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뿔났다
며느리가 뿔났다
  • 경남일보
  • 승인 2013.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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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근 (객원논설위원, 가야대 행정대학원장)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비유하자면 시어머니와 며느리 신세와 같다. 지방자치제가 부활되어 며느리가 살림을 떼어 나온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살림살이 지침서가 워낙 두꺼워서 며느리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여전히 별로 없다. 인사도 조직도 재정도 시어머니의 허락이 먼저 떨어져야 한다. 시시콜콜한 간섭은 말할 것도 없다. 말로만 분가한 것이지 실제적으로는 아직도 모든 결정권은 시어머니 손에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흔히 반쪽짜리 지방자치, 무늬만 지방자치라고 말한다.

특히 돈이 문제다. 우리나라의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은 현재 80% 대 20% 수준이다. 지방자치 20년 동안 시어머니가 내준 살림은 고작 20%에 불과하다. 80%는 아직 시어머니 수중에 있다. 적어도 40% 정도는 살림을 내줘야 제대로 꾸려 나갈 수 있다고 수없이 건의를 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그래서 살림은 따로 나왔지만 식구들 밥도 못 챙기는 경우도 많다. 새살림이라도 하나 장만하려면 발이 닳도록 뛰어 다니면서 시어머니 비위를 맞춰야 한다. 전국에서 이 며느리, 저 며느리 할 것 없이 모두 못살겠다고 야단이라 경쟁은 갈수록 치열하다. 그래도 시어머니 눈에 나면 더 힘들어지기 때문에 지금까지 참아 왔다.

시어머니의 횡포가 갈수록 심하다. 복지확대를 하겠다고 생색을 내더니만 돈은 며느리도 같이 부담하라고 떠넘긴다. 영유아 무상보육이 대표적이다. 없는 살림에 등골이 휜다. 이 때문에 벌써 곳간의 바닥을 드러낸 며느리도 있다. ‘보편적 복지는 시어머니 곳간에서 부담하는 게 맞다’고 한 대통령의 약속은 거꾸로 가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도 며느리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취득세 인하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중앙정부는 주택경기 활성화 목적으로 취득세 인하조치를 수시로 시행해 왔다. 취득세는 며느리 곳간에 들어갈 돈이다. 당연히 그때마다 며느리 살림은 쪼들릴 수밖에 없다. 시어머니 곳간에서 보전해 주겠다는 약속은 지금까지 제대로 지켜진 경우가 없다.

이번에 시어머니가 발표한 취득세 영구 인하방침은 ‘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에서 막가파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며느리 곳간의 40% 정도를 채워 주는 취득세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영구 인하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며느리 살림을 완전히 거들 낼 심상이다. 우리 경남의 경우는 특히 취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경남도의 자료에 의하면 2011년 기준으로 전체 도세 2조 58억 원 중 취득세가 58%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9억 원 이하 주택의 취득세를 1%로 인하하면 연간 1800억 원의 세수가 줄어든다.

그래서 며느리들이 뿔났다. 참는 것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이번 방침은 네가지가 부재하다는 며느리의 외침은 백번 들어도 옳다. 첫째로 소통부재다. 아무리 시어머니라도 며느리 곳간을 한마디 상의도 없이 마음대로 퍼가선 안된다. 둘째로 취득세 보전방안 부재다. 급한 사정으로 며느리 곳간을 퍼가려면 다시 채울 수 있는 방안은 마련해 두는 것이 최소한의 상식이다. 이번에는 그 상식마저 지키지도 않았다. 셋째로 신뢰부재다. 이미 오래전부터 시어머니에 대한 신뢰가 깨져 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든 곧이곧대로 믿을 며느리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어떤 달콤한 보전방안을 내놓아도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넷째로 효과부재다. 취득세 인하가 주택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이 각각이다. 자칫 며느리 곳간만 축내고 기대효과는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정부의 발표는 지방자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그리고 지방재정을 급격히 악화시키는 조치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근본적 원인은 우리나라의 불완전한 지방자치제도에 있다. 지금처럼 아우성칠 때마다 짜깁기 대책을 내놓는 식은 갈등과 불신만 키운다. 이번 기회에 국회, 중앙정부, 지자체가 함께 나서서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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