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와 남성연대
넥타이와 남성연대
  • 경남일보
  • 승인 2013.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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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청 (시인, 진주제일여고 교사)
고치 속의 누에처럼 웅크리고 잠든 그 남자 /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 생의 중심에 묶인 넥타이 푼 적 없다 / 벼랑 끝에 매달려 흔들리다가, 때로는 느슨하게 / 때로는 팽팽하게 목을 조이는 목줄 끝 / 날개와 맞바꾼 계약의 화살표는 아래로 향한다 / 참을 수 없이 팽창된 날카로운 한 순간이 / 뜨거운 절망을 쏘아내고 곤두박질치면 / 순한 짐승처럼 늘어지는 넥타이 / 날아오르려는 순간 번번이 / 추의 무게에 발목 잡혀 절벽 아래로 수직 강하하는 / 그 남자 가끔,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 그 자랑스런 기호 풀고 싶었던 적 없었을까(최정란 시인의 ‘넥타이’ 부분)

넥타이는 남성의 심벌이다. 이러한 남성의 심벌이 과거에는 자랑스러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허울 좋은 권위에 지나지 않는다. 때로는 자랑스럽게 앞으로 무작정 들이밀기도 하지만 언제나 한순간에 수직강하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넥타이는 날개와 맞바꾼 남성의 형틀이기도 하다. 한평생 매고 다니는 일은 사실 한평생 묶여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요즈음 낀 세대로서 오십대 아버지의 존재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이미 한국 사회는 가부장의 권위가 통용되는 사회도 아니다. 그런데도 가장의 권리와 의무는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단하다.

네이버의 남성연대 카페 대문에는 ‘아버지 존경합니다’라는 문구가 크게 걸려 있다. 이것은 이들이 아버지의 처지를 남성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많은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옛날같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지만 사회적으로 남성을 약자로 볼 수는 없다. 그들이 제기하는 남성의 문제가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문제를 남성의 문제로 치환하여 여성과 대립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은 남성의 문제라기보다 어쩌면 시대변화에 따른 사회적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남성연대 대표의 사망은 우리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의혹에 대한 논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의 주장이 양성평등의 가치와 충돌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미 우리 사회가 여성이 우대받고 있는 사회라고 여기고, 여러 측면에서 남성의 권리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고 여성의 권리를 대변하는 단체인 여성가족부를 비판해 온 시민단체이다. 그러나 그들이 제기한 문제는 군가산점처럼 단순히 남성의 권리 차원에서만 바라볼 수 없는 문제들이 많다. 즉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여성과의 대립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남성연대 활동 회원의 다수가 젊은 청년들이다. 이것은 그만큼 개인적 차원에서 남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에 많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젊은이들이 처한 삶의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이야기다. 즉 병역의무와 같은 남성에게 부과된 의무를 다하면서 여성과 동등하게 경쟁하기에는 그만큼 우리의 사회적 현실이 팍팍하다. 그래서 이들은 오랫동안 희생을 감내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짐을 떠안고 있는 아버지의 처지를 누구보다 이심전심으로 공감하는지 모른다. 이들의 이러한 심정을 무조건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도외시한다면 이들의 허탈감과 분노가 다른 소수자나 약자에게 향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남성연대는 이러한 젊은이들의 분노와 허탈감의 건전한 창구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제 이들의 목소리를 일부의 목소리로 치부하지 말고 그 주장의 사회적 배경에 대해 진지하게 귀 기울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직장이나 가정 내에서 여성의 권리가 많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아직 남성이 강자인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를 약자나 피해자로 느끼는 남성들이 있다면 이것은 더 이상 남녀의 차원이 아닌 사회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 그런 의미에서 이들이 대립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여성과 소통하면서 함께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히려 허울뿐인 거추장스러운 과거의 ‘남성’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쟁점이 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여성과 연대할 수 있는 새로운 정체성을 하루빨리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하재청 (시인, 진주제일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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