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63)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63)
  • 경남일보
  • 승인 2013.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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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63)
<24>후반기 동인 조향 시인 출생지 환덕리(2) 
 
조향(趙燮濟)시인은 1917년 곤양면 환덕리 환덕마을에서 태어났다. 환덕리는 골짜기 마을이라 마을 사람들이 무얼 먹고 사는지가 궁금하여 조한제 선생에게 물었더니 과거에는 고구마를 생산했고 지금은 옥수수를 많이 생산한다고 했다. 경남도지사 조익래가 이 마을 출신이라는 것 등 이것 저것 묻고 있는 중에 이 마을 좌장 조한제 선생은 조향의 동생 조봉제에게 연락해 보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때사 필자는 조향 시인에게 동생이 있고 그 동생 역시 시인이라는 것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마을에서 돌아온 필자는 시인명부에서 조봉제(趙鳳濟)를 찾았다. 이름을 찾기 전에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최근까지 시작품을 잡지에 발표하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남자가 받았는데 조봉제 시인의 장남 조석래(63)였다. 아버지와 백부 조향 선생의 출생과 유년에 관해 묻고 싶어 전화했다고 하니 “작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알고 계시죠?”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잠시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저는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선생의 별세에 대해 애도를 표합니다. 죄송합니다.”하고 예를 표했다.

장남은 어머니를 바꿔 드리겠다 하여 조봉제 시인의 부인을 통해 다음의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조향 시인의 아우 조봉제는 9살 밑이다. 조향은 사천 환덕리에서 태어났지만 아우 조봉제는 산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산청에 공무원 발령이 나서 식구들이 산청으로 이사를 했다. 얼마가 되었는지는 모르나 그 뒤 진주로 이사를 나와 초등학교를 다닌 것으로 기억된다. 이때 조향은 진주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다시 집은 마산으로 이사를 했고 조봉제는 고등학교와 전문학교를 일본에 가서 다녔다. 유학을 마치고 마산으로 귀향했다. 여기까지가 조봉제시인의 부인이 증언한 내용이다. 조향은 거주지를 “사천 곤양--산청--진주--마산--부산”으로 이동했고 조봉제는 “산청--진주--마산--부산”으로 이동했다.

필자는 이어 조향 시인의 장녀 조유정(65)을 통해 슬하에 5남매를 두었다는 것을 알았다. 조유정(장녀·65), 조붕래(장남·64·조선해운 부사장), 조미정(차녀), 조향래(차남·사망), 조욱래(삼남·48·회사원) 등이 그들이다. 조향은 알려진 대로 진주고등보통학교(현 진주고교) 8회로 졸업했다. 동기들은 1932년 4월 1일 입학하여 1937년 3월 5일 졸업했는데 모두 59명이었다. 명단을 훑어보니 조향은 조섭제(趙燮濟)로 되어 있고 배종호(裵宗鎬·산청 생초출신·경성제대졸·연세대 철학과 교수 역임)가 눈에 띄고 김재원(金在元·인하공대 명예교수), 안동선(安東善·대구사범·기업인·정치인) 등 이름이 보인다. 배종호 교수가 일제하 경성제국대학을 다닐 때 산청 생초로 귀향하면 산청군수가 길목까지 마중나와 있었다는 이야기가 산청 곰내 언저리에는 전설처럼 퍼져 있다. 학생복을 입고 흰 장갑을 끼고 지팡이를 드는 것이 경성제대의 교복 차림이었다. 권위가 군수를 눌렀던 것이 아닌가 한다.

조향의 선배인 진주고보 7회 졸업생 중에는 교육자들이 많아 보인다. 박우진(朴宇震·전 진중 교장), 강극영(姜極瑩·전 진주고 명신고 교장), 정원용(鄭原鎔·박정희 대통령과 대구사범 동기·전 진주고 진주여고 교장·전 검찰총장 정구영·시인이자 세종대 석좌교수 정순영의 부친) 등이 있고 경남일보 사장과 개천예술제 대회장을 지낸 박세제(朴世濟)라는 이름이 보인다. 한 해 후배인 9회 졸업생으로는 구기회(具麒會), 고한준(高漢俊·전 경남대 교수), 박충권(朴忠權), 방재원(方在源), 이병선(李炳銑·전 한독실업학교장), 조무준(趙武駿·내과의사), 최기윤(崔其鈗·전 교장) 등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

조향은 진주고보를 졸업하고 이어 대구사범 강습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대학 예술학원을 다녔다. 귀국후 교육계에 발을 디뎌 마산상고 교사를 거쳐 동아대학 교수 문리대 학장을 역임했다. 1940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시 ‘첫날밤’이 입선돼 문단에 올랐다. 그 뒤 동인회 후반기 멤버로 활약하고 마산에서 ‘노만파’ 동인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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