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산길을 걷다보면 '마음이 웃는 길'
포근한 산길을 걷다보면 '마음이 웃는 길'
  • 원경복
  • 승인 2013.07.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건강해 지는 길, 동의보감 둘레길을 찾아서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은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 식보보다 행보(行補)가 낫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약이나 음식보다 걷는 것이 최고의 보약이라는 말이다. 다산 정약용 역시 걷는 것을 ‘청복(淸福)’ 즉 ‘맑은 즐거움’이라고 보았다. 이렇듯 걷기는 이미 선조들로부터 검증된 건강법이다. 그래서일까. 최근들어 전국은 걷기 열풍이 불고 있다. 새로운 길들도 수 없이 생겨나고 있다. 도심에서는 맛볼 수 없는 여유와 낭만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난 까닭이다. ‘동의보감 약초의 고장’으로 유명한 산청에도 동의보감 둘레길이 이어졌다. 한여름에 들어선 요즘. 동의보감 둘레길을 찾았다./편집자 주

동의보감둘레길1
동의보감둘레길


산청에는 총 5개의 지리산 둘레길이 뚫려 있다. 금서면 방곡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에서 시천면 갈티재까지 56.7㎞. 동의보감 둘레길은 산청군 금서면 특리에 위치한 동의보감촌에서 금서면 향양리에 이르는 총 연장 21㎞구간이다. 기존 임도를 활용해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 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체험길로 둘레길의 취지를 그대로 살렸다. 임도와 호젓한 숲길로 이어진 이 길은 제주의 올레처럼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다.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산길이다. 정상에 올라 ‘발도장’을 찍어야 하는 부담감도 없다. 산길을 여유롭게 걷는 동안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눈과 가슴에 담고 가면 그만이다.

출발지인 동의보감촌은 2013년 산청세계전통의약 엑스포의 주무대다. 한방테마공원, 동의보감관, 한방힐링타운 동의본가, 한방기체험장 등 한방자연휴양시설이 잘 조성되어 있다. 동의보감촌 뒤로는 왕산, 옆으로는 필봉산이 우뚝 솟아 있다. 특히 한방기(氣)체험장에 있는 봉황이 새겨진 석경과 140톤에 이르는 귀감석에서 나오는 기운은 상당하다. 이곳에 서서 오링테스트를 해보면 순간적으로 힘이 세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건강이 좋지 못한 사람들이 밝은 기운을 얻어 가고, 임신에도 효험을 본 주부들의 체험이 입소문으로 알려지면서 소원을 기원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동의보감촌 불로문에서 동의보감관을 향해 걷다보면 동의보감 둘레길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을 따라서 구형왕릉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비포장 임도를 따라 숲길을 쉬엄쉬엄 걷다보면 숲이 뿜어내는 피톤치드에 머리가 맑아지고 귓불을 스치는 바람은 상큼하다. 눈 안에 들어오는 풍광에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4㎞ 남짓의 꼬불꼬불한 숲길의 너울을 지나면 산청의 역사와 문화가 시작되는 금관가야 마지막 왕의 무덤인 구형왕릉을 만날 수 있다. 521년 왕위에 오른 구형왕은 막강한 군사체제를 정비하고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한 신라와 전쟁을 피하고 화친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했지만 신라의 생각을 달랐다. 여러 차례 싸움을 겪은 구형왕은 전쟁으로 인해 죽고 피해를 입는 백성을 위해 즉위 11년만인 서기 532년에 국운이 다한 가락국을 신라의 법흥왕에게 넘겨줬다.
구형왕릉 전경
구형왕릉 전경

당시 구형왕은 죽어가며 “나라를 잃은 죄인이기에 돌로 무덤을 만들어 달라”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구형왕릉은 돌을 쌓아 만든 그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왕릉에 내려오는 전설은 구형왕릉을 더 신비롭게 만든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왕릉의 돌을 헐어버리려고 하자 뇌성벽력이 몰아쳐 왜구가 도망했다고 전해진다. 또 깊은 산속임에도 칡넝쿨이 능 근처까지는 뻗어 오다가도 능역 바로 앞에서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어 뻗어나가며, 새들이 능위에 앉지 않고 낙엽 또한 능 밖으로 날려 떨어진다는 것이다. 신비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구형왕릉은 1971년 사적 제214호로 지정되었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돌을 쌓아 만든 왕릉이며 높이가 7.15m에 이른다.

구형왕릉에서 1㎞위 산중턱에 왕산의 유명한 약수터인 ‘류의태 약수터’에 들러보자. 왕산에 뿌리 내린 약초의 기운이 녹아 있는 약수물이 흐른다. ‘류의태’라면 시청률 50%가 넘었던 드라마 ‘허준’에서 나왔던 허준의 스승 아닌가. 이 약수터에 ‘류의태’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명의 류의태가 이 샘물을 이용해 약재를 달였기 때문이다. 류의태는 물을 서른 세 종류로 나누고, 약재의 약효를 내는데 물을 가려 써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가 나눈 서른 세 가지 물 중에 가장 좋은 물은 정화수다. 그 다음이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는 따듯한 ‘한천수’인데 장복하면 반위(위암)을 다스린다고 가르쳤다. 왕산의 약수터의 물이 이에 해당한다고 전한다. 류의태 선생이 활동할 때 한약제조에 사용되었던 샘터(약물통)의 약수는 돌너덜 아래 자리잡은 서출동류수(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물)로 위장병과 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동의보감 둘레길-엄홍길 홍보대사와 함께 걷기-1
동의보감 둘레길-엄홍길 홍보대사와 함께 걷기

한 굽이를 돌아서고 언덕을 넘어설 때마다 아름다운 숲길에 시선을 뺏긴다. 나지막한 고갯길로 오르락내리락 걸음을 옮길 때마다 냉면처럼 시원하고 사탕보다도 더 달달한 공기가 입이며 콧속으로 마구 밀려들어 온다. 길은 이제 왕산의 쌍재로 이어진다.

오지 중의 오지인 쌍재를 넘기 전 쌍재마을이 나온다. 쌍재마을은 함양 휴천쪽에서 산청으로 가던 길로 한때 30가구가 살았던 산촌이었으나 주민들이 하나 둘 마을을 떠나 30년 전에는 사람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폐허로 변했다. 지금은 한 농가만이 마을을 지키며, 주막을 열어 막걸리 한 사발과 손두부로 둘레꾼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다. 쌍재는 바람재와 고동재 중간에 위치한 고개로 승용차가 다닐 정도로 넓다.

동의보감 둘레길은 쌍재에서 지리산 둘레길 코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꼽히는 5코스와 만난다. 지리산 둘레길 5코스는 함양군 동강마을부터 산청군 수철마을까지 11.9㎞ 구간이다. 하지만 개울과 산과 계곡이 있는 길이 방곡리에서 시작되기 때문에(동강마을~방곡리는 포장길을 걸어야 한다.) 방곡리에서 걷기 여행을 시작하는 게 시간도 절약하고 운치도 더 있다.

바람재와 여우재를 지나는 등산로를 가로지르면 처음 출발지인 동의보감촌으로 빨리 내려갈 수 있고, 그대로 동의보감 둘레길을 따라 가면 둘레둘레 둘러서 강구폭포로 내려오게 된다. 동의보감 둘레길은 느리게 걸으며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수평의 길이다. 그 길을 따라 그동안 머릿속을 괴롭혔던 근심과 걱정을 훌훌 털어버리자. 걸을수록 건강해지는 이 길을 느긋하게 걸어보는 건 어떨까. 산청/원경복기자



◆ 찾아가는 길
◇대전 - 통영간 고속도로
산청IC - 우회전 금서 화계방향 10분 - 동의보감촌
생초IC - 좌회전 금서 화계방향 5분 - 산청읍 방향 5분 - 동의보감촌
산청읍 - 금서 화계방향 - 군도 60호선 10분 - 동의보감촌

◇ 내비게이션
경남 산청군 금서면 특리 1300-25


◇ 주변 볼거리: 2013 산청세계전통의약박람회의 주무대인 동의보감촌의 한의학박물관, 한방테마공원, 약용식물원, 휴양 및 숙박시설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줄 대원사 및 내원사계곡, 거림계곡, 중산리계곡, 고운동계곡, 선유동계곡 등도 가볼 만하다. 이 외에 황매산, 정취암, 목면시배유지, 성철스님 생가 등이 있다.

동의보감둘레길
동의보감둘레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