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선조들의 풍요로운 지혜
추석과 선조들의 풍요로운 지혜
  • 경남일보
  • 승인 2013.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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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식 (경남도의원)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올 추석은 경기 장기불황과 폭염으로 인한 가뭄, 바다 적조 등으로 농수산물의 물가인상이 예사롭지 않을 것 같다.

추석은 중추절, 가배, 가위, 한가위 등 여러 이름으로 통용된다.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의미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품은 고어이다. 말하자면 음력 8월 15일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는 의미다. ‘가위’라는 말은 신라시대 때 실을 짜는 일, 즉 길쌈놀이를 지칭하는 ‘가배’에서 유래했다. 그럼 중추절(仲秋節)은 또 무엇인가. 선조들은 가을을 초추·중추·종추 3개의 달로 나누었는데 음력 8월이 중추에 포함되기 때문에 중추절로 명명한 것이다. 추석 무렵에는 황금 들녘이 펼쳐지고 오곡이 무르익으며 각양각색의 풍성한 과일이 쏟아져 나온다.

‘동국세시기’에는 송편과 시루떡, 인절미, 밤단자를 추석의 제철음식으로 소개하는데 이 가운데 송편은 추석을 가장 잘 대표하는 명절음식이다.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시집을 잘 간다는 이야기도 있고 속담도 여러 가지가 있다. 선조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지금부터 송편은 물론 추석에 관한 속담들을 통해 선조들의 지혜와 해학을 살펴보자. 먼저 ‘푼주의 송편이 주발 뚜껑 송편 맛보다 못하다’. 푼주 같이 좋은 그릇에 담긴 맛있는 송편이라고 해도 정성과 사랑이 스며들지 않았다면 초라한 주발 뚜껑에 담긴 송편에 비해 맛이 좋을 리 없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전해지는 재미있는 일화. 찢어지는 가난에 먹을 것도 변변치 못한 선비 내외가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부부가 송편을 만들고도 좋은 그릇이 없어 주발 뚜껑에 담아 놓고는 입으로 서로 송편을 주고받으며 맛있게 먹었다. 이 광경을 우연찮게 본 숙종 임금. 왕후에게 송편이 먹고 싶다고 했고 왕후는 잘 빚은 사기그릇 푼주에 송편을 잔뜩 담아 대령했는데 숙종은 그 선비 내외의 다정스러운 모습이 떠올라 먹기는커녕 울화가 치밀어 상을 엎어버렸다고 한다. 다음으로 ‘작년 팔월(추석)에 먹은 오려(이른 벼) 송편이 나온다’. 이는 아니꼽고 비위가 상해 지난해 추석에 먹었던 송편까지 다시 나와 토할 것 같다는 말이다.

추석 속담 중에 가장 유명한 건 아무래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가 아니겠는가. ‘추석에 음식을 많이 차려 놓고 밤낮으로 여흥을 즐기는 것처럼 계속 지내고 싶다’는 의미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계절, ‘천고마비’ 가을의 추석을 두고 ‘이날만 같아라’고 한 역사 기록이 있다. 김매순(金邁淳)의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 8월 중추(中秋)에 나오는 말을 잠깐 인용하면 “가위란 명칭은 신라에서 비롯되었다. 이 달에는 만물이 다 성숙하고 중추는 또한 가절이라 하므로 민간에서는 이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리 가난한 벽촌의 집안에서도 예에 따라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도 만들며, 또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려 놓는다. 그래서 말하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加也勿 減夜勿 但願長似嘉俳日)’라고 한다.

속담에는 날씨와 농삿일의 상관관계도 녹아 있다. ‘설은 질어야 좋고 추석은 맑아야 좋다’. 곧 음력 설에 눈이 자주 오면 보리농사에 좋지만 추석 때는 벼의 등세기이기 때문에 맑은 날이 많아야 일조시간이 길고 적산온도가 높아 풍년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옷은 시집 올 때처럼, 음식은 한가위처럼’이라는 속담도 있는데 옷은 시집 올 때처럼 잘 입고 음식은 한가위날 같이 잘 먹고 살고 싶다는 말이며, ‘설에는 옷을 입고 한가위에는 먹을 것을 얻어 먹는다’라고 하는 속담은 비교적 한가하고 겨울철인 설에는 좋은 옷을 지어 입고 추수철인 추석에는 먹을 것이 풍부해 음식을 많이 얻어 먹게 된다는 뜻이다.

요컨대 전통적으로 농업국가였던 우리나라는 한가위야말로 일년 중 가장 풍요로운 날로 여겼고, 이 한가위는 설, 단오와 함께 3대 명절로 오랫동안 인식돼 왔다. 큰 축제의 날, 가난한 살림에도 지나는 나그네에게 잠자리를 내주고 음식을 대접했던 선조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우리 모두가 가져보는 건 어떨까. 선조들의 지혜와 해학이 서린 속담에서 엿볼 수 있는 희로애락. 한겨레 한민족이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박동식 (경남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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