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이루지 못한 약속
아직도 이루지 못한 약속
  • 경남일보
  • 승인 2013.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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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식 (동남지방통계청 진주사무소장)
하고 싶은 일을 계획하고 모두 실천하고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새해면 언제나 거대한 계획을 세우고 이미 모든 계획을 이룬 것처럼 성취감에 도취되어 흐뭇한 미소를 짓곤하다가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모든 핑계를 동원해가며 이행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기 바쁘다. 해마다 반복되며 이행하지 못한 계획 중 하나는 노모를 모시고 전국 일주여행을 하는 것이다. 올해로 일흔 여덟이신 노모께서는 굽은 허리로 우리 농사일은 물론 남의 일도 가신다. 식구들이나 형제들이 집에 들르면 상추, 시금치, 두릅 등 온갖 반찬거리를 내어주시며 더 가져가라고 성화시다. 부모의 마음이란 아마 모두가 다 그럴 것이다.

10년 전쯤 일이다. 고향집은 동네 가운데 큰 은행나무 앞에 있다. 은행나무 밑 정자에는 평소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신다. 주말 기쁜 마음으로 고향집에 가면서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면 “오늘도 너희 엄마는 또 일 갔다. 애들도 다 직장 있고 이제는 살만한데 뭐 때문에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럽고 자식들 체면을 몰라주는 노모가 밉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친께 동네 어르신 얘기를 하면서 돈이 필요하면 저희가 드릴 테니 이제 남의 일은 가지마시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어머님께서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셨다. 일을 안 가시게 하려면 세게 나가야 되겠다 싶어 이번에는 좀 더 강하게 화를 내면서 “돈을 벌어서 어디에 쓰실거냐, 자식들이 필요한 돈 드릴거고 필요한데도 없는데 그냥 다른 집 어르신들처럼 놀고 쉬면 좋지 않으냐”고 하면서 자식들 체면도 좀 생각해 달라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급기야는 모친과 언쟁이 높아졌고 어머님께서는 눈물을 훔치면서 “니가 애미 속을 어떻게 아노”하시는 거였다. 뭔가 가슴에 찡하게 와 닿았다. “하는 일 없이 있으면 온갖 생각으로 하루가 십년 같은데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하시면서 계속 눈물을 훔치셨다. 이유인즉 모친께서는 말 못할 가슴앓이를 지금까지 심하게 앓고 계신 거였다. 30년 전 공부 잘하고 똑똑한 셋째아들은 이유 없이 집을 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지병으로 20년간 투병하시다 10년 전에 돌아가신 남편생각이 한시도 떠나지 않던 그 아픔을 일로 달래고 계셨던 것이다.

행여나 자식들이 알세라 아무도 모르게 매일 매일을 그렇게 보내셨을 것이다. 아 이럴 수가! 어찌 어머님 속으로 난 자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남의 이목이 두려워 노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이 못난 놈을 자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눈물이 핑 돌았다. 왜 내가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지금까지 어머님께 해드린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받은 것만 산더미 같아 죄책감마저 들었다.

지금도 노모께서는 일만하신다. 굽은 허리가 못내 가슴이 아프지만 지금은 말리지 않는다. 그냥 마음 편히 사시게 도와 드리고 싶다. 이번 가을이나 내년 봄에는 꼬옥 노모의 손을 잡고 여행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지고 싶다.

김종식 (동남지방통계청 진주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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