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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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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20  16: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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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57)
(18)지리산문학관과 장순하의 시조론 
 
지난 회에 이어 지리산문학관에 일생의 장서를 기증한 장순하 시조시인의 이야기를 할까 한다. 장순하(1928- )의 지난 이야기는 연보에 의한 1950년대까지의 역정이었는데 그 이후는 이미 그 정도의 연력으로도 시조단의 거목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단을 할 수 있는 것이므로 연보적 기술은 여기서 그칠까 한다. 대신 우리 시조단에서 작품과 비평이 함께 가는 시인이므로 시조단의 활력이 된 그의 시조론을 살펴보는 것이 그를 이해하는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한다.

먼저 장순하의 첫시조집 ‘白色賦’(1966)가 나온 시절 쪽으로 앵글을 잡아본다. 이때 그는 출판사 ‘일지사’의 편집고문이었는데 고등학교 참고서 집필로 성가를 올리고 있을 때였다. 사장이 그런 공로를 인정하여 시집을 내주었는데 제호는 초정 김상옥이 쓰고 서문은 노산 이은상의 글을 받아 실었다.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일석 이희승,소설가 김동리, 시조시인 조종현(조정래의 아버지), 시조시인 이영도(청마의 서간문집으로 유명) 등 많은 문단 인사들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첫시조집이 실험으로서의 시조, 곧 사설시조, 엇시조 등을 창작해 평시조와 나란히 실었다는 것이다.

장순하는 이 시집에서 사설시조 형식으로 쓰기도 하고 사설시조와 평시조를 섞기도 엇시조를 쓰기도 했다. 전통시조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다분히 실험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그 당시의 느낌을 들어보자. 그는 박시교와의 월간문학 대담에서 “우선 그 앞에 당시의 시조문단이라는 것을 조금 이야기하면 그때 현대시조를 쓴다는 사람들도 고시조 쓰는 사람들이었어요. 시조인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기가 들어앉은 틀을 깨는 것을 두려워하는 그런 성향이 있는 갓 같아요. 내가 백일장 작품 예선작을 내면서 내 주장과는 달리 일반 시조쪽으로 많이 다듬어 냈어요. 예선 당선작이, 그런데 그것이 장원으로 뽑히길래 내가 대담하게 해도 먹혀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했는데 본선에서는 또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요.”

장순하는 비교적 실험적인 시조를 쓴 것이고, 그것도 짧아지는 실험이 아니라 길어지는 실험에 주의를 기울인 것으로 읽힌다. 30년대 초반 이은상은 양장시조를 제창하고 시조를 썼는데 3장에서 한 장을 없애버린 시조를 쓴 셈이다. 그러자 진주의 이명길 같은 시조시인은 절장시조라 하여 종장 한 장으로만 쓰자는 주장을 했다. 이들은 짧아지는 시조를 시도했던 것이다. 장순하는 시조의 길에 들어서면서 어쨌든 고시조에서는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 유의한 것으로 보인다. 조종현이 시조를 배우기 위해 최남선의 집을 방문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필자의 대학 3한년 때 시조론 강의(조종현 3학점)에서였다. 1시간 동안 기다리고 있는데 최남선은 무슨 급한 글을 쓰고 있었는지는 모르나 조종현을 거들떠도 보지 않고 있다가, “선생님 가 보겠습니다.”하자 “뭣이라고? 시조를 써보겠다고? 그것 어려운 것 아니야. ‘노매라’만 붙이면 돼.”하더라는 것이다. 고시조투를 벗기면 된다는 말임을 조종현은 알아들었다는 것 아닌가.

어쨌거나 최남선도 시조를 쓰면서 고시조를 벗어나야 한다는 데다 액센트를 두었고 조종현도, 장순하도 공히 고시조를 벗기고 현대성의 확보가 현대시조의 과제임을 깨달았던 것 같다.장순하는 체질상으로 시조시인들이 자기의 껍질 속에 안주하려는 특성이 있는데 이를 떠나 시조를 현대화해야 된다는 신념으로 끓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장순하는 사설이 사설로 증가하는 개념이 아니라 시적 정서의 풍성함으로 가는 길이 사설이라는 것임을 강조한다.

장순하는 시조운동과 저변확대를 위해 ‘경시조’를 제시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누구나 작품성이 있는 본격시조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활 속에서 편하게 쓰는 경시조, 일테면 아마츄어리즘으로서의 가벼운 시조를 인정하자는 주장이다. 평이성 즉흥성, 친근성을 드러내는 경시조야 말로 국민시조로 가는 기초이자 징검다리라는 인식일 터이다. 장순하는 스스로도 초기에는 경시조를 썼다는 것을 인정한다. 경시조는 못쓰는 사람의 작품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다같이 보편적인 정서를 열어가는, 그것 자체가 시조의 생활화와 육화의 단계로 본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현대시에도 ‘경시(輕詩)’의 단계를 고려해 보면 어떨까,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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