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그랬어
엄마도 그랬어
  • 경남일보
  • 승인 2013.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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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지 (아동복지전문기관 홍보담당)
나는 어린 시절 ‘아이고, 클수록 엄마 닮네’라는 친지분의 말에 와앙 울음을 터뜨려 엄마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긴 전적이 있는 괘씸한 딸이다. 그리 울어댈 만큼 서운했던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으나 어린 마음에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아빠도 눈이 큰데 엄마를 닮아 작은 눈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듯싶다. 자랄수록 눈 이외에도 이곳저곳 엄마를 닮아가는 탓에 ‘외모의 닮음’을 인정하고 살아가고는 있지만, 실은 여전히 엄마의 성격을, 엄마의 인생을, 엄마의 삶을 닮고 싶지는 않았었다.

엄마의 직업은 교사다. 담임선생님처럼 공부를 가르쳐 주진 않았지만 엄한 표정으로 고지식한 잔소리를 하는 모습은 똑같았다. 아빠보다 무뚝뚝했고 칭찬엔 박했다. 전교 1등 성적표를 받아 와도 크게 기쁜 기색이 없었고, 6등을 하니 실망하는 표정을 보이셨다. 엄마의 기대를 충족하기에 나는 부족하기만 한 딸인 것 같아 위축되곤 했다.

엄마는 당신처럼 교단에 서기를 바랐지만, 나는 “엄마처럼 안정만을 좇아 지루한 공무원으로 살고 싶지 않다”며 외면했다. 엄마는 30년간 해온 일이 지겨울 법도 한데 ‘다시 태어나도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열혈 선생님이다. 한데 교대에 들어갈 성적이 안 되는 자신을 인정하기 싫었던 내가 괜한 엄마를 욕보이며 핑계 뒤에 숨었던 것이리라.

그랬다. 생각해보면 나는 구석구석 엄마를 참 닮았다.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 쉬이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도, 고지식함이라고 생각했던 뚜렷한 소신도, 그에 반하는 현실과 외압에 쉽게 타협하지 못하는 것도. 일에서 자아실현을 찾으려 하는 고루한 낭만도.

나는 입사 2년차의 팀 막내다. 한데 팀장 지시대로만 일하기 싫다고 반항을 하고 집에 돌아와 난 윗사람의 생각을 글로 옮겨만 주는 기계가 아니라며 분을 어쩌지 못해 울어댄다.

“네 욕심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네 위치다. 책임도 네가 아닌 그가 지는 것이다.” 아빠가 나를 달랜다. ‘융통성 없기는 네 엄마랑 똑같다’며 낮게 웃으며.

간만에 엄마와 통화를 했다. “나도 진짜 잘할 수 있단 말이야. 나한테 맡겨 줬으면 좋겠단 말이야. 해보고 싶은 게 많단 말이야.” 어린애처럼 투정하는데 혼낼 줄 알았던 엄마가 차분하게 말한다. “엄마도 그랬어. 엄마는 여기까지 쉽게만 왔겠니. 사회생활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너도 할 수 있다. 엄마도 했으니까.”

엄마도 그랬다는 한 마디에 왠지 모를 안심이 된다. 엄마처럼 나도 무사히 이 시간을 견뎌내 성장할 수 있으리라. 엄마처럼 나도 이 일을 사랑하기에 쉬이 포기해 버리지 않으리라. 그리고 엄마처럼 언젠가 나의 값진 경험으로 내 딸을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엄마를 닮아 너무 좋다.

강민지 (아동복지전문기관 홍보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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