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 오덕원(五德院)에서’
‘지리산 자락 오덕원(五德院)에서’
  • 경남일보
  • 승인 2013.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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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 (관봉초등학교 교장)
지리산 자락만큼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보여 주는 곳이 더 있을까. 매서운 7월에 들어서자 초록은 무성해서 숲을 이루고 흘러내린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 입맛이라도 잃게 되면 문득 지리산 자락 시천면 한방골 오덕원(五德院)생각이 난다. 오덕원은 전통요리연구가로 이름을 얻은 김애자란 분이 운영하는 곳이다. 지난해 가을 무렵 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을 찾은 일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우리 전통음식과 친숙해지는 기회를 주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오덕원은 지리산 양수발전소의 하부댐을 마주보고 있는 산의 중턱에 다소곳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오덕(五德)이란 ‘다른 맛이 섞여도 고유의 향미와 자기 맛을 잃지 않는다’ 는 단심(丹心)이 그 하나요, ‘오래도록 두어도 상하거나 맛이 변하지 않는다’는 항심(恒心)이 둘이요, ‘비리고 기름지지 않으면서도 본래의 맛과 자양은 비린 것 기름진 것을 뛰어넘는다’는 불심(佛心)이 셋이요, ‘매운 맛 독한 맛을 중화하여 부드럽게 만든다’는 선심(善心)이 넷이요, ‘어떤 다른 음식과 같이 어울려도 자연스럽게 동화를 이루어 조화롭게 된다’는 화심(花心)이 그 다섯이라는 깊은 뜻이 담긴 말이다.

창원사람이었던 그녀가 이곳 지리산 자락에 뿌리를 내리고 우리전통의 맛을 지키고 우리 것을 애써 가꿔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해온지 벌써 10년을 훌쩍 넘겼단다. 그녀는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영양사 또는 조리사들에게 우리음식을 제대로 가르치는 매서운 선생님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학교에서만큼은 이들이 월급쟁이가 아니라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만드는 전통 발효음식에는 전통장류의 고추장, 된장, 간장, 전통장아찌에는 방풍장아찌, 엄나무장아찌, 곰취장아찌, 참가죽장아찌, 매실장아찌, 당귀장아찌, 고추장아찌, 무간장장아찌, 오이간장장아찌 등 그 가짓수가 적지 않다.

깊은 맛도 일품이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우리 장아찌를 짜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아삭아삭 속 깊은 맛을 내면서도 오래 보존해내는 비결이 무섭다. 그녀가 지어준 하얀 지리산 유기농 쌀밥에 비린내 없는 구수한 청국장, 아삭한 서너 가지 장아찌 반찬은 신선의 밥상이 따로 없다. 밥그릇 비우는 일은 잠시다. 그날 행사에 참가했던 아이들은 꽃떡(花煎)을 만드는 일이 즐겁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런 서툰 작은 경험들이 하나둘 쌓이다 보면 우리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 언젠가는 우리 것에 다시 돌아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뜨거운 여름 햇살에 마당에 가득 널린 장독 속에는 그녀의 정성이 소담하게 담긴 우리의 음식들이 발효라는 과정을 거치며 아삭아삭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뚜껑 위에 무심히 올려둔 것 같은 작은 돌멩이들은 그녀가 수고한 햇수를 의미한다. 뜨거운 햇살에 장독들은 그 세월만큼 윤기가 반짝이고 있겠다. 더운 바람이 훅 불자 장독 사이로 멀리 보였던 맑은 구름 걸린 지리산의 천왕봉이 오늘따라 더 생각이 난다.

김병철/관봉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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