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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 잇는 하늘다리에 아찔한 산행경남일보 선정 100대명산 <59>봉화 청량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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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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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다리에서 본 선학봉
 
 
고려의 마지막 자존심 공민왕은 ‘원’의 줄기찬 간섭에 굴하지 않고 대내외적으로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건다. 즉위 후, 원의 옷을 벗고 변발을 풀어 젖히며 영토회복, 국권회복을 최우선순위에 둔다. 친원파의 득세에도 불구하고 개혁드라이브가 브레이크가 걸리기도 하지만 뜻을 굽히지 않는다.

특히 원의 고려 침탈을 위한 정략결혼의 산물, 노국대장공주와 연을 맺었어도 불행했던 과거 왕과는 달리, 지고지순한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간다. 공주 역시 원의 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탈원정책’에 동조하며 반대세력을 막아내 선대부터 계속된 고려 굴욕·굴종의 시대를 회복시키는데 조력한다.

평화의 시기는 길지 않았다. 원의 반격에 쫓기던 홍건적이 엉뚱하게도 뒷걸음치며 1359년 1차, 1361년 2차에 걸쳐 한반도 고려를 침탈한다. 고려의 자존심 공민왕은 붉은 무리와 맞짱을 떠 2차전투에서 대승해 전과를 올린다. 하지만 피해도 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으로 쫓기는 신세가 된다. 이른바 공민왕의 ‘청량산 몽진’(蒙塵·먼지를 뒤집어쓴다는 뜻으로 피란을 말함)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자신의 최대 후원자였던 노국공주마저 1365년 난산 끝에 세상을 떠나자 그는 더욱 힘을 잃고 타락의 길로 들어선다.

심심산골 경북 봉화 청량사에 피신한 그는 집권 초기의 하늘을 찌를듯한 개혁의 기치는 구름처럼 사라졌고, 기울어가는 국운을 한탄하며 자신의 퇴장을 조용히 예감했다.

청량산 옛길은 청량사 맞은편 천길 낭떠러지 위에 아슬아슬하게 겨우 걸려 있는 꿈의 산책로. 김생굴에서부터 어풍대 총명수 풍혈대 응진전까지 30여분이 소요되는 길이다.

때로는 권토중래를 꿈꾸며 걸었을 법한 옛길, 그 끝 응진전에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노국공주의 형상이 있다. 공민왕은 노국공주의 상 앞에서 한없는 눈물을 흘리며 회한의 세월을 보냈다고 전한다. 청량사 ‘유리보전’편액도 공민왕이 남긴 글씨다. 맞은편 축융봉 청량산성도 그의 흔적이다. 예부터 수많은 전란의 화마 속에서도 유리보전과 응진전이 불타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는 청량산에 살아 있는 흔적을 통해 1800년의 시간을 거슬러 그의 꿈, 그의 한, 그의 사랑의 일면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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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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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공민왕작 유리보전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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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왼쪽)과 약사여래

▲청량산은 도립공원으로 충북 봉화에 있다. 최고봉 장인봉(의상봉·870m)을 비롯해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금탑봉 등 12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다. 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뤄 예부터 소금강으로 불렸다. 조선시대 때 청량산으로 바뀌었고 주세붕이 유람하면서 ‘12봉’에 이름을 붙였다. 낙동강이 이산 뿌리를 흘러돌아간다.

청량산의 매력은 청량사와 청량산의 멋스러운 조화를 비롯해 앙증맞은 각 봉우리를 올라볼 수 있다는 것이며 옛길을 걸으면서 보고 즐기고 마시고 느낄 것이 있다는 것. 국내 최대규모의 하늘다리의 체험 등이다.

▲산행코스는 청량사 앞 주차장에서 출발해 청양사→뒷실고개(능선)→하늘다리→장인봉(반환)→하늘다리→뒷실고개→연적봉→탁필봉 →자소봉(하산)→김생굴→어풍대→총명수→풍혈대→응진전(반환)→청량사→청량사 주차장으로 회귀다. 6∼7km밖에 안되지만 볼거리가 많아 휴식시간 포함 5시간 30여분이 소요됐다.

▲들머리는 청량사앞 주자장. 차량이 예까지만 갈 수 있다. 절까지 시멘트 포장이 돼 있으나 통제돼 있고 가더라도 워낙 경사가 커 승용차 출입이 쉽지 않다.

포장길을 골골 돌아 깊은 산속 숨은 듯 자리한 청량사에 든다. 한순간 파란 하늘이 열리고 바위로 된 산세가 드러난다. 그 아래로 유리보전 산신각 종각 선불장 등 절집 당우들이 지세따라 계단식으로 앉아있다.

바위산의 느낌은 흡사 인근 청송의 주왕산의 모습과 비슷한데 형성된 시기가 같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쏙 빼닮았다.

동행 산우와 인연이 있었던 청량사 주지 지현 스님과 인사를 나눴다. “청량산은 사계절 내내 사방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한곳에서 움직이지 않고도 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지요. 유리보전 왼쪽 지팡이를 짚고 계신 분이 지장보살로서 ‘목불’이며 보물 1666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중앙 약사여래는 임란직후 제작한 것으로 국내 유일의 종이로 만든 ‘지불’이며 보물지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현스님은 청량산과 청량사에 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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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적봉에서 본 탁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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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굴


짙고 어두운 숲속의 나무계단을 밟고 오르면 출발 1시간 만에 능선 갈림길 뒷실고개에 닿는다. 왼쪽이 하늘다리 장인봉으로 가는 길, 오른쪽은 탁필봉 자소봉 방향이다. 왼쪽 하늘다리까지는 30여분이 더 소요된다.

자란봉의 상부 봉우리를 하나 넘은 뒤 숲을 헤쳐 나가면 어느 순간 앞이 훤히 뚫린 허공이다. 연발하는 감탄사도 허공에 묻힌다. 자란봉과 반대편 선학봉을 연결하는 길이 90m와 높이 70m를 자랑하는 국내 최고의 산악현수교 하늘 다리다. 2008년 5월 건설했다. 현수교인 까닭에 흔들거려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있는 자란봉은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새, ‘난(鸞)새’가 춤을 추는 모습과 비슷해 그렇게 부른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다리 중앙에서 왼쪽으로 보는 풍광. 선학봉의 실루엣이 기묘하게 다가온다. 학이 하늘로 날아 오르는 듯한 형세라고 해서 선학봉이다. 선학 일부구간은 접근이 쉽지 않아 아이뷰만 가능하다.

2시간만에 최고봉 장인봉(870m)에 닿는다. 대봉으로 불렸으나 주세붕(1495-1554)이 중국 태산 장악의 장인봉에서 따왔다고 한다. 정상에서 조망. 가깝게는 빼어난 기암절벽들이 병풍처럼 늘어서고, 멀게는 첩첩이 겹친 산과 산의 파노라마. 이 산에 감탄하는 소재들이다.

되돌아서서 다시 하늘다리를 거쳐 능선 갈림길을 지나 연적·탁필봉으로 향한다. 연적봉과 탁필봉은 등산로 한 가운데 오이처럼 ‘쑥∼쑥’ 솟아 있다. ‘연적’이 벼룻물을 담는 그릇이니 바로 옆에 서 있는 붓끝처럼 날카롭게 생긴 탁필봉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중국 여산의 탁필봉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연적봉엔 사람이 오를 수 있는데 낫가리에 오르는 느낌이 든다. 이 봉우리들을 오르고 모두 돌아보려니 등산시간이 평소보다 많이 걸린다.

3시간 만에 자소봉에 닿는다. 이 역시 오이처럼 불쑥 솟아 있는 기묘한 모습이다. 오르르면 80도에 가까운 계단을 기어가듯해야 한다.

수백년 된 정자나무에 오르는 느낌이 들 정도로 위태롭고 아찔하다.

자소봉에 붙어서 바위의 생김새를 자세히 볼수 있는데 바위마다 작은 자갈들이 쏙쏙 박혀 있다. 예를 들면 뻘층에 수많은 자갈들이 날아와 박힌 것처럼 보인다. 지구가 형성될 때 중력에 이끌린 파편들이 빨려 들어와 박힌 모습이라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자소봉은 청량산 불교 유적지의 중심지로서 현재 암자의 유지가 남아 있다.

▲자소봉에서 20여분 정도 하산해 산행 3시간 20여분만에 청량사가 정면으로 보이는 옛길에 선다. 한복판 고즈넉한 청량사를 중심으로 높은 하늘에 여러개의 봉우리로 연결된 청량산 줄기가 그야말로 병풍처럼 에둘러 서 있다. 각 봉우리들은 마치 봄날 갓 피어나는 죽순처럼 기이하게 불쑥 불쑥 솟아올라 있다. 중국 ‘원가계 풍경구’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부터 이동하면서 보는 청량산과 청량사의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이 재미를 준다.

벼랑 끝에 서서 아래쪽 낭떠러지를 바라보면 ‘휴∼’ 소리가 절로 나오고 오금이 저리며 머릿속이 하얘지는데 날고싶다는 충동도 든다.

옛길에서 처음 만나는 유적지, ‘김생굴’. 통일신라의 명필 김생이 이 굴에서 10년간 글씨 공부를 해 대가가 됐다. 왕희지체와 구양순체가 대세였던 시대에 ‘김생체’는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한다. 굴 앞에 김생폭포가 있다.

10분정도 더 이동하면 바위틈에 샘터가 나온다. 머리가 좋아진다는 총명수다. 옛날에 고운선생이 마셔 총명해졌다고 알려지면서 훗날 선비들이 너도 나도 이 물을 마시기 위해 찾아왔다고 한다. 마셔보니 목마름과 더위가 싹 가신다.

풍혈대는 옛길에서 10m 정도 벗어나 높은 언덕에 있다. 그냥 지나치는 이가 많은지 등산길이 정비돼 있지 않다. 바위가 관통돼 시원한 바람이 구멍 속으로 드나든다. 과연 고운이 시원한 바람을 쐬며 바둑을 즐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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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과 청량산
청량4
청량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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