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오지마라... 안개 걷혀라....
비만 오지마라... 안개 걷혀라....
  • 최창민
  • 승인 2013.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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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일보선정 100대명산 <60> 함안 여항산
장마철 장대비가 억수같이 쏟아진 주말 오전 7시 30분께 함안군청 앞 ‘금순이 해장국’집에 있었다. 바람에 밀린 빗물이 식당 안으로 밀치고 들어왔다. 비를 피하기 위해 식당에 간 것도 있지만 산행여부를 판단해야했다. 식당엘 나올 즈음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기실, 어젯밤 비몽사뭉간 산행 중에 비를 제대로 맞았던 것같다. 제대한 예비역이 영장을 다시 받은 악몽 처럼, 대형 사고현장에 도착한 기자의 손에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우중 산행 트라우마다.

장마철 산행은 어려운 점이 많다. 산행 전에 기상예보를 세심하게 들어야 하고 등산화나 비를 피할 수 있는 아웃도어도 갖춰야하는 등 신경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여항산 들머리 좌촌마을 주차장에 닿았을 때 거짓말처럼 비가 그쳐 있었다. 동행 산우의 한마디. “산에 갔다 오라는 뜻인 것 같네요”

▲여항산(艅航山·770m)은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에 있으며 낙남정맥 중 가장 높은 산이다. 무학산 정병산보다도 높고 인근 서북산보다도 더 높다. 남해고속도로 함안휴게소∼함안IC중간 지점에서 오른쪽 멀리 범상치 않게 다가오는 산실루엣이 여항산이다.

‘갓데미산’이라고도 하는데 삿갓을 덮은 것처럼 보여 우리말 ‘갓더미’에서 왔다고 하고, 한국전쟁 때 미군들이 뺏고 뺏기는 전투에 질려 ‘god damn’이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이 일대 지형이 특이하다. 남고북저형인 까닭에 남쪽의 여항·서북산을 중심으로 물길이 북쪽의 남강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이 때문에 옛사람들은 함안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던 것 같다. 물길이 ‘왕의 처소’가 있는 북쪽으로 향한다고 해서 ‘역수의 지형’이라며 새우눈을 뜨고 본 것이다. 1583년 부임한 정구는 특이한 ‘역수의 지형’을 갈음하기위해 ‘배가 다니는 낮은 곳’ 즉 여항(艅航)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한편으론 과거 천지개벽 물 난리가 났을 때 여항산 꼭대기만 남아 ‘남을 여(餘)’를 써 ‘여항’이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산행코스는 좌촌마을→마을상부 갈림길(1코스 오름길)→버듬바위 혹은 코바위→능선(낙남정맥)→정상→헬기장→갈림길→미산마을. 좌촌기점에는 4개의 등산로가 있으며 이 외 산 넘어 둔덕마을에서 폐광을 지나 오르는 등산로가 개발돼 있다. 모두 3시간∼6시간정도 걸린다.

▲들머리는 좌촌마을 주차장. 8시 30분께 380년된 느티나무 보호수를 지나 안길을 가로질러 마을 안부 끝. 1코스와 2코스로 나뉘는 갈림길에서 왼쪽 1코스를 택했다.

좌촌마을은 50여가구에 110여명이 산다. 강석판 이장의 목소리는 밝았다. “웰빙 힐링바람으로 여항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접근성이 좋고 산의 생김새가 특이한 것도 요인이다. 과거에는 오지였는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마을 어르신들의 증언을 전할 때는 진지해졌다. “6·25때 치열한 전투로 미군과 군인들이 많이 사망했다. 주민들은 이미 피란을 가 피해가 없었지만 귀가했을 때는 온 천지에 시체가 널려 있었다”며 ‘전쟁의 참혹함’을 전해들었다고 했다. 인근 별천마을에는 전쟁 전적비가 서 있고 매년 6월 추모제가 열린다.

한국전쟁 때 여항·서북산(738m)은 UN군과 한국군의 낙동강 최후 방어선이었다. 더 이상 밀리면 끝장 나는 벼랑과도 같은 것이었다.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약 45일간 이곳에서 인민군과의 끔찍한 살육전투가 벌어졌다. 19차례나 주인이 바뀌는 피의 전투로 미 25사단 5연대 중대장 티몬스대위 외 100여명이 전사했다. 훗날 주한미군으로 주둔했던 티몬스 2세 미 육군중장은 선친의 넋과 희생자를 기리기위해 서북산에 전적비를 세웠다. 이 외도 산 너머 여양리에는 보도연맹 관련자 수백명이 집단 학살당한 것이 확인됐다.

비는 그쳤어도 안개는 5m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게 깔렸다. 안개 낀 산길은 습도가 높고 미끄러워 산행여건이 좋지 않았다. 여름으로 치닫는 계절, 초입부터 눈을 자극했던 산수국이 참나무군락 아래 여기저기 피어 있다.

산속에 조성 중인 별장터 옆으로 난 길을 따르면 감나무밭에서 이정표를 만난다. 오른쪽 길을 택해 30여분을 더 오르면 출발 1시간만에 코바위에 닿는다. 119조난 위치표시는 ‘함안군 2-가 코바위’로 돼 있는데 등산지도에는 버듬바위다.

출발 1시간 35분만에 낙남정맥 암릉 능선에 올라선다. 왼쪽 서북산 3.7km, 정상 200m, 미산령 2km 이정표가 길을 안내한다. 일전 산행했을 때에는 코가 비럭에 닿을 만큼 경사가 커 로프에 의지했는데 지금은 나무 계단이 정상까지 설치돼 있어 안전하다.

정상에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세찬 바람과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장막. 갈바람에 실려오는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뺨을 휘갈긴다. 사진을 건지기 위해 안개가 걷히기를 30여분동안 기다려도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하세월이다. 그런데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산에 오를 때만해도 ‘비만 오지 마라’ 했는데 이제 사진 찍자고 안개 걷히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여항산은 함안 진산다운 조망권을 갖고 있다. 북쪽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한 거대한 산줄기는 삼신봉까지 남부능선을 형성한 뒤 잠시 솟구쳤다가 공룡같은 몸통을 좌측으로 튼다. 묵계재 옥산을 거쳐 남으로 흘러 이 산에 당도한다. 동으로는 서북산을 거쳐 정병산 김해 신어산을 지나 낙동강하류에서 꼬리를 감춘다. 백두대간에서 이어지는 경남의 산줄기 낙남정맥이다. 구름 속에 감추고 있을 산준령을 마음으로만 그리며 미련을 접는다.

출발 2시간 10분만에 헬기장을 지나고 좌천마을 하산 길을 지나쳐 미산령으로 향한다. 오름길에서 만났던 산수국, 그 옆에 산수국, 그러고 보니 이 계절 이 산은 산수국 정원이다.

산수국은 특이하게도 하나의 꽃대에서 전혀 다른 형태의 꽃이 두개 핀다. 암·수술을 가진 메인꽃은 중앙에 있고 서브꽃은 암·수술이 퇴화해버린 무성화이다. 무성화는 가장자리에 빙 둘러 5∼6개가 핀다. 꽃은 하얗고 붉은색이 도는 하늘색이 보통이지만 피는 시기와 장소에 따라 분홍색 초록색 다양한 꽃색깔을 보여준다. 꽃말이 재미 있다. 땅과 지형에 따라 꽃 빛깔이 다르고 시간에 따라 자주 변한다고 해서 ‘변하기 쉬운 마음’이다. 제주도에서는 이 변덕쟁이에게 ‘산도깨비꽃’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63년 전 여름 이 일대에도 수국이 피었을까. 타는 듯한 목마름과 작렬하는 태양 아래 시작된 젊은 청춘들의 숨막히는 전쟁, 피와 땀으로 뒤범벅이 된 살육의 현장, 이 곳에도 산수국이 피었을까. 젊디 젊은 청년들은 조국이라는 이름을 걸고 전장에 달려왔다. 의지따로 경험따로 밀려오는 인민군앞에는 중과부적이었으리라. 젊은 군인들은 이곳에서 산수국의 무성화처럼 산화해갔다.

전쟁이 끝났을 때 연기 자욱한 산야의 전장은 한명의 젊은 군인도, 하나의 풀뿌리와 나무둥이도 남기지 않고 검은 대지로 변해버렸다.

꽃잎도 지고 청춘도 져 버린 비극의 전장…,

2013년의 여름, 여항산에 수국이 다시 피었다. 사람도 꽃잎도 남아 있지 않았던 이곳에 수국이 피었으니. 잔인하게도 수국은 신비로운 자태를 뽐낸다.

산수국처럼 아름다웠던 젊은 군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구사 일생, 영웅이 있다. 당시 고려대 2년에 재학 중이었던 김동준씨는 학도병으로 여항산 전투에 참가했다가 어깨에 총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돼 극적으로 생환했다. 김씨는 피란 중 8월 16일, 동료 28명과 함께 학도병에 자원 입대했다. M1소총의 분해결합과 사격연습 등 간단한 교육을 받은 그는 미 25사단 소속 정찰중대에 배치돼 여항산 전투에 투입됐다. 매일 산의 주인이 바뀌었고 너무 많은 군인이 죽어나갔다. 9월 10일 적 후방까지 침투해 정찰하고 돌아오던 김씨는 인민군 매복조에 피습 당해 턱과 오른쪽 어깨에 총상을 입어 야전병원으로 후송됐다. 기록에는 미 25사단과 학도병 군인 등이 북한군 2만명과 격전을 벌였다고 한다. 당시 그는 또 다른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은 한학원 대위를 부산육군병원에서 만났다.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만난 대위와 학도병은 이 때의 인연으로 생환한 뒤 기약없는 각자의 길을 걷는다.

40년의 세월이 흐른 1990년 대위와 학도병은 극적인 상봉을 하게된다. 두 사람은 당시의 기억을 되새기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출발 2시간 50여분만에 좌천마을 하산길을 지나쳐 미산령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곧이어 미산마을 하산길을 택한 뒤 너덜겅을 지나고 돋을샘→암굴→미산마을에 도착했다. 산은 아직 안갯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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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꽃대에 2개의 다른 형태의 꽃이 피는 산수국. 꽃말이 변하기쉬운 마음이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도깨비꽃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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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국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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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항산 정상의 암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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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 싱그러운 낙남정맥의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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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산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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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산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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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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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항산 등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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