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식 (동남지방통계청 진주사무소 소장)
2007년 농업통계 표본개편 시 진주시에 있는 한 농가를 방문하여 겪었던 사례이다. 도시농가로 낮에는 만날 수가 없어 부득이 밤에 방문한 농가인데 이미 몇 차례 통화를 하면서 경영주의 반응이 나쁘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문을 두드렸다. 아버님에게 농가경제조사 취지와 가계부 작성방법을 설명하니 흔쾌히 수락을 하셨다. 그때 갑자기 욕실문이 열리더니 칫솔을 입에 문 여자분이 눈을 부릅뜨며 나를 쏘아보는 것이 아닌가. 순간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지만 이내 웃음을 지으며 “아, 어머님이시군요. 안녕하세요. 통계청에서 농가를 대상으로 통계조사를 하고 있는 ○○○입니다. 낮에 아무도 안 계셔서 지금 찾아뵙게 되었어요. 아버님께 몇 가지 여쭤보고 있는 중입니다.”
떨리는 마음을 들킬까 더 상냥하게 웃으며 신분과 방문 목적을 밝혔지만 어머님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다시 방문하겠다는 인사를 하고 서둘러 그 집에서 나왔다. 며칠이 지난 후 다시 방문하였더니 어머님이 문을 열어 주시는 게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꾸벅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든 순간 배부했던 가계부가 갈기갈기 찢겨져 내 눈 앞에서 하얀 가루가 펄펄 날리고 있었다. 어머님은 그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갑자기 두 손을 치켜들고 당장 달려들 기세였다.
‘아~ 이 분이 지금 내 머리채를 잡으려고 하는구나’ 싶었지만 마치 내 두 다리는 얼어붙은 듯 꼼짝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한 그 순간 구세주 같은 아들이 어머님을 뒤에서 확 끌어당겼다. 그렇게 문이 닫히고 아찔했던 상황은 종료됐다. 그리고 며칠 뒤 경영주와 통화하면서 어머님이 가성우울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경영주가 젊은 시절 가정적이지 못했던 몇몇 사건으로 부인이 낯선 여자가 찾아와 경영주와 얘기를 나누니 오해를 하여 일어난 일이라며 그 일에 대해 사과를 했다. 그 말이 참 반갑기도 하였지만 어머님을 생각하면 한없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가성우울증이라는 병까지 안고 살아야 하는 어머님의 상처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 일이 있은 후 그 어머님과 나는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오해가 풀린 후 친모녀지간처럼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세상이 많이 각박해지고 설득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나부터 마음을 열고 상대방에게 다가가면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난 시절 가구 방문시 비슷한 경험을 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혹자는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해 힘든 적도 많았다. 후배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도록 대상처가 대문을 활짝 열어주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김종식 (동남지방통계청 진주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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