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나도 엄마가 처음이란 말이다”
“아들아! 나도 엄마가 처음이란 말이다”
  • 경남일보
  • 승인 2013.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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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한국국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몇 년 전에 아들 녀석이 자기를 돌봐주는 이모에게 “엄마는 학교 가면 천재고 집에서는 바보야”, “엄마는 박사(博士)면서 자기가 퀴즈를 내면 하나도 몰라”하더란다. 엄마라고 모든 것을 다 알 수도 없을뿐더러 하루 종일 강의를 하거나 말을 하고 온 날은 입에서 단내가 나서 입을 꾹 다물고 싶을 때도 있고,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 손가락 까닥 않고 오롯이 그대로 땅으로 꺼져 버리고 싶을 때도 있는데….

이놈의 아들은 하루 종일 나를 기다린 만큼 내 옆에 찰싹 붙어 매달리거나 내 등짝에 붙어 떨어지질 않고,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쫑알거리며 나랑 눈 맞춤만 하자고 들러붙어 나를 더 지치게 하고, 가끔씩은 자기 말을 얼마나 잘 들었는지 도로 내게 질문을 던지기도 하니 꽤나 집중해서 들어주어야 한다. 또 아이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궁금한 것도 많고 질문의 수준도 나름 다양해지고 높아져 내가 순간 대답해 줄 수 없는 것도 생기고, 솔직히 아이가 물어보는 것에 일일이 다 응해 줄 수 있는 모성본능이 모자란지라 대충 얼버무리고 빨리 마무리지려는 내 심보가 더 커서 항상 모른다고 했더니 엄마를 바보로 정의 내려 엄마를 들었다 놨다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중요한 게 일관성 있는 양육태도이고 아이가 가진 기질과 특별함을 빨리 터득해서 그것을 인정하면서 아이를 키우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아이에게 자유를 주면서 위험상황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상황이 아니라면 아이가 뭐든지 할 수 있도록 방목하면서 키웠다. 그러나 이런 나의 양육방식은 영아기와 유아기까지만 가능한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의 생활을 보는 순간 너무 자연인처럼 키웠다는 사실과 아이를 이대로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면 정말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마음은 조급해졌던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위험한 게 조급함인데 그 조급한 마음으로 아이를 이 사회의 규칙 속으로 밀어 넣는 통제와 억압의 방식인 잔소리도 함께 시작되었다.

이 사회에 적응시키고, 적어도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리면서 행복하게 생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알려줘야만 할 것 같았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참을 줄도 알아야 하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할 줄도 알아야 하고, 기다림도 알아야 하고, 시간에 맞춰 몸을 빠르게 움직이기도 해야 하고,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고, 하루의 생활을 스스로도 해야 하고, 지금까지 이모나 엄마가 해줬던 것들을 갑자기 혼자 해야 한다고 하니 아이는 그게 이해가 될 리가 없었다. 아이는 엄마가 만든 틀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거부감으로 반항을 하기 시작했고, 난 그 반항을 엄마를 무시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 지시하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유아교육, 청소년교육, 특수교육을 공부한 나지만 내 아이를 내가 배운 이론과 학문으로 키운다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나는 그저 아들에게 열 받는 단순 무식한 목소리 큰 엄마가 나날이 되어갈 뿐이었다. 이런 전쟁을 8개월쯤 하고 있던 어느 날 녀석이 “엄마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면서 대성통곡을 해 버렸다. 자기를 혼내는 것이 사랑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예전과 달리 계속적으로 자기에게 부여되는 규칙과 책임이 힘에 부쳤나 보다.

130cm에 25kg 아들을 품에 안으면서 “엄마도 엄마역할이 처음이라 널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몰라서 내 귀한 강생이를 힘들게 했나 보다” 했더니 아들 녀석이 가만히 생각하더니 “지 한 살 때도 엄마가 처음이고, 두 살 때도 처음이고, 여덟 살 때도 처음인거네” 한다. “그렇지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잘 몰라 너를 키우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너랑 함께 커가는 거지. 그러니깐 엄마 말 좀 잘 들어라” 했더니 “알았다”고 한다. 아들 녀석에게 “엄마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된 게 아니고, 엄마가 너를 낳아 키우고 있는 거야” 했더니 씩 웃는다. 아들 녀석이 10살이 되고, 20살이 되고, 30살이 될 때도 엄마가 처음이라 아들과 전쟁 중에 있겠지.

이한우 (한국국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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