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도덕 불감증
공중도덕 불감증
  • 경남일보
  • 승인 2013.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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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운 (객원논설위원, 창원대 행정학과 교수)
한여름 무더위에는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그는 것도 피서의 한 방법이 된다. 탕 안에서 심신의 평안함을 느끼던 중 어린아이의 계속되는 고함소리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소리 지르기는 계속된다. 사람들이 불편한 표정으로 이 아이를 쳐다본다. 특별한 사정이 혹시 있나 하고 유심히 살펴보니 별다른 장애가 없는 평범한 어린이다. 소음이 꽤 오래 계속되어도 보호자는 눈에 띄지 않는다. 냉탕으로 가니 이 아이가 물장구를 치고 있다. 넓지도 않은 냉탕 속의 어른들은 튀기는 물을 맞으며 불쾌한 표정을 하고 있다.

이 순간 냉탕으로 들어오는 한 남자를 향해 아이가 아빠라고 부른다. 아빠라고 불린 사람이 건성으로 “하지 마라”고 얘기한다. 뭘 하지 마라는지 개념 전달은 되지 않고 있다.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고 제어할 의도가 엿보이지도 않는다. 애 아빠를 의식하며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리 지르고 물 튀기는 것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며 착한 어린이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이는 전혀 새겨 듣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도 애 아빠는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순간 지난번 경험이 떠오른다.

식당에서 친구와 담소를 나누며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남자아이가 소리 지르며 테이블 사이를 뛰어 다니고 있었다. 손님들의 불편한 표정을 의식했는지 애 엄마가 “하지 마”라고 지나치듯이 얘기했다. 아이의 행동을 제어할 의지도 자신감도 없는 무기력한 목소리였다. 그러다 갑자기 애 엄마가 한 말이 화살이 되어 우리 테이블로 날아왔다. “아저씨 이놈 한다.” 참 억울한 상황이었다. 아이의 행동에 불만을 제기하지도 않았는데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아이의 행동을 질책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자신의 행동이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어린아이에게는 우리가 단순하게 적대적 관계가 되어 버렸고 그 아이는 방어적 심리상태에서 경계하며 쳐다보았다.

인간의 사회화 과정은 가정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부모를 비롯한 가족의 가치, 선호, 언행 하나하나가 어린이에겐 결정적인 사회화 환경이다. 인간공동체에서 개인은 세상에 이로운 존재가 되는 것 못지않게 타인에게 해로운 존재가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공중도덕 의식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중대한 심리적 인프라이다. 도시와 국가의 이미지와 품격도 경제수준과 과학기술 수준 못지않게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을 의식하고 배려하는 심리적 태도가 결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배려는 우선적으로 언행과 표정에서 나타난다. 나의 얼굴은 내 개인의 것이나 나의 표정은 타인들이 바라보기 때문에 공동체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개인의 행동은 그 자체가 공공재일 수도 있고 사회적 비용이 될 수도 있다.

온탕으로 자리를 옮기니 또 다른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 푸근한 마음으로 목욕을 즐겨야 할 사람들이 너무 경직되고 불행한 표정을 짓고 있다. 뜨거운 물에서 고통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은데 좀 편안한 태도로 옆 사람에게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을 지으면 모두가 좋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서 표정의 공공성과 폭력성에 대한 의식 확산과 실천이 있으면 좋겠다. 경직된 표정과 낮은 행복지수의 관계를 생각하며 욕탕에서 나오니 더 큰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 육중한 몸집의 사람이 온 몸을 굴리면서 누웠다 일어났다 하며 스트레칭 체조를 하고 있다. 좁은 공간에서 민망한 부위를 생생하게 노출시키면서 열심히 운동을 한다. 바로 등 뒤 벽 쪽에서 샤워하며 양치를 하는 사람이 치약물을 바닥에 세게 내뱉고 난 뒤 큰소리를 내며 침도 뱉는다. 여러 가지의 무의식적 폭력이다.

서둘러 몸을 헹구고 나서 탈출하는 느낌으로 탈의장으로 나오니 아까 그 남자아이가 계속 뛰어 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 몸을 말리던 손님들이 불편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이것을 지켜보던 목욕탕 직원이 아이에게 가더니 사탕을 하나 건네니 잠시 조용해진다. 머지않아 폭력과 공중도덕 불감증으로부터 자유로운 평화로운 목욕이 되길 바라며 밖으로 나섰다. 2013년 지구촌의 유력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이런 내용 및 수준의 글이 나타나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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