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南冥)선생을 그리다
남명(南冥)선생을 그리다
  • 경남일보
  • 승인 2013.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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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 (관봉초등학교 교장)
구름처럼 가벼운 삶, 잠시 머물다 가는 세상이지만 참 고맙게도 오늘은 여기까지 왔다. 햇볕 가득한 덕천서원의 마당 한가운데 서서 하염없이 떠도는 흰 구름만 가슴에 쓸어 담는다. 대청마루에 앉아 글 읽는 아이들의 소리는 참 낭랑하다.

500여 년 전 합천에서 태어나 산청인 이곳 지리산 자락에서 은거하며 몸에 경의검을 품고 허리에 방울 성성자를 달아 스스로를 경계하며 선비의 모범을 보이신 위대한 교육자이며 사상가, 그러면서도 이 땅의 훌륭한 스승이셨던 그분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곳이 덕천서원이다. 당시에도 행동하는 지성으로 추앙을 받으신 그분은 명종에게 올린 ‘왕을 고아로, 대비를 과부로….’ 조선을 흔든 상소 ‘단성소’의 주인공이셨다.

탐관오리들이 들끓는 정치판과 부패한 왕실을 통렬하게 꾸짖고 당시 국왕(명종)의 어머니로 수렴청정하던 문정왕후(대비)를 과부로 백성의 소리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어미의 치마폭을 벗어나지 못하던 명종을 고아라고 불렀으니 절대권력 왕정 하에 하나 뿐인 목숨을 초개 같이 여기는 선비의 기개가 하늘을 찌를 듯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그분이 가르친 50여명의 제자들은 선조 임금 임진년에 국난을 당하매 온몸을 던져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선 나라를 구하는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의령에서 떨치고 일어난 홍의장군 곽재우, 합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나중에 영의정까지 오른 정인홍, 진주성 전투에서 성이 함락되자 아들과 함께 강으로 몸을 던져 최후를 맞이한 김천일과 같은 분들이 바로 그분의 대표적인 제자들이다.

선생께서 조정이 내리는 벼슬도 하찮게 여기며 거절한 이유를 밝힌 글을 보면 임금이 부덕해서 조정에 탐관오리들이 들끓고 있다고 직언을 했고, 임금이 부덕해서 같이 일하기 어려우니 학덕을 더 쌓으라는 암시를 올렸다니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오늘 마당 귀퉁이에선 나이 먹은 백일홍나무는 그때 일을 알기나 할까. 길게 드러누운 무심한 세월을 머리에 이고 선 은행나무는 덕천서원의 앞 시정문 문턱을 넘나들던 그 옛사람들을 기억해낼지 모르겠다. 그러나 덕천서원은 사후 그분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학들이 힘을 모아 세운 서원일 뿐. 그분이 예순 한 살에 은거하며 제자를 길렀던 곳은 지리산 천왕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덕천강 기슭에 있는 산천재(山天齋)라는 유적지이다. 그리고 2001년 선생의 탄생 500주년을 기념해 따로 세운 기념관에는 그분의 사상과 가르침을 정리하여 보여주는 전시관이 있어 선생을 찾는 사람을 맞이한다.

오늘은 덕천서원 옛 선비들의 낭랑한 목소리 대신 초등학교 아이들이 경의당 마루에 앉아 복건을 매고 쾌자를 걸친 채 남명 선생의 후손이신 월람 조종명님이 가르치시는 옛 선비정신을 배운다. 우리들이 할 일은 다음 세대들에게 남명 선생의 오랜 옛이야기를 잊지 않고 전해야 하지만 아직 철없는 아이들은 귓등으로 흘려 넘기고 무심한 세월은 남명 선생의 가르침을 바람결에 흩어 놓을 뿐이다.

/관봉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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