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입양인 친가족 찾기 캠페인] 박은주씨
[해외입양인 친가족 찾기 캠페인] 박은주씨
  • 곽동민
  • 승인 2013.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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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어머니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가요"
테디베어와_덴마크 1979
덴마크로 입양된 해인 1979년 덴마크 집 앞마당에서 촬영한 장은주씨의 어린시절 모습.
 
 
“입양될 당시에 두 살이 갓 넘었을 때여서 한국에 대해 남아 있는 기억은 없어요. 하지만 제 몸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항상 낳아 주신 어머니와 한국에 대해 갈망하고 있으니까요.”

1977년 5월5일(음력 3월18일), 당시 김해군에서 박은주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어머니는 고혜미자(1940년생)씨, 아버지는 박종열(1945년생)씨였다.

생후 2년여 동안 어머니·할머니(신옥순)와 함께 부산 영도구에서 생활했던 박은주씨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병환과 부모님의 결별 때문에 가족과 헤어져야 했다.

1979년 5월19일, 태어난지 2년 3개월 만에 가족과 헤어진 박은주씨는 부산의 남광보육원으로 보내졌다. 이후 박은주씨는 덴마크로 입양을 가게 된다.

박은주씨는 “입양될 당시 저는 81cm의 키에 10kg의 몸무게를 갖고 있었어요. ‘아빠’나 ‘엄마’ 같은 쉬운 한국말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라며 “아버지는 그때 당시 키가 크고 체격이 있으셨는데 막노동 같은 일을 하고 계셨어요. 증인의 이름도 있는데 서종열이고 저는 그분 역시 찾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박은주씨는 1979년 덴마크로 입양된 후로 지난 2012년 9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사람들은 친절하고 배려심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푸른 산으로 가득한 한국의 자연이 너무 아름답게 다가왔어요. 덴마크는 대부분 평지거든요.”

박은주씨는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비로소 ‘내 집에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전 항상 금발의 백인 여자들만 나오는 덴마크의 방송들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저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모델들도 금발의 백인이 아닌 한국인들이잖아요”라며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저를 정말 행복하게 해 줬어요. ‘한국사람처럼 생긴 나도 인간으로써 괜찮은 거구나’하고 느끼게 해줬거든요. 덴마크에서는 그런 기분을 절대 느끼지 못했었죠. 전 한국말을 다섯 단어 이상 못하지만 한국이 정말 내 집이라고 느껴요”라고 말했다.

박은주씨는 양부모님의 배려로 한국에서 입양한 남동생과 함께 덴마크에서 자랐다.

그는 “양부모님들은 원래 친남매는 아니었지만 똑같이 한국에서 입양한 제 동생과 저를 사랑과 관심으로 키워주셨어요”라며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나가 바다에서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했던 기억은 잊지 못할 추억이죠. 정말 조용하고 평화로웠어요”라고 어린시절을 회상했다.
크리스마스 빵굽기
양아버지(가운데), 남동생(사진 왼쪽)과 크리스마스 빵굽기를 하고 있는 장은주씨의 어린시절 모습.
덴마크에서 크리스마스때
크리스마스를 맞아 남동생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장은주씨의 어린시절 모습.
 

박은주씨는 특히 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깊었다.

그는 “저는 사랑하는 양부모님이 있었음에도 덴마크를 한 번도 내 집처럼 느낀 적이 없었어요. 항상 마음 속에 커다란 아픔, 슬픔 그리고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에 대한 갈망이 있었죠. 어머니에 대해서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고 확신합니다. 제 인생의 첫 2년을 함께했으니까요”라며 “2012년에 한국에 왔을 때 전 정말 처음으로 제가 ‘괜찮다’고 느꼈어요. 마침내 집에 온 거였죠. 덴마크에 다시 돌아가고 나서는 한국이 정말 많이 그리웠고, 다시 한국에 가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감정적으로 정말 힘들었어요. 너무 좋은 덴마크 부모님들과 가족과 함께 많은 축복을 받으며 지내왔지만, 제가 그렇게 그리고 바라는 친어머니는 없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박은주씨는 지난 2012년 한국을 찾았을 때 해외입양인연대의 도움으로 친어머니를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리 많은 정보를 찾지는 못했다.

그는 현대무용을 전공해 퍼스널 트레이너로 활동했다. 다양한 스포츠 대회에 나갔고, 유로피안 챔피언십에서 덴마크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고. 지금은 은퇴해 쉬면서 친부모님을 찾아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박은주씨는 “매일매일 그립습니다. 이제 나이가 많이 드신 어머니가 건강하시고 무사하신지 걱정이에요. 정말 어머니가 보고 싶고 단 하루도 어머니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어요”라며 “전 이제 36살이고 제 어머니는 이제 73세입니다. 그분에 대한 것을 아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그건 제게 세상 전부와도 같습니다. 제가 제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줄지도 모르고요. 어머니를 그리는 이 아픔을 치료해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고 말했다.

또 “친어머니·아버지를 찾는 것이 제 인생의 가장 큰 꿈 입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정말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예요”라며 “만약 저의 어머니나 아버지나 혹은 그분들을 아는 어떤 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제가 정말 친가족을 사랑하고 보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어요”라고 그리움을 털어놨다.


12 나_몰디브 여행에서_2012
지난 2012년 몰디브 여행을 떠난 장은주씨의 현재 모습.




#취재에 도움 주신분=해외입양인연대(GOA‘L) 백주연 씨.
박은주 씨에 대해 알고 계신 분은 아래로 연락 바랍니다.
(사)해외입양인연대(G.O.A.’L.)
G.O.A.‘L. 홈페이지 : www.goal.or.kr
전화번호 02-325-6585, 6522(담당자 백주연)

1 입양 전 찍은 첫 사진
1979년 덴마크로 입양 전 찍은 장은주씨의 첫 사진. 부산 남광보육원의 관련서류에 있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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