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흑인·노예 배반한 프랑스 혁명의 ‘민낯’
여성·흑인·노예 배반한 프랑스 혁명의 ‘민낯’
  • 연합뉴스
  • 승인 2013.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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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중앙대 교수,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출간
1789년 바스티유 감독 탈취 사건으로 불거진 프랑스 시민혁명의 수레바퀴가 진흙탕에 빠져 헤맬 때 위기에 처한 혁명을 구한 것은 여성들이었다.

당시 7000여명의 파리 여성들은 베르사유로 행진해 왕에게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수용하고 굶주린 시민의 빵 문제를 해결하라고 윽박질렀다.

헌법 개정을 요구한 1791년 7월 14일의 ‘100인의 청원서’에도 41명의 여성이 이름을 올렸다.

프랑스의 역사가 쥘 미슐레(1798∼1874)는 훗날 “남자들이 바스티유 감독을 탈취했다면 여성들은 베르사유로 행진해 왕을 사로잡았다”고 기록했다. 그 정도로 혁명기 여성들의 활약은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정작 프랑스 혁명이 성공하자 남성들은 이제 “프랑스 여성들은 모두 가정을 돌보는 어머니의 역할이나 잘 감당하라”며 여성 모두를 정치·사회적 활동에서 제외했다.

사회적 강자인 부르주아들이 프랑스 혁명의 주도권을 획득하면서 그들 계급의 재산권이나 정치적 권리만 챙겼고, 여성·흑인·노예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권리는 배제했던 것이다.

“서양의 다른 여성들보다도 더 선구적이며 희생적으로 여권 쟁취를 위해 투쟁했던 프랑스 여성들에게 가장 늦게 참정권을 줬다는 사실이야말로 프랑스 혁명이 낳은 최악의 역설이다.”(51쪽)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가 쓴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은 프랑스 혁명이 여성들을 해방하고 그들의 평등과 우애를 향상시켰다는 기존의 견해에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서양 여성운동은 프랑스 혁명 덕분이 아니라 오히려 프랑스 혁명이 보인 반(反)여성주의적 정책들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고 말한다.

여성들의 권력이 가정과 육아와 같은 사적 영역으로 축소되고 부르주아 남성들이 공적 영역을 독점하려는 것에 항거하기 위해 근대 여성운동이 시작됐다는 것.

“말하자면 프랑스 혁명은 근대 여성운동이 비극적이며 부정적인 모습으로 태어나도록 해준 ‘못된 산파’였다.”(47쪽)

아울러 저자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생도맹그(현재의 아이티공화국)에서 발생한 해방운동 사례에 초점을 맞춰 프랑스 혁명이 갖는 서구 중심주의적 한계를 지적한다.

프랑스 시민혁명 당시 선포된 ‘인간의 권리선언’은 “모든 인간이 자유롭게 태어났다”고 적었지만, 흑인이나 노예는 아직은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나폴레옹이 1802년에 노예제도를 부활시킨 것이나 1830년 강제 편입시킨 아프리카 북단의 알제리를 1962년까지 지배했다는 사실에서도 인권선언문 뒤에 감춰진 민족적·인종적 편견과 차별을 발견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밖에도 프랑스 혁명과 관련한 세 편의 극영화 ‘메리쿠르’, ‘슈앙’, ‘나폴레옹’을 소재로 삼아 문자기록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혁명의 다른 얼굴을 묘사했다.

저자는 그간 학계의 지배적 이론이었던 정통주의적 해석에서 벗어나 수정주의적 해석에 기반을 두고 논의를 펼쳐나간다. 혁명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정통주의적 시각과 달리 부정적 유산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수정주의적 시각으로 보면 프랑스 혁명의 민낯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더불어 부록으로 실린 혁명 기행문과 저자가 직접 찍은 다양한 컬러 사진들이 현장감을 더해준다.

돌베개. 300쪽. 1만7000원.

/연합뉴스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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