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은 되고 촉석루는 왜 안돼?
숭례문은 되고 촉석루는 왜 안돼?
  • 강민중
  • 승인 2013.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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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증축 당시 기초석·일부 남은 목재 재사용 확인
숭례문 국보 1호 유지 사례와 동일…국보환원은 당연
2008년 3월 화재로 88%이상 소실됐던 숭례문. 상단은 99%, 하단도 대부분 소실돼 당시 문화재청장은 국보자격을 상실해 국보해제를 고려했다. 하지만 문화재위원들은 일부 상징성과 역사성을 감안해 국보1호를 유지키로 결정했다. 불탄 목재를 재 활용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진주 촉석루의 국보 환원운동이 지역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숭례문의 사례와 같이 촉석루 중건 당시에도 기초석과 일부 남은 목재를 재활용했다는 자료가 발견돼 국보 환원운동에 힘이 실리고 있다.

촉석루 국보환원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향토사학자 추경화씨에 따르면 과거 동아일보 1958년 11월12일자에는 ‘촉석루는 전화로 불타고 대석만이 남아 옛 모습을 남긴다’ 는 기사(신동준 기자가 현지 답사 후 보도)가 게재돼 있다.

여기서 대석은 촉석루 아래 기초석을 의미한다.

추씨가 3년전부터 최근까지 수 십 차례 석수를 초빙해 직접 확인해 본 결과 현재 옛 기초석으로 판단되는 돌들이 기초석으로 깔려 있고 의암바위 쪽 석문은 옛 자취가 분명해 보인다고 전했다.

또 인력으로 쪼아 댄 석축이 남아 있고 물이 흐르도록 만든 곳에도 옛 돌들이 기초석으로 형성됐음을 확인했다. 돌 계단 역시 옛 그대로임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목재 재사용 부분 역시 추 씨가 지역전문가를 대동하고 촉석루 현장을 조사해 본 결과 “목재부문은 단청으로 가려졌지만 일부 남은 목재를 재 활용했을 것으로 여겨진다”는 답을 얻었다.

이에따라 숭례문의 국보1호 유지 사례를 근거로 촉석루 국보환원이 힘을 얻게 됐다.

추 씨는 “숭례문은 조선 초기 건축물이었지만 촉석루는 고려 고종시대 이전으로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는 더 소중하다. 서울에 소재하면 시대가 짧고 재 건축돼도 큰 가치가 있고 지방에 있으면 가치가 적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면서 “문화재위원들은 촉석루도 숭례문과 동일한 기준에서 목조건물 자체만을 염두에 두지 말고 상징성과 역사적 의미 등을 고려해야 한다. 영남 최고의 명승지이자 한국인이 가보고 싶은 관광지 1위 위상을 위해 등급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촉석루아래 기초석
촉석루아래 기초석
촉석루 아래 인력으로 쪼아낸 것이 육안으로도 확인된다
촉석루 아래 인력으로 쪼아낸 것이 육안으로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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