철로 옮겨 이회택 김호 이차만 박수일 최재모 등과 함께 선수 생활을 하게 된다. 이번에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심근경색이라는 질병이 김 감독의 삶을 짓누르게 된다.
“참 어이가 없었죠. 선수로서 젊은 나이에 성인병에 속하는 심근경색이 왔으니…”
결국 김 감독은 은퇴를 결심하고 1979년부터 독일 유학을 떠났다. 지도자로서 라이센스를 취득하기 위함이었다.
독일 퀠른대 체육학과에 입학한 그는 이곳에서 선수시절 못지않은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지도자 라이센스를 취득하게 된다.
“독일에서의 생활이 너무 타이트해 선수로 뛸 수 있을 정도로 몸이 좋았습니다. 다시 축구를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길 정도였죠.”
▲지도자 생활
1981년부터 3년 6개월 동안 모교인 연세대 코치에 임명돼 지도자의 길로 나섰다. 김 감독은 “코치직을 수행하면서 지도자로서 열정만 있었지 경험부족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기억했다.
포철공고 창단에 관여한 김 감독은 1988년부터 1990년까지 프로팀 현대에 들어가 코치생활을 한다.
“요즘 잘 나가는 손흥민의 부친인 손웅정이 선수로 활동했고 정종선 현 진주고 감독도 있었죠”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울산대학교에서 감독직을 수행한 김 감독은 비로소 고향인 진주의 한국국제대 축구팀창단에 관여해 창단을 주도하고 2006년까지 6년 동안 감독생활을 한 뒤 40년의 기나긴 축구여정을 마감한다.
▲축구동호회 지도자로 변신
김 감독은 현재 진주 60대 남강클럽 감독으로 실버 축구를 지도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축구선수를 한 회원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를 가르치면 집중해서 듣고 배우며 실전에 활용합니다.”
“그런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나이가 많은 회원들이지만 경기에 임할 때는 아직도 열정이 남아 승부에 집착하는 예가 많습니다.”
김 감독은 선수시절 자신이 부상했던 것이 떠올랐는지 “부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얼마 전 경기를 하다가 운동장에서 쓰러져 목숨을 잃는 사람을 봤습니다. 준비운동 없이 열정만 갖고 축구를 하면 큰일 납니다”라며 경기 전 준비운동에 대해 몇 차례 강조했다.
그는 축구인들에게 당부했다. “나이가 들었다고 쳐져 있으면 활기가 없어보이죠. 축구를 통해 서로 유대관계를 맺고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삶이 윤택해 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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