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노 앞에 벌벌떠는 양반네 조롱하는 탈놀음
영노 앞에 벌벌떠는 양반네 조롱하는 탈놀음
  • 김상홍
  • 승인 2013.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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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전통예술축제 참가작품] <9>합천 밤마리오광대
이 탈놀이는 주로 하인들의 놀이였던 탓에 양반의 허세를 조롱하고 풍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절정은 영노가 등장해 도포를 차려입은 100번째 양반과 맞딱뜨려 ‘목숨을 내놓으라’고 한다. 이때 도포를 차려입은 양반은 체통도 잊은채 ‘차라리 도포를 벗겠다’며 목숨을 구걸한다. 그러면 하인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즐거워한다.

이 탈춤은 부산의 동래와 수영, 마산(지금의 창원), 통영, 고성 등지로 전파됐고 이후 김해, 가산 등지로 확산됐다. 결국 합천 밤마리오광대가 부산·경남지방에서 행해지는 오광대의 원류가 된다고 보면 무난할 것이다. 하지만 기록이 남지 않고 있던 자료도 한국전쟁때 불타버린 것은 아쉬움이다. 이에 더 자세한 작품내용과 유래 전승과정을 알아본다./편집자 주

제37회경상남도민속예술축제 (3)
말뚝이가 양반의 근본을 폭로하며 비 인간적인 추악상을 들추어내고 있다.


▲작품내용

△제1과장(오방신장무):오방(동방,서방,남방,북방,중앙)신장은 다섯방위를 나타내며 중앙신인 황제장군이 사방신을 다스려 마을에 사악한 것을 쫓아내며 굿거리장단에 맞춰서 춤을 추며 화합하여 안녕을 비는 오방무이다.

△제2과장(중과장):도를 많이 닦은 노승이 속세의 연정에 이끌려 제물댁(여인)을 유혹하는 타락과 파계를 풍자함.

△제3과장(양반과장):말뚝이가 양반의 근본을 낱낱이 폭로하며 비인간적인 추악상을 들추어 내어 양반들의 권세와 평민에 대한 천대, 멸시를 강하게 비판하며 조롱한다.

△제4과장(영노과장):상상적인 동물 영노(이무기)가 나타나 양반을 잡아먹으려 하자 자신의 신분까지도 부정하며 서로 대결한다. 죽음 앞에서 세상사 부질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고향산천으로 돌아간다는 내용.

△제5과장(할미영감과장):본처와 첩사이의 관계로 인한 갈등에서 오는 가정비극. 본처의 죽음으로 가정의 소중함과 인생 무상함을 표현.

△제6과장(사자무):사자가 담비를 잡아먹고 자진모리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한바탕 노는 무언극이다.

제37회경상남도민속예술축제 (5)
자유분방한 하인들의 모습.


▲유래와 전승과정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는 밤나무가 많았다고 해서 밤마리라 불린다. 또 낙동강 변에 위치해 큰물이 나면 번번이 홍수피해를 입던 곳이다. 오죽했으면 1817년 백성들이 경상감영에 호소해 밭 세 석지기(한 섬의 씨앗을 심을 만한 넓이의 논밭)를 지원받아 ‘높은 대(活人臺)’를 쌓아 홍수피난처를 만들었을까.

이처럼 낙동강을 끼고 있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이곳에서는 특별한 놀이문화도 생겼다. 강을 중심으로 내륙 물동량의 중간기착지 역할을 한 밤마리에서, 거래처로 간 주인을 기다리던 하인들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놀이가 춤으로 진화했다.

재미 있는 것은 양반을 비웃고 놀리는 춤꾼이 누구네 짐꾼이며, 누구 집 하인인지를 숨기기 위해서 얼굴을 가렸던 것이 점점 탈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오래 전 낙동강에 큰 홍수가 났는데 커다란 궤짝 하나가 떠내려와 건져보니 그 안에 탈과 함께 놀이를 이끌어가는 대본이 있었다고 한다. 포구에서 배와 짐을 지키던 하인들이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이 탈을 쓰고 추던 춤이 밤마리오광대의 기원으로 전해진다.

이 탈놀이는 주로 하인들의 놀이였던 탓에 양반의 허세를 조롱하고 풍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실제 오광대놀이에는 100명의 양반을 잡아먹으면 하늘로 승천한다는 영노(이무기)가 등장해 마지막 100번째의 양반과 맞닥뜨리고는 ‘도포를 보니 영락없는 양반이구나’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양반은 ‘나는 양반이 아니니 도포를 벗을란다’며 체통도 잊은 채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에 하인들은 박장대소한다.
제37회경상남도민속예술축제 (6)
말뚝이의 모습

이 탈춤은 부산의 동래와 수영, 마산(지금의 창원), 통영 , 고성 등지로 전파됐고 이후 김해, 가산 등지로 확산됐다.

그러나 밤마리오광대에 뿌리를 둔 각 지역의 탈춤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돼 보전 전승되고 있으나 발상지인 밤마리오광대는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잦은 홍수로 문헌이나 탈 , 대본 등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데다 그나마 있던 자료도 한국전쟁 당시 모두 불에 타거나 분실됐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후기까지 이어졌던 밤마리오광대는 주민의 단합과 결속을 우려한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에 의해 중단됐다. 지난 1970년대까지 몇 차례 복원이 시도됐지만 빈약한 자료에다 ‘상놈들의 놀이’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성과가 미미했다.

그러던 중 1980년 오광대 복원이 본격화됐다. 당시 초계종합고교 교장이었던 이영기 씨가 숱한 문헌조사와 현지실사 등을 거쳐 초계 대광대(竹廣大)를 되살려냈다. 나중에 합천교육장까지 지낸 그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재현행사와 함께 지역 문화제인 합천대야문화제에 가장행렬로 참여하는 등 재조명의 불씨를 지폈다. 이후 그는 10여 년간 발굴작업과 함께 보존회를 만들어 전승의 기초를 다졌다.

1990년 덕곡면장으로 부임한 최호준 씨도 오광대 복원에 발 벗고 나섰다. 그는 오광대의 발상지인 덕곡면 율지리에 장승공원 조성과 대형 오광대 모형설치 등을 통해 문화마을로 육성했다. 마을 골목길 담벽락에는 오광대를 그림으로 그리고 해마다 정월 대보름과 한가위에는 주민과 함께 밤마리오광대 시연행사를 열었다. 초계 대광대와 밤마리오광대는 복원 경쟁을 벌인 끝에 ‘합천 초계밤마리오광대’로 통합, 지금의 ‘합천 밤마리오광대’로 자리 잡았다.

합천군은 지난 2005년 율지리에 3억 원을 들여 전수회관을 건립한 데 이어 탈 제작 체험장도 만들었다. 지난해부터는 57억9500만 원을 5년동안 연차사업으로 투입해 야외공연장과 체험객 숙소, 캠핑장, 쉼터 등을 조성하는 등 마을 전체를 오광대와 연계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자료·사진 제공 =합천 밤마리오광대·합천군·(사)경남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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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이의 모습


▲밤마리오광대를 지켜가는 사람들
상여꾼 - 성영기, 서상안, 최응집, 정수동, 조기수, 김명기
악사 - 구자수, 노영자, 최창집, 이순점, 김현숙, 피윤숙, 반길순, 김금연, 김영선
초란이 - 성상경, 오세창
흑제신 - 임미경
홍백 - 정진예
차양반 - 이성걸
원양반 - 유인식
상쇠 - 문영호
적제식 - 장순욱
백제신 - 김명자
콩밭골손 - 김말봉
곱사 - 김해숙
말뚝이 - 조찬래, 정영환
턱까불이 - 추명자
영노 - 노성용
청제신 - 김정숙
황제신 - 이영숙
 
 
제37회경상남도민속예술축제 (9)
갓을 쓰고 부채를 쓰고 있는 양반과 왼쪽 뒷편에 뿔달린 탈의 주인공 영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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