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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따라 아찔한 걸음 '도'를 묻는다경남일보 선정 100대명산 <63>구미 금오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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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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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옆으로 실타래처럼 위태롭게 이어진 도선굴 가는 길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고려 말 충신 야은 길재는 조선 건국을 계기로 말년에 낙향해 스스로 자신을 ‘금오산인’이라 칭하며 금오산 기슭에 살았다.

고려 유신으로 조선 건국 후 정조 2년에 제사 및 시호를 관장하는 태상박사가 됐으나 ‘고려의 신하로서 두 임금을 모실수 없다’며 선산(善山·구미의 옛이름)으로 낙향해 후진 양성에 진력했다.

고려의 쇠락과 조선건국이라는 역사적 격동기를 살면서 흔들림없이 자신의 뚜렷한 인생관과 국가관을 정립한 것이다. 밖으로는 후진을 양성하고 영달에 매달리지 않았으며 안으로는 효를 실천했다.

‘회고가’로 불리는 이 시는 다시 찾은 고려의 수도 개경 언저리에서 몰락해 버린 왕조를 관조하며 회고의 정과 인생무상을 감상적으로 읊은 서정시이다.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과 함께 삼은으로 불린다.

그가 후진양성으로 여생을 보낸 흔적이 금오산 기슭에 있는 ‘채미정’이다. ‘고비와 산나물을 뜯어 먹고 살던 정자’라는 뜻이지만 길재의 청빈한 생활을 기리기 위해 조선 영조 44년(1768년)에 후학들이 건립했다. 국가지정명승지 52호로 지정돼 있다.

금오산(976m)은 전국 최초로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이다. 경북 구미 김천 칠곡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다. 동쪽 최고봉 현월봉을 비롯해 약사봉이 있고 남쪽에 남봉이 있다. 산세는 동북쪽 구미방향이 험준하고 서남쪽은 부드러운 육산이다.

오래 전부터 대본산으로 불렸고 고려 때는 중국 허난성의 숭산을 닮아 남숭산으로 불렸다. 대비되는 것으로 황해도 해주에 북숭산이 있다. ‘황금색 까마귀가 날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까마귀가 저녁노을을 받아 금색으로 보였을까.

산행은 금오산도립공원 주차장→해운사→갈림길→도선굴→다혜폭포→갈림길→성안→현월봉→하산→동국제일문→약사암→마애불상→다혜폭포회귀→주차장 하산종료. 왕복 7.4㎞에 5시간이 소요됐다.

금오산 들머리 첫번째 주차장 오른쪽 교량을 건너면 야은을 기리는 ‘채미정’이 있다. 해마다 제례가 진행되고 있다. 등산로는 메타세콰이어 아스팔트 길을 따라가면 두번째 주차장이 나오고 교량을 건너면 산길로 접어든다.

산길이라 해도 너비 3m가 넘는 등산로가 나무계단으로 설치돼 있고 인근에는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케이블카가 정지해 있다. ‘자연보호운동 발상지’라고 새긴 큰 자연석이 눈에 띈다. 도시가 팽창하면서 도시의 집들과 시설이 산으로 올라온 탓에 출발 후에도 한참동안 사람의 흔적이 곳곳에 있다.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는 산으로 대혜폭포까지는 가벼운 차림으로 가족끼리 나들이가 가능한 코스다.

길옆 마이산 탑사의 돌탑처럼 생긴 것은 ‘21세기 돌탑’. 1999년 12월 30일 구미시장이 세운 것으로 새로운 천년을 맞아 무한한 가능성의 도시로 발돋움하자는 의미로 34만의 시민의 뜻을 모은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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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성 대혜문



금오산성 외성의 대혜문 아치를 지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 성터로 여말 왜구의 침입 때 지역 백성들이 성을 지켰다. 정상부와 계곡에 이중으로 축조한 산성으로 외성 3700m, 내성 2700m규모다. 조선 태종 10년(1401년)새로 정비했다.

성 안에는 고종 때 성 축조 시 ‘백성의 생업과 태평성대를 기원한다’는 취지의 중수송공비가 있다.

영흥정은 해운사 앞에 있는 우물. 지하 160m암반층에서 솟아나는 맑고 신선한 양질의 지하수로 1일 120톤이 나오는 알카리성 석간수다. 절 입구에 고승 나옹선사의 글이 무슨 연유로 걸려 있는지 조금은 생뚱맞은데….

이어 거대한 바위벽 아래 자리한 해운사. 산 전체가 바위로 돼 있어 절이 압도돼 왜소해 보일 정도다. 직벽 중간에 집채만한 암혈은 도선굴.

출발 30여분만에 절을 우회해 도선굴에 닿는다. 천연동굴로 신라말 도선선사가 득도했다고 그렇게 부른다. 야은 길재도 이곳에서 도학에 전념했고 임란 때는 인근 향인이 난을 피해 들어와 살았다한다. 무엇보다 도선굴 가는 길이 이국적인데 암벽옆으로 실타래처럼 이어져 아찔하면서도 아름답다. 옛날에는 칡덩굴을 이용해야만 갈수 있었으나 1937년 선산군에서 개통해 요즘은 자유롭게 왕래 할 수 있다. 그러나 길이 미끄러워 안전사고에 신경을 써야한다. 굴안에는 동으로 된 좌불상이 유리관 안에 안치돼 있고 그 앞에 여러개의 촛불을 켜놓아 오가는 사람들의 기원처가 되고 있다.

도선골에서 돌아나오면 대혜폭포. 해발 400m에 있는 폭포로 높이가 족히 20m는 돼 보인다. 산을 울린다하여 명금폭이라 불렀다. 수량이 많을 때 폭포에 물보라가 치면 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실상은 탁하고 깨끗하지 않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곳이 ‘자연보호발상지’라고 한다.

1977년 9월 박정희전대통령이 대혜폭포에 도착해 깨진 병조각과 휴지가 널린 것을 보고 “자 우리 청소작업부터 하지”라고 말하면서 바위틈에 끼인 병조각을 주웠다. 자연보호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고 이듬해 자연보호헌장이 선포됐다.

구미시에서는 발상지라고 선전만 할게 아니라 먼저 폭포 아래 물을 맑고 깨끗하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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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정상 현월봉



폭포를 떠나면 다시 나무로 된 계단. 경사 큰 길을 20여분간 오르면 갈림길이 나온다. 취재팀은 이곳에서 왼쪽 할딱고개로 향하지 않고 오른쪽 성안??향을 택했다.

금오산은 2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구미시내 쪽은 산 전체가 수직 바위투성 암산인 반면 뒷편은 부드러운 육산으로 나무와 구릉 평지가 어우러져 있다.

취재팀은 뒷편 성안방향으로 가다가 너무 많이 지우치는 느낌 때문에 등산로를 바꿔 산으로 직접 붙어 현월봉으로 올랐다. 길이 많고 희미할뿐 아니라 갈지자로 나 있어 시간이 다소 지체됐다.

성안은 옛부터 일굴 땅과 물이 있어 사람들이 생업을 했다. 번성기에는 40여가구가 살았다고 전한다.

한국전쟁 때 미공군과 국군이 주둔해 사람사는 맛이 날 정도로 활기가 돋았다. 1970년대 화전민 정리사업으로 사라졌다. 이곳에서 수확한 감자로 만든 감자술이 유명했다한다.

2시간 40여분만에 정상에 닿았다. 조망은 실망스럽다. 요즘같으면 세우는 것이 쉽지 않았을 일이지만 볼썽 사나운 대형 안테나와 통신시설이 숲처럼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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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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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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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암 종각


정상에서 50m정도 내려오면 금오산 반전의 매력이 시작된다. 지금까지의 육산과는 달리 기암투성이 제각기 모습을 자랑한다.

약사암 뒤로 우뚝 우뚝 키재기를 하는 듯 솟은 바위는 산인지 바위인지 규모가 크고, 앞으로는 구미시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약사암은 전망좋은 곳에 위태롭다. 특히 암벽 끝에 걸린 듯 위치한 종각은 차라리 뒷동산에 뜬 달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슬아슬해 발바닥까지 간지럽다. 철다리가 연결돼 있어도 낡은 탓에 출입을 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바위틈에 터를 닦고 절집을 짓느라 참 수고가 많았을 듯하다.

정상에서 30여분정도 하산하면 감탄사가 터지는 석불입상이 등장한다. 높이 5.5m 짜리 부조형 석불입상으로 특이한 것은 이를 제작한 도공이 자연석을 절묘하게 이용했다는 것. 20여m의 자연암벽 모서리 돌출부를 활용해 불상을 부조로 새겼다. 얼굴과 가슴부분은 정교한 반면 손발의 표현이 다소 어눌하다. 그래도 처음 접했을 때 입이 떡 벌어진다. 누가 언제 어떻게 무슨 이유로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와 돌을 깎고 다듬었을까. 가만히 들여다 보면 자연석을 활용한 도공의 위트까지 보여 미소도 난다.

중앙아시아에 산재한 석불입상같은 느낌이 들지만 기록이 별로 없고 신라보살상보다는 발달된 특징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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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할아버지의 손주사랑이 빚은 오형돌탑


정상에서 1시간 쯤 하산하면 비럭 끄트머리에 세워진 톨탑군이 눈에 띈다. 마치 허공에 매달린 것처럼 보이는데 얼마 전 TV를 통해 소개된 일명 ‘오형돌탑’이다.

한 할아버지가 학교도 들어가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손주의 영혼을 달래기위해 10년동안 인근 돌밭에서 손수 돌을 날라 쌓은 것이라고 한다. 금오의 ‘오’와 손주 이름 형석의 ‘형’를 넣어 오형돌탑이다. 할아버지의 지극정성과 내리사랑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큰 숨한번 몰아쉬고 돌탑군 비럭 끝에 선다. 아름다운 금오산세 그너머 도시의 건물들이 먼바다 여름 해수욕장 모래알처럼 반짝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탐욕도 벗어놓고 상념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중략)번뇌도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놓고 강같이 구름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해운사 입구에 있던 고승의 글이 여기서 와닿는다.

최창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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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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