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설움 녹이는 애달픈 노랫가락
보릿고개 설움 녹이는 애달픈 노랫가락
  • 이웅재
  • 승인 2013.08.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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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전통예술축제 참가작품] <7>사천 초전보리일소리
사천 초전보리일소리는 한마디로 보리농사와 관련해 터 다지기부터 수확까지 전 과정에 걸친 노동요다. 농경사회의 특성 중 하나가 협업이다. 사천 초전주민들은 품앗이로 농사와 함께 갯일도 병행하며 공동체 생활을 영위해 왔다. 본보에서는 경남전통예술축제 개최를 계기로 초전보리일소리의 내용과 특성 유래 전승과정등에 대해 알아본다./편집자 주

초전


▲작품 내용

사천 초전보리일소리는 소를 끌고 들로 나가기 전에는 고사를 지내고 소목에 은목걸이를 걸고 나갔다. 이는 조선왕조실록, 영조 30년 4월 26일 을해년 기록에서 나타나듯 ‘초전 사람들이 소를 끌고 들에 나가면 소가 죽는다.’(泗川農牛出野自斃)

고사를 지내고 나면 씨를 뿌리기 전에 큰 흙덩이를 깨는 일명 ‘디이’(덩어리)깨는 소리가 있고, 서리가 내릴 때 보리를 밟아 동해를 막는 보리 밟는 소리, 또한 보리를 훑어 죽을 끓여 먹던 청상요와 도리깨질 타작노래가 따로 있다. 도리깨질 노래는 초벌털이와 맞조짐으로 구성된다.

초전보리일소리는 여러 사람이 손을 맞춰 일할 수 있도록 속도 조절기능과 함께 힘들고 지겨운 노동을 잊도록 흥을 돋우며 입에서 입으로 면면부절 전해져 왔다.

초전보리일소리는 마당에 따라 가락이 변한다. 힘든 일을 할 때는 흥을 돋우고, 기술을 요할 때는 가락으로 힘을 조절한다. 그리고 여인들이 보릿고개 부모와 자식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설익은 보리를 베어 낱알을 훑는 보리 훑기에는 애환이 녹아 있다.

초전보리일소리는 △씨 뿌리는 과장(메를 들고 흙덩이를 깨는 장면과 황소를 끌고 홀치기로 골을 파는 장면, 씨 뿌리는 장면) △보리밟기(보리 밟는 소리) △보리 훑기(보릿고개시절 노래, 보리 훑는 소리 1·2) △보리타작소리(도리깨 소리 1·2·3)로 재현된다.
초전 2

▲특성

초전보리일소리는 지역의 특성에 따라 메나토리와 계면조의 혼합 형태로 구성돼 있다. 사천 초전은 지리적으로 육로는 경상도 내륙지방과 연결돼 있고 해로는 전라도와 연결돼 있어 소리 또한 시작은 강한 메나토리 또는 우조로 시작해 계면조로 맺음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초전보리일소리는 보리씨를 뿌리고 흙덩이를 잘게 부수는 ‘디이 깨는 소리’, 보리를 밟는 마당, 보리를 훑으며 부르는 풋바심 소리, 베어놓은 보리를 타작마당에 깔고 도리깨질 해 보리를 가리고 보리알을 가마니에 담는 마당 등 4마당으로 구분해 각 마당이 각기 고유의 소리를 가지고 있다.

도리깨질은 아주 고된 기술을 요하는 노동으로 힘과 기술을 함께 갖춰야 하는 보리타작 노래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다.

노동요의 특징상 겹음이나 꺾음 소리가 적고 대부분 평조로 이루어지고 있다. 선소리 또한 채록에 의한 일부분조차 그때의 분위기나 기분에 따라 변하듯 일정한 사설 없이 불려진다.

장단은 주로 중중모리와 자진모리 등을 사용하고, 음계는 떠는 목, 평으로 내리는 목, 꺾는 목으로 된 3음의 계면조와 힘차게 내어 지르는 우조로 돼있다. 이때 풍물은 풍물 가락이 아니라 소리에 어울리는 소리째 가락을 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중중모리는 한 장단중 첫째와 셋째 박을 집고 나가는 장단이 아니라 첫째와 셋째의 끝 박을 집어 마치 소리장단을 치듯이 쇠를 친다.

자진모리는 셋째 박에 치지 않고 강약을 조절하는 장단으로 앞뒤의 장단을 흐르듯이 치다가 집어줄 세번째 박은 넘겨 치는 독특한 형태의 강약을 이루면서 친다.

이러한 특징은 초전지역의 여유에서 이루어진 초전만의 독특한 가락으로 쇠를 박아 치듯 두드리지만 부드럽게 가락이 구성된다.

보리일소리에 주로 사용하는 악기는 꽹가리, 장고, 징, 북 등 비교적 간단하게 일꾼들의 흥을 돋우는 악기이다. 가락에 맞추어 한사람이 메김 소리를 하면 농군들이 받아 부른다.

초전보리일소리의 선법은 ‘중(미)-남(라)-임(솔)-중(미)’ 형태로 이뤄지는데 처음에는 메나토리로 시작해 중간에 남을 임의 앞 꾸밈처럼 사용하는 것은 어산용의 선법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며, 끝은 계면조로 끊어 내는 듯이 맺는다.
초전 3

▲전승과정

구전한 초전보리일소리를 현재의 모습으로 가다듬는 작업이 시작된 것은 2007년 ‘경남도 민속예술축제’를 준비하면서다.

현존하고 있는 할머니들이 이전에 들었던 가사를 흥얼대곤 하던 것이 사천문화원의 노력에 힘입어 문장으로 옮겨진 것이다.

이때까지는 어느 고장이나 있는 보리타작노래가 주를 이뤘다. 초전도 2005년 보리타작소리로 경남도 민속경연축전에 참가했다.

하지만 ‘경남도 민속예술축제’를 준비하는 사천문화원 입장에서는 사천시 초전만의 독특한 문화를 발굴해야만 했고, 이 과정에서 보리농사 전부를 4마당으로 나누어 부르는 사천 초전 보리일소리가 탄생했다.

사천문화원(원장 장병석)에서는 당시 박동선 전 사천문화원장의 이모뻘 되는 강순업(86) 할머니의 타작소리를 모태로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사천문화원에서 직접 장고를 들고 찾아가서 장고를 치면서 할머니들에게 소리 한번 해보길 권했고, 이 소리를 녹음해 문장을 가다듬어 갔다. 일부 글을 몰라 나오는 대로 소리하는 할머니들의 가사를 받아 적는 것도 힘들었지만 제대로 흥을 내서 소리하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더 어려웠다는 사천문화원 관계자는 “한번 더 해 보이소 마음대로 해 보이소”를 입에 달고 다녔다고 한다.

쑥스러움에 뒤로 빼는 할머니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먼저 몇 곡 부르기는 다반사다. 부를 때 마다 달라지는 즉흥적인 가사가 이런 과정을 수 십차례 수백차례 반복하면서 초전만의 특징이 담긴 노동요 초전보리일소리로 가다듬어 졌다.

상전벽해란 말처럼 노동요가 넘쳐나던 초전 들이 공장으로 바뀌고 있다. 배고픈 시절 주린 배를 채워준 고마운 양식 보리밭은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보리농사의 희로애락을 담은 노동요 사천 초전보리일소리는 문화재로 변신해 자자손손 전해질 것이다.

초전보리일소리의 출발은 서의규 고문의 노력으로 시작됐으며, 문재생 회장이 모든 소품을 제작해 시연이 가능토록 했다. 박동선 전 문화원장은 고증을 맡았다.

▲유래

사천시 사남면 초전리는 와룡산 서북쪽 넓은 들판에 자리잡고 있는 소규모 농어촌 마을이다. 이 마을 주민들은 여름에는 벼를 심고 가을에는 보리를 가꾸어 일년 2모작으로 많은 수확을 거두어 생활이 풍족했다.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이웃끼리 의가 좋아 품앗이로 농사를 지었다. 인심이 후하여 사람살기 좋은 곳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1832년(순조32년)발간된 곤양읍지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사천현 성내의 창고에 피보리 963석 13말 1되 8홉 5작이 저장돼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을 바탕으로 이곳에는 예부터 보리농사가 성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러한 주위 환경으로 넓은 농지에 보리농사를 짓기 위해 품앗이가 이루어졌다. 초전 농민들이 고된 노동일을 소화해 내기 위해 품앗이로 농사를 지으면서 ‘일소리’를 만들어 낸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보리씨를 뿌리고, 보리를 밟고, 타작해 수확하는 일련의 과정을 역어내는 ‘보리 일소리’는 노동에 찌든 땀을 식히고, 마을을 한데 묶는 현명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초전보리일소리는 특이한데가 있다. 메김소리 선창에 따라 농군들이 함께 후렴을 호응하는 것은 다른 농요와 비슷하지만 선창자가 즉흥적으로 가사를 만들어 신축성 있게 힘과 흥을 돋우는 가락은 특이하고 흥미롭다. 구전농요로 전해져 오던 초전 보리 일소리가 오늘날의 면모를 갖춘 것은 5년여에 불과하다.

▲초전보리일소리 전수자

회장 문재생, 고문 서의규, 종무 이춘수
선소리 : 강순업 장연이 홍순녀 김종성

전수자 : 원종수 백기현 남길영 류재범 백승수 문삼길 김홍규 백금춘 김외수 문창성 박옥점 장봉수 김순분 이두섭 황덕임 최소상래 신막달 정복녀 박학녀 김선자 백봉연 김남연 박치자 문필연 김천태자 이덕남 허말녀 박선엽 구남점 원순자 안태자 황재순 김선녀 이을녀 정갑녀 류정자 안경자 구봉금 권옥희 조금혜 정갑선 이춘자 최옥련 장경자 최선자 신철 강화자 원숙순 송삼점 송윤자 유정두 김상광 이용순 이순애 구일순 김영희 김말순 김두순 천옥연 김도임 김순달 김덕남 문영자 손수남 최명자 김상광 백덕권 한철수

▲보리훑는 소리(2)

하날 같은 가장 몸에 태산 같은 병이 들어 /모진 년은 우짜라꼬 칠성판을 타고 갔소/가고 다시 못 올 서방을 생각 생각 안해야지/독수공방 홀로 누워 팔을 비고 누웠으니/흐르나니 눈물이요 자아낼 사 한숨이라/산속깊이 두견이는 날만 보면 슬피 우네 /우리서방 넋일런가 우리서방 숨결인가/다시 못 볼 서방 생각도 자식 울음에 잊고 말고/배고파 우는 자식 죽이라도 먹일라꼬/청솔 같은 풋보리를 한 웅큼씩 훑어 내어/정기 불을 피워놓고 죽이 라꼬 씨어 봐야/허기진 늙은 시부모 문지방을 열고 닫고/울고 있는 내 자식은 문지방도 못 열고/어이구야 내 팔자야 비 가는데 바람 가듯/서방 따라 가야것다.

자료·사진 제공=사천문화원·초전보리일소리보존회·(사)경남학연구원
초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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