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와 독자의 주권의식
사재기와 독자의 주권의식
  • 경남일보
  • 승인 2013.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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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청 (시인, 진주제일여고 교사)
일전에 출판계의 사재기 관행이 논란이 되더니 최근에 다시 음원 사재기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해당 관계자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겠지만 과연 그들에게만 책임을 추궁할 문제일까. 사재기는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오랜 관행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출판계의 관행에 많은 독자들도 암묵적으로 동참해 온 것이 사실이다. 사실 출판계의 이러한 관행이 암암리에 지속되어 내려온 배경에 독자들의 암묵적 동참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재기는 시장질서의 교란을 불러일으키는 반칙이다. 반칙도 관행이 되면 고치기가 간단하지 않다. 그것은 이러한 관행이 형성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배경과 이미 관습화된 의식을 바로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재기는 독자를 속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히려 많은 독자들이 특별한 문제의식이 없이 조작된 베스트셀러 순위를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 왔다. 이처럼 독자들이 암묵적으로 동참하는 한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은 출판사의 효과적인 판매전략으로 언제든지 재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논란이 되었을 때는 그 당사자들이 관습을 타파할 각오를 너도나도 피력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 흐지부지되기 쉬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그동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관계자들이 재발 방지를 다짐하고 각오를 피력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독자들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의존하는 타성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출판계로서는 언제든지 새로운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에 독자들이 주권의식을 제대로 발휘하여 자신의 취향에 따라 합리적으로 책을 선택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거름 지고 장에 가듯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의존하여 맹목적으로 책을 선택하는 경향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각종 저널들까지 야합하여 정말 소개해야 할 책보다는 베스트셀러 순위를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이니 도서 시장에서 베스트셀러 순위는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고, 베스트셀러 순위를 선점하기 위한 출판사의 비양심적 욕구가 사재기를 하나의 관행으로 만들었다.

지금 사재기 의혹에 대해 해당 작가는 해당 작품의 절판을 선언하고 해당 출판사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출판사와 작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독자들이 자신의 선택권을 쉽게 조작되었을지도 모를 대중적 이미지에 저당 잡히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알리는 데 목숨을 걸고,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일단 대중에게 알려지고 인기 순위에 등극한 것에 대해서는 무조건 인정하고 따라가는 경향이 일반화되었다. 한 마디로 순위를 선점하는 것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중들이 인정한 것이라면 결점까지도 예사롭게 미화되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클릭수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인터넷 세상의 방식과 흡사하다. 이런 현상이 일반화됨으로써 선택의 다양성을 가로막음으로써 다양한 책이 들어설 자리를 점점 박탈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이러한 거대한 물결 속에 개별적 차이에 대한 존중심을 잃어버리고 조작되었을지도 모르는 대중적 기호에 목을 매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개별적 독자로서의 주권의식을 점점 상실해 가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열광할 대상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느낌이다. 독자들의 주권의식 상실이 베스트셀러에 대한 쏠림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획일적인 대중추수주의가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따라서 사재기의 가장 큰 책임은 출판 관계자에게 있겠지만 이런 흐름에 암묵적으로 동참한 다수의 독자들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독자의 주권의식이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오늘날 책도 대중 기호품이기는 하나 다른 상품과 달리 독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소비의 다양성이 이루어져야 독자의 선택을 믿고 세상에 나온 많은 책들이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독서문화가 형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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