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 모두 편해야 진정한 휴가
몸과 마음, 모두 편해야 진정한 휴가
  • 경남일보
  • 승인 2013.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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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규 (객원논설위원, 한국국제대 교수)
우리들의 짧은 휴가는 끝났다. 우리들의 휴가는 7월 말에서 시작해 8월 초순을 조금 지나면서 끝나고 만다. 올해도 변함없이 보름 남짓한 이 기간에 산과 바다는 휴가객으로 넘쳐났다. 우리 모두 산과 강의 계곡, 바다로 나가 ‘황금만큼이나 귀한 휴가’를 마음껏 즐기다가 돌아왔다. 일 년에 한번, 큰 맘 먹고서야 떠나는 휴가였기에 떠날 때는 기필코 ‘잘 쉬다 돌아오겠다’고 다짐했건만 항상 되돌아오는 것은 피로한 ‘휴가 후유증’이다.

왜 우리는 휴가는 다녀왔는데 피로하기만 한가. 우리들의 휴가기간은 찜통더위기간과 함께해 더 피로하다. 그래서 휴가 가는 걸 피서 떠난다고 하는가 보다. 올해 피서도 막 끝나가고 있다. 하지만 업무로 복귀한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길어진 열대야를 견디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더위를 그대로 식히지 못한 채 이전보다 더 상하고 우울해진 심신의 피로를 호소한다. 도로가 뿜는 지열로 숨통 막히면서 피난 행렬 같은 휴가 인파 속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찜통더위마저 우리를 괴롭혀 대는 ‘열통 앓는 휴가’라도 다녀와야 우리들의 휴가는 끝난다.

왜 이런 피서형의 휴가문화가 반복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세상은 변했는데 휴가문화는 아직껏 과거에 머물러서이다. 놀 시간이 부족했던 과거의 피서는 큰 맘 먹고 잔치판 벌이듯 냉동고에 고기 재워서 온 집안살림 다 싸가지고 떠나듯 하는 연중 일탈행사였다. 과거의 휴가는 지칠 만큼 먹고 피로할 만큼 놀아야 잘 보낸 휴가였다. 휴가 다녀온 사람들의 벌겋게 익어 벗겨진 검은 살갗은 휴가가 낳은 상흔이 아니라 자랑거리였던 그런 휴가였다.

오늘날 휴가의 의미는 다르다. 현대인들이 휴가에서 얻고 싶은 것은 정신적인 안정과 신체적 휴식이다. 몸도 마음도 편해야 진정한 휴가라는 뜻이다. 현대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현재의 삶이 주는 리듬과 빠른 템포에서 완벽한 탈출을 꿈꾼다. 그렇다. 각박한 현실이 주는 심신의 압박감을 떨치기 위해 인위적인 시간제한이 없는 세계로 가는 것이 휴가이다. 그들은 휴가를 ‘시간의 정지(time off)’로 상상한다. 진정한 휴가인들은 시간에 예속 받지 않고 하루 종일 자고, 빈둥거리기도 하면서 배고프다는 자연스러운 신호가 와야 밥을 먹는다. 휴가를 간다는 진정한 의미는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의무와 책임이 압박하는 템포와 리듬, 그리고 시간의 제한으로부터 면제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낸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휴가는 일상과는 다른 시간과 생활을 경험하는 통로를 제공한다.

하지만 우리들의 휴가는 단절의 시간을 갖기에 너무나 짧다. 짧은 휴가기간은 휴가 보내는 이들이 의식을 지배해 여가수준을 낮춘다. 여가의식 수준이 낮은 사회의 특징은 일이 지배하는 문화가 휴가를 종속시키는데 있다. ‘일 지배 문화’ 속에 살아가는 직장인들은 바쁜 업무 도중에 빠져 나와야 한다는 부담, 아직 휴가 떠나지 않은 상사 눈치 봐가면서, 휴가 다녀 온 다음에 할 일 걱정하면서 휴가를 떠난다. 휴가를 보내면서도 눈치껏 먹고 자면서 다니는 행락으로 끝내고 만다. 그런 휴가는 심신을 고달프게 할 뿐이다.

몸도 마음도 다 편해야 진정한 휴가다. 세상은 바쁘게 변해왔는데 여전히 휴가문화는 과거 속에 정지된 채 머물러 있다. 이제 진정한 휴가문화가 필요할 때이다. 대부분이 3~4일 짬을 내서 떠나는 여름휴가로는 일이 지배하는 리듬과 템포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얻기가 어렵다. 진정한 휴가의 조건은 일상과 단절된 충분한 휴가시간이 주어지는데 있다. 충분한 휴가기간이 주어질 때 일상의 각박하고 숨 가쁜 일상을 중지시켜 느긋하고 평화로운 휴식을 준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직장업무나 회사 분위기로는 장기휴가제도의 시행을 어렵게 한다.

진정한 휴가문화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법제도적인 차원의 제도정비를 하는 핵심은 적어도 2주 이상의 휴가를 의무화하는 것이다. 연차휴가나 초과 근로시간을 환산해 휴가로 사용하면 회사나 직장인이나 모두에게 이익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충분한 휴식을 통해 에너지를 얻어 활기 있게 일을 대할 수 있어 좋다. 기업은 기업대로 높은 생산성을 기대할 수 있어 좋다. 몸과 마음, 모두를 편하게 해주는 진정한 휴가, 진정한 휴가가 주는 보다 큰 선물은 우리들이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데 있다.

고원규 (객원논설위원, 한국국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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