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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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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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60)
<21> 이형기 시인의 출생지 서정리(상) 
 
시인 이형기(李炯基)의 출생지는 사천시 곤양면 서정리다. 1933년에 거기서 태어나 1935년경 진주 망경동으로 이사를 나와서 진주에서 성장하고 진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필자는 얼마 전까지 이형기시인기념사업회 회장을 했으면서도 시인의 출생지를 가보지 못한 것이 늘 부담이 되어왔다. 머리 속에는 출생지가 다솔사가 있는 곤명면일 것이라고 여기고 있어서 그쪽에서 농협 조합장을 지낸 황순조(1928- ) 선생을 통해 곤명 일대를 일차적으로 살폈는데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형기 시인의 작은 아버지 고 이창호 원장(진주상공회의소 사무국장, 진주mbc전무, 진주문화원장) 쪽으로 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상공회의소 차장을 지낸 최덕성, 장일영씨 등에게 이창호 원장의 고향쪽을 수소문했으나 신통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최용호 진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이원장의 삼남이 거제에서 음악교사로 있고, 현재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것이고 전화번호를 찾을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음악교사 즉 이형기 시인의 사촌 동생 이헌(李軒)과의 통화가 이루어져 이형기와 자기 아버지대의 고향은 사천시 곤양면 ‘숱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난 주 수요일, 필자는 B, H 시인을 대동하고 황순조 조합장의 안내로 완사장에서 점심을 먹고 곤양면 군부대 맞은 편 양지짝 서정리를 드디어 찾게 되었다. 그곳에는 곤양고등학교가 서정리 전체 길이 수준으로 앉아 있었고 솥골이라는 속명처럼 마을은 낮은 산 분지에 볕살을 향해 다소곳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마을은 의외에도 20여호 수준의 작은 마을 이었으나 ‘유공자집’이라는 스티카들이 많이 붙어 있는 동네였다. 동네에서 만난 곤양고등학교 김수림 교사(특수학과, 광주 출생)는 이 마을의 특징은 별로 없고 대문에 유공자라는 팻말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고 일러 주었다.

마을 입구 노인당에 앉아 있던 한 노인은 이 마을에 들어온지 60년이 되었다는데, 현재 나이는 80이라는 것이다. 계산을 해보면 이형기 시인이 1933년에 태어나서 떠난 때가 1935년경이니까 이형기를 비롯하여 이마을 합천이씨들이 진주로 출향한 15년쯤 뒤에 이 노인이 서정리에 들어와 둥지를 튼 것이었다. 그러니 이 노인이 알 수 있는 것은 현재 이 마을에 이씨가 한 집도 없다는 것이고 정씨가 5집 정도, 그리고 다양한 성씨들이 두 집 세 집씩 그냥 살아가고 있다는 것일 뿐이었다. 진주에서 유지로 살았다는 ‘이창호’ 선생이나 시인으로 유명하다는 이형기에 대해 아직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다는데 생가니 허물어진 자리니 하는 것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았다. 황순조 선생은 자기가 아는 분들에 대해 몇 마디로 물어 대답을 얻곤 했지만 합천이씨나 이형기나 이창호에 대한 정보는 한 톨도 찾아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형기의 아버지대 형제는 4형제였다.아버지 이경성(李京性)은 맏아들이었고 아들로 이형기(장남)와 이호철(차남)을 두었다. 아버지 아래로 3형제가 있었는데 숙부 이병호에게는 아들 이원부(작고, 문예정신에서 필자가 시인으로 추천)가 있고, 그 다음은 징용 가서 돌아갔고, 막내 숙부 이창호에게는 이훈, 이강, 이헌(음악교사) 등 삼남이있다. 이들 일가들이 솔가하여 진주로 다 나오고 난 뒤에 서정리는 무슨 변화라는 바람, 개발이라는 바람을 타지 않았다. 면소재지 곤양이 턱밑에 붙어서 교통의 요충이 되고 있지만 전통 마을 이상의 계기를 맞이하는 곳이 되지 못했다. 세월 따라 곤양고등학교가 마을에 들어와 우람한 문화의 전당이 되어 있는 것이 하나의 보람이 되는 곳일 뿐인 그저 그런 솥골인 것이다.

이씨 일가들이 나간 것 자체도 마을에서는 바람이 불어오다가 잠시 머물다 사라져 가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되는 것일까, 아닐까. 흔적은 어디에도 없고 소리도 여운으로 남아 있지도 않는 것이 허무일까, 아니면 다른 말로 무상일까. 이형기는 그래서 진주농고를 졸업하고 대학을 그냥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로 간 것일까? 이형기는 평소 스스로 대학 선택에 대해 말할 때 “나는 시를 쓰자면 철학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 불교과로 간 것이야.”라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 말이 과연 맞은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 다음 회에서 언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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