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단절사회의 비극, 남의 일 아니다
일본 단절사회의 비극, 남의 일 아니다
  • 경남일보
  • 승인 2013.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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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대 교수·한국식품유통학회 회장)
고독사로 대표되는 단절사회 문제는 최근 일본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은퇴 후 인간관계가 끊어지면서 빈곤과 외로움으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지금 일본에서는 홀로 사는 노인들의 생계형 범죄를 비롯하여 아사, 자살 등이 흔해졌다. 이러한 현상은 ‘외로운 죽음’으로 회자되면서 일본열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인연은 인간사회의 네트워크이다. 단절은 말 그대로 인연이 없어졌거나 끊어진 상태이다. 이들은 가족. 친척, 고향과 인연을 끊고 지역사회와 교류도 없다.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전통적 연결기능이 상실된 것이다. 그나마 직장에 있을 때는 끈끈하지는 않아도 직무와 연결되어 서로 교류를 이어 갈 수 있었지만 은퇴와 함께 직장동료도 인연이 끊어진다. 일본 특유의 단절사회에서 최악의 상황은 노후 고독사로 이어지고 있다. 다른 사람과 인연을 맺지 못하거나 맺기 힘든 현대 단절사회의 슬픈 현실이다.

최근 일본사회에서의 인연단절로 인한 비극적 현상은 언론에 의해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NHK보도팀이 올해 초 방영한 다큐멘터리 기획보도에서 일본사회의 난맥상을 꼬집어 보도하면서 드러난 것이다. 이 보도에 의하면 원래 자살 증가 이유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려 했으나 막상 취재해 보니 노인 고독사가 급증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고독사 문제를 집중 보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독사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매년 3만~4만명 정도로 추정할 뿐이다. 도쿄에서만 독거노인 중 약 3000명이 홀로 죽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려 43%의 일본인이 고독사가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물론 독신이라도 가족과 친지는 존재한다. 관계가 멀어졌을 뿐이다. 혈연과 연락이 끊긴지 오래라고 담담히 말하는 노인이 흔하다. 집단, 이웃, 가족관계가 번거로워 자발적으로 절연하고 혼자 사는 노인들도 많다.

비극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고독사로 죽은 사람의 유족을 찾아 유골 인수를 부탁하면 거절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거절당하면 행정기관의 강제력도 없다. 가족 대신 납골당에 수납할 뿐이다. ‘유령연금’처럼 죽은 사람의 연금을 챙기려 유골을 집안에 방치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는 보도도 있다. 일본사회의 냉정하고 비도덕적인 단절사회화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는 이유이다.

단절사회의 절대 피해자는 독신 노인이다. 지역 및 가족과의 연대가 희박해지면서 대도시 독신 노인의 고립양상은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 같은 고령자라도 여성노인이 더 문제이다. 돈 없이 장수하다 보니 극빈층의 상당수가 여성노인이다. 메이지대학 실태조사를 보면 독거가구의 80%가 여성이다. 이들 중 생활보호 기준에 상당하는 연수입 150만엔 이하가 30%를 차지한다. 그나마 정부의 생활보조를 받는 비중은 그중 16%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절대 빈곤층이다.

물론 일본은 부자나라이다. 일본 중앙정부 부채가 작년 말 기준 983조엔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29%에 달하지만 가계금융 자산만 1500조엔이 넘는다. 대외 채권(610조엔) 규모도 막대하다. 아직은 곳간에 여유가 있다. 문제는 덩치가 아니라 체질이다. 일본이 괴로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대국으로서 빈부격차가 너무 심한 것이다. 경제문제가 곧잘 사회문제로 번지는 원인이 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남성과 여성, 고령자와 청년,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위계층으로 전락한 계층의 집단우울증이 심상찮다. 단절사회는 빈부격차의 종착지 중의 하나다. 승자독식의 경제논리가 개인 및 사회적 네트워크마저 끊어 버려서이다. 단절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단절사회의 희생자로 고령자가 거론되지만 현역세대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조만간 닥칠 은퇴 이후의 삶이 불안하다. 그나마 평균적인 일본 노인은 돈이나 많다. 성장의 수혜를 고스란히 받은 덕에 쌈짓돈이 넉넉하다. 반대로 젊은 세대는 노후 불안의 주원인인 돈조차 없다. 노후준비는 아예 포기에 가깝다. 가난과 고독의 확대 재생산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단절사회의 비극은 사회경제적으로 일본을 따라잡고 있는 우리에게 경고의 신호가 아닐 수 없다.

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대 교수·한국식품유통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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