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장경 판각지
고려대장경 판각지
  • 최창민
  • 승인 2013.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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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민 (경제문화체육부장)
고려대장경은 몽골의 침입을 불력으로 막아내기 위해 고려의 초특급 프로젝트였다. 초조대장경이 몽골침입에 소실되자 민심을 추스르고 우월적인 문화강국의 면모를 과시하며 몽골의 침입에 대응했다. 재조대장경이다. 1236년부터 15년동안 만들었다.

▶대장경의 중요성과 역사적 의미는 실로 엄청나다. 한문으로 번역된 불교대장경 중 가장 오래되고 최고급이다. 유일하게 고려만이 대장경을 만들수 있는 나라였다. 중·일도 실패했다. 특히 엄청난 노동력과 기술집적, 경제적 비용이 들었다. 팔만개의 장경 양면은 16만면, 한면이 300여자이니, 총 5000여만자에 이른다. 지리산에서 나무를 벌목해 옮기고, 뒤틀림·부패방지를 위해 바닷속에 몇년을 보관했다가 꺼내 고온에 다시 삶는 작업을 거쳐 제작했다. 판각은 연인원 5만명. 만리장성 못지 않은 고려 최대의 프로젝트였다. 유네스코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그런데 최근 고려대장경이 우리 고장 남해에서만 판각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고려대장경 대장도감판과 분사대장도감판이 같은 장소에서 판각됐고 각수(刻手)조사에서도 확인됐다”며 “장소는 남해였다”고 주장했다.

▶즉 지금까지 고려대장경 중 대장도감판은 강화도, 분사대장도감판은 남해에서 만든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는 두곳에서 만든 것이 아니고 대장도감과 분사대장도감은 ‘남해 한곳뿐’이며, 따라서 모두 남해에서 판각했다는 얘기다. 증거로 간행기록조사 중 분사대장도감이라는 글씨가 다른 글씨보다 작은 것을 발견했고, 이는 원래 있던 대장도감이라는 글을 파내고 그 자리에 ‘분사’라는 글을 삽입해 경판에 끼운 것이다. 따라서 대장도감판은 모두 대장도감이 있던 남해에서 새겼다는 결론이다. 사실이라면 교과서의 고려대장경 판각지는 남해로 바뀐다.

최창민·경제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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