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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시시비비 계곡물에 흘려보내노라(43) 최치원 선생의 은둔처 고운동계곡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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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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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운동 반천마을
고운동 반천마을
 
 
세상사에 둘만 있어도 시빗거리가 생기기 마련인데 복잡한 현대사의 일상에서 시빗거리가 없대서야 오히려 귀가 닫혀서 적막강산이지 광명천지가 될 수 없다. 어우러지고 더불어서 잘되자는 다툼이야 마련이고, 하물며 나랏일에 시빗거리가 없다면 어찌 내일이 어제보다 낫겠는가? 임제선생이 술이 거나하여 집을 향하여 말에 오르자 고삐를 잡은 하인이 한쪽은 나막신이고 다른 한 쪽은 가죽신을 신으셨다고 알려주자 이쪽에서 본 사람은 나막신을 신고 가더라고 할 것이 저쪽에서 본 사람은 가죽신을 신고 가더라고 할 것이니 일 없다고 그냥 가자 하셨다. 진실은 하나이니 시빗거리에는 마음 쓸 것 없다는 뜻도 있었겠지만 ‘세상 바로 볼 줄 아는 놈이 몇이나 있을라구!’ 하고 속 깊은 군담을 분명히 했을 게다. 작금의 국정원 건이나 NLL발언 건이 시빗거리로 들끓는다. 역사는 진실 앞에 솔직해야 한다. 하지만 국사의 논쟁은 너 죽고 내살자는 이전투구는 망국지본이다.

속세의 시비소리 행여나 들릴세라 물 첩첩 산골 뒤흔드는 가야산 깊은 골로 영영 종적을 감추기 전 고운 최치원 선생께서 한동안 은둔하셨던 산청 고운동계곡을 찾아 세상사 시비소리를 잠시 잊고자 길을 나섰다.

35번 고속도로 단성 IC에서 차를 내려 덕천강 원류인 시천천과 나란한 20번도로를 따라 중산리 쪽으로 차를 몰았다.

덕산을 지나 정각사로 들어가는 다리삼거리를 건너지 말고 곧장 직진을 하면 곡점을 지나 중산리로 들어가는 지리산대로가 이어지고 있어 정각사 다음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다리가 반천1교인데 좌회전을 하여 다리를 건너야 하고, 예서부터는 반천계곡을 따라 오르면 마음 놓고 풍광을 즐겨야 할 고운동계곡이 반천5교에서부터 제멋을 드러낸다. 831m의 주산의 된비알 기슭을 감돌며 커다란 바윗돌을 이리저리 끌어안고 구불구불 용틀임을 하는 고운동계곡이 협곡 깊숙이 꿈틀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계곡의 모양새부터 즐겨볼 요량으로 왼편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불계마을로 올라가서 산중턱마루의 이름 없는 정자에 오르니 초여름 더위를 산골바람이 소름을 지우며 일순간에 씻어주는데 머잖은 천왕봉은 앞산이 가려져서 보이지 않고 꼬불꼬불한 고운동계곡을 따라 띄엄띄엄 반천마을의 예쁜 집들이 숲 그늘을 속에서 고즈넉한 평화로움에 깊숙이 파묻혔다. 작은 마을을 무릎에 앉히고 등받이가 되어주는 진녹색의 비탈산은 모닥모닥 모여진 활엽수의 잡목과 대나무 숲 말고는 중허리까지 온통 녹차 밭이다. 고운 최치원 선생께서 중국서 귀국길에 가져와 뿌렸다는 야생차 밭이라는데 그 면적이 수 만평이라니 대단하다. 빨래걸이의 장대를 앞 뒷산으로 걸쳐도 될 것 같이 좁은 골짜기는 전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집집마다 내걸린 간판에는 하나같이 ‘고로쇠, 토종꿀, 녹차 팝니다’이다.
2고운동 상여바위
고운동 상여바위

반천마을 끄트머리를 벗어나자 낭떠러지의 계곡의 따라 승용차도 교행이 어려운 좁은 길로 이어졌다. 텃밭만한 휴경지에 차를 세우고 계곡으로 내려서니 ‘쏴-’하는 소리가 물소린가 했더니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활엽수 이파리를 비비대며 스쳐가는 소리였고 커다란 바윗돌 틈새를 따라 바쁘게 흐르는 물소리는 인적 없는 계곡을 카랑카랑하게 울려댄다. 자잘한 자갈도 한 줌 없이 빚은 듯이 반지르르한 반석위에 비단결 같은 심산옥수를 깔아 놓고 우람한 바윗돌이 서로의 등을 대고 눕고서고 멋대로 인데 밟고 가든 넘어가든 개의치도 않는다. 일상에 찌든 오장육부라도 씻었으면 하는 맑은 소에 발끝을 적시며 숨바꼭질을 하듯 바위틈을 헤집고 10여m쯤 오르자 계곡 한 가운데에 고래 등 같은 커다란 바위가 덮칠 듯이 막아선다. 고개를 한끝 재껴서야 바위 끝이 보이는데 모질게도 명 붙임을 한 작은 소나무와 크기가 엇비슷한 활엽수 서너 그루가 수림을 비집고 계곡틈새로 쏟아지는 칠월의 뙤약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바위 끝 정수리에서 내려다보고 섰다. 지리산 앞에 두고 주산까지 옆에 끼고/ 낙남정맥 품에 안고 설 자리가 그리 없어/ 바윗돌 정수리에 어쩌자고 올라섰나? 계곡 한 가운데에 반석위에 오뚝하게 놓여있는 상여바위다. 청사초롱이 지붕을 장식한 영락없는 꽃상여이다. 빚은 듯이 반지르르한 반석위로 비단결 같은 맑은 물이 얄브스름하게 결을 만들며 흐르고 있어 한참을 내려다보고 앉았더니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구름을 탄 듯이 반석이 떠가는 것 같고 상여바위도 이승과 하직하고 북망산천으로 떠가는 것만 같다.

아무런 안내표지도 없는 상여바위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반천마을 앞 정자에서 하계복씨를 만난 행운 때문이었다. 구전조차 잊혀져가는 안타까움에 향토사 하나라도 기록해 두자는 애향심이 깊어서 지금도 옛 이야기를 기억나는 대로 쓰신다며 반천리의 고운동계곡을 낱낱이 설명해 주셨기 때문에 배바위와 선바위 그리고 굴피나무와 고운폭포를 찾아 다시 차를 몰수 있었다.
 
3고운동 배바위
고운동 배바위
4고운동 굴피나무
고운동 굴피나무


수림의 터널을 벗어나자 꽤나 널따랗게 천공이 파랗게 뚫리고 계곡물 소리가 카랑카랑하여 절집 하나쯤이 있을 성싶은 곳에 정갈하게 단장을 한 기도원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왼편으로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가 청학동 아래 묵계로 이어진다는데 길이 험하여 차로 가는 이는 없다고 해맑은 얼굴의 기도원 새댁이 미리 일러주며 그늘에다 차를 세워 뒀다가 하산길에는 약수도 떠서 가라며 배바위는 불원간이고 고운폭포는 30분 거리라며 계곡을 따라 오르라고 일러준다.

물소리 바람소리가 산새소리를 삼키는데 울창한 활엽수의 숲에 묻혀 콸콸거리고 흐르는 계곡물 한가운대로 거무스레한 목선의 웅장한 뱃머리가 푸른 숲을 헤집고 하늘 높이 불쑥 나타났다. 커다란 바위가 과감하게 뱃머리를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속절없이 깔려서 뭉개질 뻔 했다. 한눈에 봐도 커다란 목선이 뱃머리를 하늘 높이 곧추세우고 위용을 자랑하는 배의 모습 그대로였다. 우현선수 밑창부분의 작은 함몰이 좌초의 흔적인지 고운 최치원 선생은 배를 버리고 가야산으로 가셨단 말인가? 선생의 피리소리를 듣고 멀리 당나라의 쌍분녀의 혼령이 밤마다 찾아와 보은의 시중까지 들었건만 선생께서 종적을 감추자 배바위 옆의 선바위 속으로 혼령도 들어가 버렸으니 피리골이라는 지명과 쌍녀바위라는 또 하나의 별칭만 남겼을 뿐이다. 그냥은 오를 수 없는 높이인데 누군가가 원목을 사다리용으로 좌현에 걸쳐 두어서 갑판위로 올라갔다. ‘주암대’라 음각된 평평한 바닥은 전후로 25보 좌우로 12보였다. 뱃머리에 우뚝 서니 기암괴석이 무릎을 꿇고 발밑에 가득하여 고운 선생의 피리소리는 들리지 않고 진격을 호령하는 전함의 함장이라도 된 듯이 양양한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들뜬 마음을 가다듬고 조심스레 하선을 하자 발끝아래 돌부리에 무슨 사연이 있기에 손바닥만 한 바위틈에 석비도 상석도 없이 잔디조차 성글은 초라한 분묘가 계곡물 소리에 묻혀서 처량하기 그지없다.

배바위 뒤의 커다란 굴피나무는 참나무로선 최고령으로 전국 제일의 크기라는데 안내판도 없다. 허리둘레가 장정 네 사람이 손을 맞잡아야 닿는 거목으로 등껍질 골골이 온갖 기생식물이 무성히도 자랐건만 속세를 떠나서일까 세월을 잊고 마음껏 푸르렀다. 하고 많은 사람들이 굴피나무에 소원을 빌고 빌며 절을 해대는 돌바닥은 닳고 닳아 빛나는데, 바깥양반의 쾌유를 비는 절박함일까? 손주를 점지해 달라는 간절함일까? 아니면 자식의 일자리일까? 배필일까? 어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희생인가? 떨어지는 땀방울은 애절한 진액이 되어 바닥을 적신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칠 절이 아니어서 까치발을 하고 굴피나무 뒤를 돌아 계곡을 따라 고운폭포로 향했다. 이정표도 없는 산길을 따라 계곡 건너기를 반복하며 조릿대인 산죽군락지를 꼬불거리며 오르자 콸콸거리는 물소리가 골을 메우는데 폭포라기에는 낙차가 낮지만 은빛을 번쩍이며 쏟아지는 물소리는 세속의 시비소리 행여나 들릴세라 고운동계곡을 우렁차게 울리고 있었다.

/시민기자
5고운폭포
고운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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