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능소화
  • 경남일보
  • 승인 2013.08.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명영 (반성중학교 교장)
능소화



모교를 둘러보고 향나무가 교목이라 시선이 모이는 곳에 여러 그루 위치하고 있다. 향나무는 가시 잎이며 수피는 흑갈색으로 어두운 분위기이다. 덩굴을 올려 직선과 곡선의 조화를 이루면 명물이 될 수 있다는 조언을 하며 능소화 4그루를 기증하였다. 초여름에 현관 우측과 교장실 앞에 두 그루씩 향나무 가까이 심었다.

7월 중순에 한 그루씩 꽃을 피운다. 줄기의 가장자리마다 갈색 대추씨 모양의 주머니가 생기고 끄트머리에 다섯 개의 꽃받침이 벌어지며, 통꽃이 포대처럼 밀려 나오더니 5갈래의 꽃잎으로 갈라져 개화하였다. 색깔은 뒤쪽으로 주황색 앞은 진한 감색이다. 마치 트럼펫이 주렁주렁 매달려 가지각색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 능소화 꽃이 사방팔방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다른 능소화는 꽃이 필 기미가 없다. 같은 날 심었는데 왜 소식이 없을까. 편애했을까 우려되어 기증자에게 암수가 있느냐고 묻자 ‘걱정하지 말라. 나무가 다 알아서 한다’고 하였다. 조바심으로 며칠을 보내자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너무 반가워 날마다 요모조모 뜯어보고 만져보는데 암술 하나에 수술은 네 개이다. 수술은 2개씩 암술을 향하여 몸을 깊숙이 구부려 정중히 예를 표하는 듯하다. 더 특이한 사실은 수술의 길이가 두 개씩은 같고 쌍의 단위로는 달라 저만큼 간격을 두고 자리를 잡고 있다. 암술은 주걱 모양인데 위쪽 수술보다 머리만큼 솟아 있다. 꽃 속에 벌과 개미들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이 같은 암술과 수술의 형태는 다른 꽃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얼개이다. 혹시나 옮겨 심기를 하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인가. 다양한 다수의 곤충에 의하여 가루받이를 위한 이중 장치일까.

작품에 소개된 능소화를 검색해 보았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 ‘미색인가 하면 연분홍 빛깔로도 보이는 능소화가 한창 피어 있는 유월, 담장 밖이었다. 비가 걷힌 돌담장은 이끼 빛깔로 파아랗게 보이었다. 담장을 기대고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능소화. 치수는 초당에서 내려오다가 구천이를 보았다. 그는 넋을 잃고 서 있었다. 치수가 가까이까지 갔을 때도 인적기를 모르는 듯 능소화 옆에 서 있었다. 아주 바싹 가까이 갔을 적에 느릿한 시선을 치수에게 돌리었다.’

치수와 구천이(김환)는 아버지가 다른 윤씨 부인의 아들들이다. 구천이와 별당아씨가 고방에 갇히고 그 누군가(?) 문을 열어주어 그들은 새벽에 도주한다. 치수는 강포수와 수동이를 거느리고 지리산으로 둘을 사냥하러 들어간다. 며느리를 사이에 두고 아들들의 애증을 보면서 가슴속이 검게 타버린 윤씨 부인. 실로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의 부침은 능소화 꽃이 피고 지듯….

한 여인에 두 남자의 갈등의 상황 설정을 능소화 꽃의 암술과 길이가 다른 수술에서 보는 듯하다. 별당아씨를 암술로, 치수와 김환을 수술에 비유한 것이 아닐까. 어쨌든 능소화 꽃은 이 소설을 상징하기에 적합하다.

능소화 꽃의 위아래 수술을 탐하는 곤충의 종류, 환경에 따라 암술의 길이와 꽃 색깔, 특히 충매화로 공기 중에 미량의 꽃가루가 존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사람의 눈에 끼치는 영향 등은 관심 있는 탐구주제라 할 것이다.

여름은 만물이 활짝 드러내 보이는 계절이다. 마음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자연을 관찰하기 더 없이 좋은 시기이며, 나무 그늘 아래 책 읽기에 적합한 계절이다.

/안명영·반성중학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