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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이 품은 하트에 산행객은 사랑에 빠지고경남일보 선정 100대 명산 <68>문경 대야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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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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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산5
삿갓바위 옆 문바위
 
 
문경 주변에는 하늘에서 별이 쏟아진 것처럼 산이 많다. 도내의 함양, 거창, 밀양 영남알프스가 그렇고 강원도의 산줄기가 그렇듯이 문경 주변에도 산 천지다.

먼저 대야산 서남쪽에 조항산 청화산 속리산, 동북쪽의 희양산이 백두대간산군이다. 이번 산행에서는 대야산 남쪽 밀재에서부터 대야산정상까지가 대간 길에 속한다. 동북쪽으로 계속 진행하면 문경새재와 하늘재를 넘어서 주흘산 포암산 월악산이 한줄기 넝쿨처럼 이어진다. 서쪽에는 화양계곡을 낀 괴산 도명산<64편>이 있다.

이 산들 중 대야산은 최고 클래스에 이름을 올릴 만큼 산세가 수려하다. 그러나 아름다운 만큼 험준한 지형을 갖고 있어 노약자나 어린이의 동반산행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특히 함양에 있는 용추계곡과 이름이 같은 용추계곡이 있다. 암반으로 형성된 계곡에 용추폭포가 있는데 하트모양이 선명해 명소가 됐다. 물이 깊어 위험하지만 큰맘 먹고 뛰어들기라도 한다면 사랑에 빠진 사람(?)이 된다.

▲대야산(931m)은 충북 괴산군의 청천면과 문경시 가은읍의 경계가 되는 산.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며 대간길 상에 놓여있다. 경북 쪽에 용추·선유동계곡이 있고 충북 쪽에 도명산 화양구곡이 있다. 천지개벽이 났을 때 봉우리가 대야만큼 남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한다. 상대봉이라고도 부르며 대칭되는 산은 동쪽 중대봉이다.

▲등산코스는 벌바위주차장→월영대(갈림길)→다래골→떡바위→밀재사거리→대야산정상→피아골 월영대 주변삼거리(다래골·피아골합수지점)→용추계곡→용발자국바위→벌바위 원점회귀. 주차장에서 대야산 정상까지 3.6km이며 왕복 7.2km에 휴식시간 포함 5시간 30여분이 소요된다.

▲오전 10시 5분, 벌바위 주차장에서 출발해 왼쪽 용추계곡길을 따른다. 계곡 양쪽 모두 등산로 정비가 잘돼 있어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월영대까지는 갈 수 있다.

입구 돌마당식당 앞 이정표에 ‘대야산 왕복 4시간 30분’ 적혀 있지만 이는 논스톱 주행시간이며, 보통 이보다 1시간 정도 더 소요된다.

여름의 끄트머리. 계곡 가에 주인 잃은 평상과 접혀진 파라솔이 을씨년스럽다. 전날 내린 비 탓에 두꺼비 개구리 뱀 따위들이 햇살 찾아 등산길에 나와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작은 뱀 한마리가 사람들을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는 능력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통하다.

용추계곡 초입 무당소. 물이 맑고 차갑고 주변 숲과 산들이 어울려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준다. 특히 다가올 가을이면 물빛마저도 홍색으로 변해 빛과 색의 극치를 이룬다고 한다. 수심이 3m정도로 깊지 않은데 옛날에 물을 긷던 여인이 물에 빠져 죽었다. 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굿을 하던 무당마저도 빠져죽었다. 장미가 아름다운만큼 가시도 날카로운 법이라, 무당소는 예쁘고 사연은 애달프다.

‘개경팔경 용추’라고 새긴 비석이 나온다. 용추계곡을 중심으로 좌우에 2개의 등산로가 열려 있어 물길을 가로질러 오가면서 산행을 즐길 수가 있다.

용추폭포는 하트처럼 생긴 암반 위에 폭포와 소가 연이어져 있다. 물이 깊고 물빛도 시퍼렇게 보여 선뜻 들어가기가 겁이 나는데 사람들은 튜브에 의지한 채 빠져들어 마지막 여름을 즐기고 있다.

 

20130830대야산희양산 (12)
하트모양 용추폭포



출발 40여분 만에 갈림길이 있는 월영대. 말 그대로 ‘아름다운 달빛이 소에 비치는 곳’이다. 휘영청 밝은 달이 높이 뜨는 밤이면 바위와 계곡의 흐르는 맑은 물위에 달빛이 아름답게 드리운다.

이때부터는 용추계곡은 끝이 나고 왼쪽은 다래골, 오른쪽은 피아골이다. 그러나 피아골을 통해 정상으로 가는 등산길은 국립공원 측에서 폐쇄했다. 다래골 길을 택해 밀재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정상으로 가면서 물줄기는 점점 작아지지만 숲은 더욱 깊어진다. 아기자기한 계곡, 청청한 물소리, 울창한 숲, 달콤하게 느껴지는 공기까지, 숲이 주는 정결함에 겸손한 마음까지 생긴다.

떡바위는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떡처럼 생기지는 않았다. 그냥 큰 바위다.

출발 1시간 40분 만에 밀재에서 백두대간을 만난다. 사거리인데 재를 넘어가면 중대봉이 나오고, 왼쪽으로 가면 고모치를 지나 조항산으로 이어지는 대간길. 오른쪽이 대야산길이다.

밀재에서 대야산 장성봉 악휘봉까지 구간은 삵과 노란목도리 담비가 서식하고 있는 소중한 자연자원지역, 출입이 제한돼 있다.

밀재부터는 된비알로 빠르게 고도를 높인다. 워낙 경사가 큰 곳인데다 바위가 미끄러워 넘어질 듯한 아찔한 고비를 몇 차례 넘기고서야 큰바위덩어리가 얼켜 있는 안부에 닿는다. 엉금엉금 기어 큰 바위덩이에 서면 대야산 정상의 왼쪽 거대한 암군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어 대문처럼 생긴 일명 ‘문바위’를 기어서 비집고 오른다.

하얀바위가 박혀 있는 정상의 산군이 나무 사이로 힐끗힐끗 보인다. 큰 나무들 때문에 구도가 나오지 않아 전망 좋은 꼭대기 바위로 이동해 사진촬영을 할 수 있었다. 멀리 농바위, 삿갓(버섯)바위, 정상으로 이어진 산 실루엣이 파도처럼 요동친다.
 
20130830대야산희양산 (49)
대야산 정상 풍경 오른쪽 멀리 흰바위산은 희양산이다.


절경은 이어진다. 가까이 다가가면 멀리서 보던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거대한 바위가 공중에 떠 있는 것은 ‘삿갓바위’ 혹은 ‘버섯바위’다. 바로 옆에는 두 번째 ‘문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이 바위에서부터 정상까지가 최대의 난코스. 코가 비럭에 닿을 만큼 오름길이다. 고도를 높이면서 흘깃 흘깃 뒤쪽과 좌우로 돌아보면 숨어 있던 산세와 바위, 나무들이 본색을 드러낸다. 시시각각 풍경이 필름이 도는 것같다.

‘경산에서 왔다’는 등산객이 작은 공간에서 휴식하고 있다. 마치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새둥지처럼 아찔한 곳. 정상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새둥지처럼 대롱대롱 걸린 공간이 많다.

두손 두발을 이용해 기어가거나, 바위를 부둥켜안고, 비켜서고, 돌아서 올라야만 정상의 희열을 만끽할 수 있다. 첫 봉우리는 정상이 아니고 다시 안부로 내려섰다가 200m를 더 올라야한다.

출발 3시간 만에 고스락에 닿는다. 월악영봉 속리산 희양산이 대야산을 에두르고 있다. 사천 와룡산 정상은 물난리가 났을 때 새가 앉을 만큼만 남아서 새섬바위. 대야산 역시 천지개벽에도 물에 잠기지 않고 정상이 대야만큼만 남았다 해서 대야산이라고 한다. 우리산에는 배바위, 미역바위 등 천지개벽 물난리의 실재로 여겨지는 물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실제 마이산은 바다였던 이유로 조개화석이 발견되고, 히말라야 고산도 대륙과 섬이 충돌해 밀려 올라 형성돼 산에서 물고기화석이 발견된다. 천지개벽은 자연계의 탄생, 혼돈의 시절을 말하는 것일테지만 동시에 미래의 가능성도 함축돼 있다. 종교적 관념이든 그렇지 않든 우리들 마음 속엔 언제나 그런 것이 공존하고 있다. 뭔가 잘못돼서 돌아간다면….

대한민국 지도제작의 기준이 되는 삼각점이 있다. 정상에서 대간을 타고 직진하면 달마스님 머리같이 생긴 특이한 모양의 희양산으로 갈수 있다. 이 길을 버리고 피아골 방향 하산 길을 택하면 낭떠러지. 추락하는 것처럼 급경사여서 온몸이 뻐근해지고 발끝까지 힘이 들어간다. 위험구간으로 로프가 젖어 더러워도 반드시 손으로 잡고 내려와야 한다.

작은 물줄기는 피아골의 시작. 이 물줄기가 차츰 커지면서 월영대가 있는 곳에서 다래골과 합수해 용추계곡을 형성한다. 등산길도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하산 1시간여 만에 월영대 갈림길로 원점 회귀한다. 합수지점에서 다시 날머리 주차장까지는 40여분이 더 소요된다. 중간 용추계곡 왼쪽 언덕에 있는 용소바위는 사람발자국과 똑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암수 두 마리의 용이 용추계곡에 머무른 뒤 승천하다가 발자국이 바위에 찍힌 것이라 한다. 용이라는데 사람의 발자국과 비슷하다.

날머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문경 가은읍 갈전리에 금하굴이 있다. 삼국사기 견훤전에 ‘갈전리 아개동(옛지명 아차)의 부유한 농가에 한 처녀가 살았다. 그런데 밤마다 처녀방에 용모가 수려한 사람이 들락거렸다. 정을 통한 처녀는 결국 임신을 하게 됐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딸에게 이 남자의 옷에 실을 꿴 바늘을 매달 것을 일러주었다. 이튿날 그 실을 따라가 보니 굴안에 큰 지렁이가 있었다는 전설’이 나온다. 이 굴이 견훤의 탄생설화가 담긴 금하굴이다. 시대의 호걸, 풍운아, 견훤이라면 적어도 용의 아들이 됐을 법한데 왜 지렁이가 됐는지는 짐작이 가능하다. 견훤, 통일의 야망이 물거품이 된 이후 아들의 배신을 삼켜야 했고, 고려 왕건에 손을 내민다. 그 자신 배신의 시대를 살았다. 훗날 기록에 지렁이가 됐다.

최창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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