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이웃나라 대마도서 찾아보는 우리문화
가까운 이웃나라 대마도서 찾아보는 우리문화
  • 박도준
  • 승인 2013.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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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교육청 ‘네 꿈을 펼쳐라’ 대마도 탐방…총 3차 200여명 참가
1-꼭 쓸 것 카미자카전망대에서 추억에 남는 기념사진
인생에 있어 인격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에 접어든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경남교육청이 전개하고 있는 ‘2013. 네 꿈을 펼쳐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꿈을 찾아 떠나는 대마도 탐방’을 실시했다. 경남교육청이 주최하고 경남일보가 주관한 이 행사는 학생 150명과 교사 30명 등 총 2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방학기간 중인 8월 5일과 7일, 12일 3차에 걸쳐 실시됐다. 이에 본보에서는 학생과 교사들이 직접 탐방한 대마도에 대해 현황과 역사, 우리나라와 관련된 유적지, 생활형태, 자연환경, 전쟁의 상흔들 등 5가지로 나눠 살펴본다./편집자 주

‘꿈을 찾아 떠나는 대마도 탐방’은 학생들에게 ‘대마도’라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하여 닫힌 세계에서 열린 세계로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충분했다. 특히 학생들에게 일본 내 우리 문화를 체험시킴으로써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체득케하는 한편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들간 소통을 통해 같음과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를 조성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번 행사를 통해 학생들에게 사랑과 이해심을 함양하게 하여 꿈을 찾게 동기를 부여했다.

김선동 경남교육청 안전과장은 “꿈키움 교실 운영과 함께 정책연구학교 지정운영, 선생님과 함께하는 역사캠프, 부자사랑 캠프 등으로 학생들이 학업에 흥미를 유발하하고 스스로 꿈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런 연유로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들이 대폭 줄어 ‘꿈키움 교실’은 전국 교육청에서 벤치마킹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9768 아유모도시 자연공원 계곡에서의 물놀이
 
◇대마도 현황과 역사

대마도! 일본 땅이지만 거리상 우리나라와 더 가까운 섬이다. 거제도의 2배에 달하는 크기다. 역사적, 경제적으로 볼 때도 마찬가지다. 관광지에서 만나는 거의 대부분이 우리나라 사람임을 감안할 때 더더욱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일까?

대마도는 부산에서 49.5km, 일본 후쿠오카에서 138km 떨어져 있다.

특히 대마도는 88%가 산지로 어업과 임업으로 경제를 운영해 왔으며, 우리나라의 문물을 일본에 전달하는 중계무역으로 살림을 꾸려왔다.

고려시대 사료에는 고려 공민왕 때 대마도 만호가 사자를 보내고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으며, 대마도주의 관직이 고려의 만호라는 고려의 무관직을 사용하고 조공을 바쳤다는 것은 대마도가 고려의 속령이나 속주였다고 볼 수 있다.

세종 1년(1419년) 이종무 장군은 전함 227척, 군졸 1만 7285명을 거느리고 대마도 정벌에 나서 배 129척과 1940여호의 집을 불태웠으며 114명의 적의 수급을 베고 중국인 포로 수백명을 구출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편 기록에도 “대마도는 본시 경상도 계림에 속해있는 우리나라 땅이다”고 명시되어 있고 ‘동국여지승람’에도 “대마도는 옛날에 계림에 속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이 “대마도는 원래 우리 땅이었다. 1870년 일본이 무조건 삼킨 것이다.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서 불법으로 점령한 영토를 반환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무조건 돌려 주어야한다”고 일본에 반환 요구하였으나 한국전쟁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한다.

이런 사유로 2005년 당시 마산시의회는 이종무 장군이 마산에서 출전한 날을 ‘대마도의 날’로 정하고 창원시의회도 이를 이어오고 있다.

수선사 앞에서 순직한 최익현 선생에 대한 설명을 듣는 학생들


◇우리나라와 관련된 유적지

수선사는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가 있는 곳으로 1986년 들어 양국의 유지들이 세웠다. 이곳엔 일본인들은 없고 한국관광객만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최익현 선생은 74세의 나이로 의병을 일으킨 죄(?)로 대마도에서 단식 끝에 순절하셨다. 이곳엔 선생을 기리는 작은 비문밖에 없지만 조선의 기개와 선비정신을 몸으로 보여준 것으로 선생의 대쪽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원통사는 상대마도와 하대마도 중간쯤 위치한 니시도마리에 있다. 1408년 세워진 사찰로 충숙공 이예 선생의 공적비가 있는 곳이다. 이예 선생은 1373년 울산에서 태어나 조선 초 한ㆍ일 관계의 근간이 됐던 계해약조(1443년) 체결에 공헌하고, 1401년 정식 외교사절이 된 후 40여 차례에 걸쳐 일본을 오가며 667명의 조선인 귀환을 성사시키는 등 근대 이전 우리 외교사에서 대일외교를 주도한 전문 외교관이다. 외교관의 힘이 총칼보다 유용함을 느꼈다.

대마도 최북단에는 한국전망대가 위치해 있으며, 맑은 날에는 한국의 산들이 연이어 보인다고 한다. 49.5km를 가로막고 있는 일본해상자위대 건물이 눈엣가시처럼 들어온다.

금석성터 안에 있는 덕혜옹주 결혼 봉축기념비 앞에서 울컥 치미는 수치심과 조선 마지막 황녀의 파란만장한 삶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숙연하게 묵념을 올렸다. 국력이 약해 조선 딸의 상징인 덕혜옹주를 대마도 다케유키 백작에 내준 나라의 비운. 일본군 집단성폭력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도 함께 다가왔다.

9960 용궁의 전설을 지니고 있는 와타즈미 신사

◇생활 형태

우리를 실어다 준 배 ‘오션플라워’호가 대마도에 도착했다. 이즈하라국제여객터미널에 내리자 어촌지역의 주차장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차들이 즐비하였으며, 탐방을 하는 도로 폭은 좁았다. 도로의 황색선도 거의 없었으며 차선이 없는 곳도 많았다. 그래고 서로 양보하는 교통문화를 볼 수 있었다.

산림이 많아 불이 나면 걷잡을 수 없어 마을마다 방화벽이 많이 만들어져 보존되고 있었다.

젓가락으로 먹는 음식은 튀김종류와 단무지 돈가스 소바 종류가 들어있는 일본식 도시락, 가리비 새우 쇠고기 돼지고기 등이 나오는 대마도식 BBQ, 그리고 우동 등을 먹었는데 밥이 나오면 미소된장국과 단무지는 빠지지 않고 나왔다. 일본의 반찬은 우리처럼 푸짐하지 않았은데 음식 하나라도 낭비하지 않는 문화가 배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신사(神社)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일본 내 80만개나 있다고 하니….

우리는 팔번궁, 와타즈, 코모다하마 등을 찾았다. 신사는 마을 곳곳에서 있었으며, 일본인의 생활 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해수욕장 모래밭에서 두꺼비집짓기


◇자연 환경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곳이 많아 국력이 있었을 때 골머리가 아파도 우리가 잘 관리했으면 우리땅일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역시 믿는 건 성실과 국력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보시타케전망대에서 아소만의 산, 바다, 점점이 떠 있는 무수한 섬들, 리아스식 해안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감상하고, ‘일본의 해변 100선’에 선정된 미우다해수욕장에서는 고운 입자들로 모래사장을 이루고 있는 천연해변과 에메랄드 빛은 이국정취를 누렸다.

탐방기간 내내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은 살인무더위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간 곳은 아유모도시 자연공원. 이곳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혔고, 인공으로 조성된 그린파크해수욕장에서는 ‘물개’ 선생님들의 호랑이 같은 눈길 속에서 남학생들은 가장자리에서 수영을 하고 여학생들은 모래사장에서 두꺼비집을 지으며 더위를 식혔다.



◇전쟁 흔적들

만관교는 일본제국 해군이 항해할 수 있도록 파낸 해협에 건설된 다리이다. 대마도의 상도와 하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며 다리 아래로 흐르는 조류들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조망의 포인트란다.

평화로운 카미자카 전망대 지척에 일본군 옛 포병진지가 있었던 곳을 찾았다. 일본군이 훈련하던 곳, 포가 있었던 자리, 군인들이 묵었던 병사적(兵舍跡) 등이 있었다.

9930덕혜옹주 결혼 봉축비 앞에서 울분을 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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