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58)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58)
  • 경남일보
  • 승인 2013.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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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지리산문학관의 학술대회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58)
(19)지리산문학관의 학술대회 
 
지리산문학관에서는 인산 김일훈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과 공동으로 2009년 이후 지리산문학 학술대회를 개최해 왔다. 그간 ‘지리산유람록 학술대회’, ‘지리산 기행문학 학술대회’, ‘지리산불교문학 학술대회’ 등이 그 대회로 개최된 것이었다. 오늘은 ‘지리산 유람록 학술대회’를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시대 사인(士人)들은 산을 오르는 의미의 ‘등산’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물론 ‘등산’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말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구한말 이후 신시대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등산’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 사인들은 등산이 아닌 ‘유람’이라는 말을 썼다. 그리고 ‘유산’(遊山)이라는 말도 가끔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조선조 선비들은 오늘의 ‘등산’ 개념과는 다르게 산을 올랐던 것이 아닌가 한다. 최석기 교수의 유람록 관련 논문을 보면 유람의 목적을 두 가지로 정리한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는 정신적 지향을 높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탈속적 정취를 즐기는 것이다. 첫째는 공자가 태산에 올라 천하를 작게 여긴 것을 본받아 정신적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것에서 정리된 것이고, 둘째는 청학동 삼신동 등 선계에서 노닐며 탈속의 경지로 가고자 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 어쨌든 공자나 청학동 등을 제외하고서도 그 두 가지 지향은 보편성을 얻은 것으로 볼만하다.

며칠 전 선비들의 유람을 생각하며 점심 시간을 이용하여 친구 둘과 함께 지리산 반천계곡에 탁족이나 한다는 마음으로 달려간 일이 있다. 필자가 잘 가는 장소에는 미리 와서 자리잡은 팀이 있었다. 그런데 그 팀은 다른 팀이 아니라 존경해 마지않는 J고등학교 두 해 선배님들이었다. 이 팀은 자주 지리산 언저리를 ‘유람’하며 다닌다는 것이었다. 이 글에 이분들 존함을 올리고 싶은 것은 이분들이 유람세대가 아니고 1959년에 J고를 졸업한 이른바 ‘등산세대’이지만 유람이라는 정신으로 산을 오른다는 점 때문이다.

하순봉(경남일보 회장, 4선의원), 강치규(J고 29회 회장), 황원규, 정덕식, 장문석, 하계수, 박철종, 김경태, 정대옥 등인데 이분들은 각자 회원으로 기꺼이 만족하는 분들이라는 인상을 필자 일행에게 주었다. 식자들의 말을 빌리면 ‘온유돈후’(溫柔敦厚)한 얼굴을 자연스레 지니고 있었다. 거기다 본란에서 반가이 맞아 주어야 할 다른 까닭이 있는데 한결같이 본보의 애독자들이라는 사실이다. 모두가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을 챙겨서 읽는다는 것이었는데, 필자는 이 순간 7년 연재의 보람을 여기서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필자가 지역에서 가까이 만나는 분들 중에 7년여에 ‘글을 잘 읽고 있다’는 언급을 해준 이는 다섯 손가락 안에 그친다. 이제 열네 분으로 늘어났으니 필자는 다단계 로케트의 다음 점화를 준비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석기 교수의 논문 ‘조선시대 시인들의 지리산, 천왕봉에 대한 인식’을 참고로 지리산 명칭에 대해 살펴보자. 논문과는 별개의 근거로 경상대학교 교가에 “장백의 힘줄기는 뻗어 솟은 방호산”을 먼저 떠올리면 ‘방호산(方壺山)’이 지리산의 다른 명칭으로 다가온다. 다들 장백과 방호산에 대해 의문을 품는데 장백은 북한에서 백두산을 가리킬 때 많이 쓰는 말로 보인다. 방호산은 자리산을 가리키지만 달리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교가 작사가 설창수는 가사에서 낯선 말 갖다 놓기에 능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지리산은 문헌기록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명칭은 지리산, 두류산, 방장산이며 여기에 덕산(德山)이라는 명칭을 하나 더할 수 있다. 이외에도 불복산(不伏山), 방당산(磅?山), 봉익산(鳳翼山) 등이 있으나 조선시대 정신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문헌 기록상으로는 지리산이 가장 먼저 나타난다. 최치원의 문집 ‘고운집(孤雲集)’에 세 번 나타난다. 그리고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이제현의 ‘익재난고‘(益齋亂稿), 이색의 ’목은집‘(牧隱集) 등에도 나타난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지리산(智異山)과 지리산(地理山)이 혼용되어 나타난다. 두류산이라는 명칭은 의상의 ’청구비기‘(靑邱秘記)에 처음 보인다. 이 명칭은 고려말 신진 사대부들에게서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조선 사인들이 가장 선호하던 명칭이다. 방장산이라는 명칭은 조선 전기의 문헌에 나타난다. 방장산은 삼각산의 하나이다. 덕산(德山)이라는 명칭은 다음 회에서 언급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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