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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태백산맥 품은 '조정래 등산길' 오르다경남일보 선정 100대 명산 <67>벌교 제석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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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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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에서 말하는 마지막 하늘 도리천 수미산의 경치인듯 최고의 풍경을 자랑하는 제석산 신선봉.
 
 
 
‘이번 주는 어느 산으로 갈 겁니까?’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같이 가고 싶다’는 마음이 묻어 있었다.

대답 대신 성음으로 흥얼거렸다. ‘돌아서면 무심타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 ‘제∼석산 붙는 불이 그 내님의∼무∼덤에 풀이라도 태웠으면…

이 노래에 대한 기억이 새롭다. 80년대 초 소월의 시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를 대학가요제에 출전한 젊은이들이 ‘록’으로 만들어 부르면서 당시 공전의 히트곡이 되기도 했다. 정말 세상모르고 살았던 날. 이 노래를 줄기차게 불렀던 때가 있었다. 의미도 생각지 않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그냥 따라 불렀다. 리듬이 좋고, 노랫말도 좋은 것 같고, 또 뭔가 좀 있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해서…,

데자뷰처럼, 요 며칠사이 이 노래를 또 흥얼거리고 다녔다. 그런데 이 노랫말, 아니, 시구를 곱씹어 보게 된다. 시가 유행가 가사로 쓰이는 것은 당연하다 할지라도 서정적인 시가 ‘록’이라는 음악장르로 탈바꿈해 불렸다는 게 의외다.

무덤 속에 소월은 이렇게 발전한 자신의 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통탄이라도 할까. 아니면 살며시 미소라도 지을까.

노랫말에 나오는 ‘제석’은 불교의 수호신, ‘제석천’에서 왔다. 법화경에 제석은 환인, 도리천주라는 기록에 따른 것이다. 도리천의 선견성에 거주하며 사천왕을 거느리고 수미산의 불법과 불제자를 지킨다.

소월은 시를 통해서 비록 오래 전에 갈라서 이별한, 또 세상을 떠난 님이지만 애증의 인생사, 한 조각 무덤으로 남은 그님에게 온기가 전해지길 바랐음이다.

그러나 소월이 노래한 제석산은 벌교가 아니라 평안도 정주에 있다. 이름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을 내려와서도 ‘제석산 붙는 불이∼’ 뇌까리고 다닌다.

정작 이 산은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의 산’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다. 산 아래 현부자집이나 소화네집이 있고 안창민과 염상진이 이 산줄기를 따라 인근 조계산으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지로 꼽혔고 ‘조정래 등산길’로 이름 붙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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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산동화사와 삼층석탑


▲제석산(560m)은 순천 별량면과 벌교읍의 경계에 있다. 북쪽 오봉산에서 남쪽 여자만으로 잠영하기 전 옹골차게 솟은 뼈진 산이다. 예부터 개운산으로 불렀다. 고려 초 문종의 넷째 의천이 지금의 낙안을 지나던 중 동쪽 하늘에 상서로운 구름이 낀 것을 보고 개운(開雲)산이라 불렀다. 그는 이 산기슭에 ‘봉황은 오동나무에 깃든다’고 해서 오동 ‘동(桐)’과 꽃 ‘화(華)’를 넣어 동화사라는 절을 창건했다. 그래서 지금도 ‘개운산 동화사’다. 이 절에 꼭 봐야할 것 2개가 있다. 절집 마당 중앙에 있는 삼층석탑과 대웅전 내부의 부처님을 모신 불단이다. 석탑은 상륜부가 온전히 남아 있는 몇안되는 탑이요. 불단은 진귀한 문양을 하고 있어 반드시 한번 챙겨볼만한 것이다.

▲산행은 동화사를 들머리로 제석산→ 순천만자연드림목장 갈림길→정상→신선봉→대치재 갈림길→무덤군→현부자집→조정래기념관으로 하산했다. 동화사에서 정상구간까지는 산악자전거 길이 조성돼 있고 일부구간에는 오프로드 자동차 길도 있어 실망스럽기도 하거니와 산길이라는 것이 무색해진다. 대신 정상에서 조정래기념관까지 구간은 ‘조정래 등산길’이라고 해서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이날 산행에선 궂은 날씨 속에서도 가끔 해가 나와 실루엣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동화사에서부터 날머리 조정래 기념관까지 일관산행으로 들머리까지 이동은 벌교 택시를 이용했다. 비용은 1만3000원.

▲오전 9시 40분. 들머리 개운산 동화사 문을 지나면 석탑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삼층석탑(보물 제 831호)주변 공사가 진행 중이다.

신라양식을 계승한 고려초기의 석탑으로 2중 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을 세웠다. 상륜부가 잘 남아 있는데 노반 위에 복발과 앙화 보륜 보개를 갖췄으며 보주는 없다. 안정감과 비례의 조화를 잃지 않은 단아한 형태이다. 부처님의 모신 불단은 고풍스러우면서도 화려할 뿐 아니라 진귀한 문양을 하고 있다.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넓은 도로 양옆으로 5m가 넘는 산죽이 우거져 있고 출발 20여분 만에 갈림길. 오른쪽이 사유지, 왼쪽이 등산로이다. 집주인이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는 등산객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등산로를 좌, 우로 확실하게 안내해 놓았다. 그런데 등산로라고 하기엔 주변에 숲이 별로 없고 큰길이 휑하게 뚫려 있다.

차라리 둘레길 정도로 이해하고 가면 마음이 편하다. ‘이 산 등산로가 왜 이래?’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산악자전거코스인데 차량 바퀴자국이 많은 걸로 미뤄 ‘오프로드’를 즐기는 동호인도 있는 모양이다. 산허리를 몇 차례 돌고 돌아 1시간 만에 ‘순천 자연드림목장’이라고 새긴 큰표지석 앞에 선다. 남쪽 멀리 안개와 구름 낀 사이로 여자만의 섬들이 점점이 떠 있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대형교량이 보인다.

여기서 사이 길을 택해 정상으로 방향을 잡는다. 길은 조금 좁아졌어도 여전히 전형적인 산길은 아니다. 웬일인지 몰라도 산을 홈파듯이 길을 뚫어놓았는데 제 아무리 ‘오프로드’ 차량이라도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은 오름길이다. 산은 성한 나무 한그루가 없는 민둥산이다. 대신 시절을 앞서 가는 억새가 술을 내밀고 있다.

산의 실망감은 정상까지 계속된다. 제석산 산 이름에 속고, 사진에 속은 것이 확실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궂은 날씨에도 동행 산우에 미안한 생각마저 드는데, 산우는 눈치를 챘는지 중간에서부터 별 말이 없고….

헬기장 끝에 첫 번째 정상석이 눈에 들어온다. 잔뜩 찌푸린 날씨, 먹구름에 조망이 없고 생뚱맞게 높이 걸려 있는 태극기만 무심히 펄럭인다. 무슨 이유로 태극기를 꽂아 놓았을까 라는 생각도 시간 허비다.

여기서부터 벌교 현부자집까지 3.6km의 조정래 등산길이다. 산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큰 나무는 없어도 바위와 어울려 있는 조붓한 산길이라 조금은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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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치닫고 있는 벌교들
 
산행 1시간 40여분 만에 두번째 정상이다. ‘불경에서 말하는 마지막 하늘 도리천(33천)선경성에서 사천왕을 거느리고 수미산(32천)의 불법을 지키고 보호하며 모든 악을 정복하는 제왕이 제석이다’라는 산 이름에 관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정상에는 사람이 오래 머물지 못한다. 왕벌이 집을 짓고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촬영을 위해 강한 후레쉬를 터트렸더니 왕벌 서너마리가 그야말로 총알처럼 튀어나온다. 혼비백산, 자리를 뜰 수밖에 없다.

신선봉 못 미쳐 하늘의 짙은 먹구름이 낮게 깔리고 갑자기 봇물 터지듯 비가 쏟아졌다. 계속된 비바람은 온몸을 적시고 모자를 날려 보냈다.

신선봉 능선 직전, 사진을 만들기 위한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됐다. 얼마나 흘렀을까. 센바람은 더 센바람을 몰고 오더니 비가 그치면서 일순간 뒤덮고 있던 구름이 거짓말처럼 걷혔다. 산 아래 바둑판처럼 반듯한 벌교 들녘에 초록빛이 선연하고, 먼 하늘 구름사이 언뜻 언뜻 드러나는 비취빛이 머릿속을 간지럽힌다.

그런 뒤에 오는 제석산은 아름다웠다. ‘조정래 등산길’은 명성만큼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동안의 실망감을 보상이라도 하듯 전혀 다른 선경을 보여줬다. 말 그대로 ‘도리천·수미산의 선경이 이런 것이다’ 라고 보여주는 듯했다. 비유하면 한바탕 울음 뒤에 오는 후련함이거나, 완주한 마라톤의 결승점에서의 행복감이라거나 하는 정도.

구름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목격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불어가는 센바람이 신선봉 바위군에 부딪치면서 신선대봉 뒤편에 소용돌이를 만들어 구름이 형성되고 있었다. 쉽게 목격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자 형언이 쉽지 않은 풍경이었다.

신선봉은 꼭대기까지 올라 설수 있지만 미끄러워 조심해야한다. 신선봉 험한 바윗길을 벗어나면 비교적 편안한 산길이다.

내려서면 대치재 갈림길. 중간 중간 남으로 순천만으로 이어지는 벌교 앞바다. 다도해와 꼭 피라미드를 닮은 첨산이 특이하고 낙안의 벼논은 가을로 치닫는다. 1시간을 더 걸어 태백산맥의 첫무대 현부자집과 소화네 집, 조정래 문학관을 만나면 산행이 끝난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은 제석산과 벌교를 배경으로 여순사건에서부터 한국전쟁까지 두 이념의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 그 이유로 정상에서 벌교읍까지 등산길을 조성해 놓았다. 휴식시간 포함 5시간이 소요됐다.

 
제석산등산로
제석산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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