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실 (진주외국어고 교장, 신지식인)
원래 피서(避暑)는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으로 다니는 것을 말하는데 더위는 피해 다닌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차라리 피서보다 망서(忘暑)를 즐기면 어떨까. 망서는 말 그대로 더위를 잊는 것이다. 어찌 보면 더위의 실체는 주관적 개념이 우선하기도 한다. 쉽게 부채질을 하는 손보다 먼저 덥다는 인식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더 더위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더위는 피할 대상이 아니라 수용해야 할 현상이라고 인식할 때 비로소 더위를 잊을 수 있다. 서두에서 이야기 했듯이 여름이 무덥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여름이 덥지 않으면 더 이상 여름이 아니다. 더위를 인정하는 사람은 더위를 덜 느끼고 더위를 거부하고 피해 다니는 사람은 언제나 무덥다는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동산 스님은 무더위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자신과 더위가 하나가 되어라’는 것이다. 자신과 더위가 별개의 일로 떨어져 있으면 더위는 언제나 더위로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더위를 이기는 방법으로는 피서를 택하고 있지만 망서를 실천해 보면 어떨까. 더위를 피하는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 주체가 아닌 환경의 힘을 빌리는 수동적 입장이지만 더위를 잊는 것은 몸과 마음이 주체가 되는 환경의 힘을 이끌어 내는 능동적인 방법이 된다.
며칠 전 폭염경보가 발령된 날 오후에 등산복을 입고 등산모를 쓰고 아파트 문을 나서면서 이웃주민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이웃주민은 이렇게 무더운 날 어떻게 산행을 하시려고 하면서 걱정을 태산같이 했다. 산행을 하면서 더 많은 더위를 느낄 나보다 이웃주민이 더 더위를 많이 느낀다. 우리는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즐기라고 했다. 산행을 할 때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힘들지만 한편으로 더위를 잊는 즐거운 시간이다. 산행이 동적인 망서 활동이라면 독서는 정적인 망서 활동이다. 아무리 무더운 날이라도 독서 삼매경에 빠진다면 더위는 잊게 될 것이다.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라도 산행과 독서를 하면서 이 여름의 폭염을 잊어 보길….
고영실 (진주외국어고 교장, 신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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